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하고 1주일이 좀 지난 어느 날 밤, 그 날은 엄마와 함께 언니 집에 가기 전날 밤이기도 했지만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까지 모두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해롱해롱 거렸던 밤이다.
그날 밤 난 고열 때문에 무서운 아저씨들이 집으로 쳐들어오는 꿈을 아주 생생하게 꿨다.
난 마치 누가 진짜 온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누가 봐도 미친것처럼-거실에서 해롱거리며, 주무시는 엄마에게 "(이불을 막 정돈하고 울먹거리며)엄마~어떻하노, 무서운 아저씨들이 막 집에 왔었는데 다시 갔다. 엄마 못 봤나? 무서운 아저씨들 안 오드나? 엄마 아이다 왔었다! 온다!”그렇게 난 헛소리까지 하며 엄마 옆에서 1시간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날 밤 내 체온을 측정해 봤다면 체온계가 망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이 장난이 아니었다.
언니 집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날 아침, 마을전체 수도가 고장이 났다고 이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일주일 정도 더 쉬고 언니 집에 가고 싶었던 나는 씻지도 못하고 감기도 덜 나아 일주일 뒤에 올라가고 싶다는 좋은 핑계를 만들어 엄마한테 말했다. 그런데 엄마는 "많이 안 좋나? 괜찮아 보이는 데야~ 웬만하면 올라가라. 니 오늘 안 올라가면 대게 삶아 놓은 거 우야노, 택배로 붙이면 다 마르는 데야.”
그런데 그 좋은 핑계거리도 언니가 좋아하는 대게가 말라간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헤어지는 날 나보다 더 아파서 해롱거리는 엄마에게 아침부터 버럭버럭 성질을 내고 대구행 무정차를 탔다. 엄마는 아파서 해롱거리는 막내딸을 그냥 보내서 걱정이 되었던지 계~속 전화를 했다. "좀 어떻노? 개안나? 다 와가나? 어디고”그런데 나는 무뚝뚝하게 "어, 알았다. 개안타. 영해다. 다 와간다. 언니 만나면 전화할께.”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그때 엄마가 전화를 해줘서 내심 반가웠지만 섭섭함이 남아있던 나로서는 그 정도로 밖에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구에 도착, 터미널에서 언니를 만나 언니의 학원 차(일명 병아리 차)를 타고 조용히 그리고 우울하게 천안으로 갔다.
그곳에서의 첫 주가 시작되었다. 평일엔 큰언니 말로 기침에 특효약이라는‘큰언니표 배즙’을 먹으면서 가까운 병원을 열심히 다녔고, 병원을 다녀온 후에는 내 말이라면 법처럼 여기는 조카를 곯려주고, 종일 언니 학원 사무실에 앉아서‘오세암’이라는 책을 읽었다. 오세암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본적이 있어서 익숙했다.
그렇게 바빴다면 바빴던 천안에서의 첫 주 평일이 지나가고, 내가 손꼽아 기다렸던 주말에는 작은언니 아르바이트 시간이 끝나갈 무렵 시내로 나가 언니랑 감자탕도 먹고 영화‘미녀는 괴로워’도 봤다. 언니와 그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언니가 나에게 장난삼아 말을 던졌다.
"동생~ 동생도 희망을 잃지 말아~ 미녀는 괴로워에서 나오는 제니처럼 동생도 쌍꺼풀이랑 코 좀 세우면 예뻐질 수 있어~ 그런데 동생은 돈 많이 들겠다. 내 얼굴은 안 고쳐도 되는데.”우리 언니들은 자기가 예쁘다면 얼마나 예쁘다고 항상 나한테 장난으로 저런 말들을 던진다. 그런데 나는 저런 말을 들을 때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는 웃는다. 우리 언니들이 웃겨서 그런 것도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주~욱 들었고, 언니들의 자연산 미모에 눌려 살아서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게 즐거웠던 그곳에서의 일주일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두 번째 주가 시작됐고, 그 주에는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검사하러 엄마 아빠가 천안에 떴다. 아빠는 난생 처음 도시구경이라면서 허허 웃으셨다. 그리고 그날부터 엄마는 검사를 했다. 3일 동안 검사한 것은 모두 정상이라고 결과가 나왔지만, 마지막 날 검사한 위 내시경 결과가 안 나왔다. 내시경을 하면서 의사가‘위가 좀 안 좋다’고 엄마한테 말했다고 한다. 그럼 결과를 좀 빨리 말해주지, 결과만 기다리며 속 태우는 사람도 생각해야지. 휴~ 엄마 아빠한테는 괜찮은 척 했지만, 속이 좀 많이 탔다.
좀 긴장됐던 검사가 끝나고 평택으로 온 가족이 쇼핑을 하러 갔다. 언니는 항상 그렇듯 내가 천안에 가면 옷이 그게 뭐냐며 핀잔을 준다. 그래서 언니는 옷도 많이 주고, 항상 한 벌 쫙 빼준다. 큰언니 최고!!^^
그리고 평소에 돈 잘 안 쓰는 짠순이로 소문난 우리 엄마, 그런 우리 엄마가 아빠 옷을 산다고 40만원 가량의 돈을 썼다. 언니들과 나는 엄마의 씀씀이에 정말 놀랬다. 놀라긴 몇 십 년을 같이 살아 온 아빠도 놀랬다. 그렇게 즐거웠던 쇼핑을 끝내고 꽃등심을 언니 집에서 구워먹기로 했다. 그런데 그전 날 감자탕을 무리해서 먹고 속이 좀 쓰리던 것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는데 체해서 앓아 누웠다. 그래서 주말에 언니와 함께 꽃등심을 못 먹은 한을 풀고자 닭갈비를 먹고‘마파도2’를 봤다. 닭갈비는 정말 맛있었고 마파도2도 재미있었다. 1편과는 다른 감동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즐거웠던 2주일이 끝나고 좀 피곤한 세 번째 주를 맞았다. 그 주가 피곤했던 이유는 집에 간다는 설레임에 잠을 뒤척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곤함과 설레임으로 가득했던 세 번째 주 토요일 드디어 나는 집으로 왔다. 버스를 타고 기성으로 들어서는 순간 크아~ 정말 꽉 막힌 도시에 있다가 탁 트인 내 고향 기성이 너무 반가웠다.
기성에 엄마 아빠가 있어서 그런가? 내 고향이라서 그런가? 기성 이야기만 나오면 칭찬이 줄을 이어 사흘 밤낮을 이야기해도 모자라고, 한발자국도 떠나기 싫을 만큼 좋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기성과 부모님과 떨어져 있었던 천안에서의 3주라는 생활 속에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서 몰래 밤에 훌쩍거린 적도 있었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정말 오고 싶었다면 나는 집으로 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곳에서 고향과 부모님의 그리움을 잠시나마 잊고 무사히 3주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옷? 시내구경? 영화보기? 식당가기? 이런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언니들의 사랑가득한 말 한마디’, 그리고“항상 보고 싶다. 언제 오노? 빨리 온나~”라고 메신저 쪽지 함에 안부를 남겨주는 친구들, 그리고 하희진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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