날이 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
겨울에는 여름이 그립고 여름에는 겨울이 그립다는 말처럼, 날이 따뜻해지자 지난 설 명절 때가 생각난다. 매우 추웠지만 여름이라 그런지 기억 속의 겨울은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정말 간사하긴 한가 보다.
모두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향했지만, 소방서는 그런 명절에 더욱 화재경계를 강화한다.
우리 소방파출소는 명절을 맞아 혼자 살고 계시는 할머니를 봉사 방문하기로 했었다. 방문대상자는 박모 할머니로 온정면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어 최소한의 생계비만으로 어렵게 살고 있는 분이며 또한 소방서 무선 페이징 시스템 대상자이시기도 했다. (무선 페이징 시스템이란 지역별로 독거노인들에게 지급되는 전화기를 일컫는 말인데 버튼하나만 누르면 119로 자동신고가 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할머니 집을 방문하게 되면 무선 페이징 단말기 점검도 겸할 계획이었다.
대상자 관리카드에 등록되어 있는 약도를 보고 찾아간 할머니의 집은 도저히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외부나 내부가 모두 낡은데다가 부서진 곳의 수리를 방치해 둔 상태여서 마치 폐가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할머니는 볕이 좋은 자리에 나와 앉아계시다가 우리의 방문을 매우 반기셨다. 할머니와 앉아서 불조심, 건강, 명절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혈압이나 혈당 등 간단한 건강 체크를 실시했다. 혈당치는 정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혈압이 좀 높은 상태였고, 할머니는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무선페이징 단말기의 간단한 기기점검을 한 후, 언제든지 급한 일이 생기면 단말기의 긴급버튼을 누르라고 말씀드리는데, 문득 할머니가 명절에 어디 가냐고 물으셨다. 소방서는 화재나 안전사고 대비 때문에 명절이 더 바빠서 먼 곳은 가기 힘들다고 말씀드린 후, 할머니 집에는 명절 손님이 오냐고 되물었다.
할머니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도시 사는 아들이 온다고 대답하셨다. 하지만 아들의 방문이 잦은 것 같지는 않은 살림이었다. 혹 마음에 상처를 드릴까 염려되어 아들이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사는지 감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괜히 명절 손님이 오냐고 물어본 것 같아서 미안하기조차 했다.
생계가 힘드신 할머니는 오히려 우리에게 무엇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뭘 줘야하는데... 줘야하는데...” 하시며 뭔가를 찾으셨다. 정이 많은 할머니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잡은 손을 놓지 못하셨다.
파출소 식구들이 할머니를 위해 조금씩 보태어 마련한 쌀을 방으로 들이기 위해 방안으로 들어선 순간, 방문했던 우리 직원들은 멈칫하고 말았다. 방이 차디찬 냉골이었던 것이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이리라. 우리 마음까지 다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이런 분들을 많이 돌아보며 살아야하는데...” 하는 반성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연신 감사 인사를 하신다. 크게 많이 드리지도 못했는데 이렇게도 감사해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도리어 우리가 부끄러웠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작은 호의를 보이면 할머니처럼 감사해 할까?
쌀을 들여다 놓고 어지러이 널려있는 물건들도 정리정돈을 좀 하고나서 우리는 길을 나서기 위해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일어나지는 못하시고 앉아서 계속 감사하다고, 잘 가라고 인사를 하셨다. 마지막까지도 “뭘 줘야하는데...” 주지 못했다며 계속 미안해 하셨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긴급버튼을 말씀드리고 할머니 집을 나섰다.
여름에는 겨울이 그립다지만 막상 겨울이 오면 그 추위에 몸서리를 친다. 우리가 할머니 집을 방문했던 그날 날씨 역시 너무 추웠다. 하지만 정이 많으신 할머니의 모습에서 우리가 느꼈던 마음의 온기는 그 추운날씨도 앗아가지 못했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니 지금의 더운 날씨도 잊혀 진다. 겨울엔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엔 더위를 잊게 하는 사람의 정이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 기온인가 보다.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소 속 : 울 진 소 방 서
계 급 : 지 방 소 방 사
성 명 : 김 선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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