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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사랑을 피워 낸 저항시

  • 김진문 시인
  • 입력 2026.08.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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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로소이다/하늘을 보고 짖는/보잘것없은 나는/개로소이다./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내가 목욕을 할 때/

나는 그의 다리에다/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나는 개로소이다.

(박열, 「나는 개로소이다」 전문, 『조선청년』,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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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영화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포스터이다. 가네코 후미코의 아나키즘 저항 정신을 담은 작품이다. 포스터는 박열기념사업회가 제공하였다.

이 작품은 일본 하마노사치(浜野佐知) 감독이 제작하였다. 일본에서 먼저 공개되었다. 한국에는 문경문화원에서 처음 상영되었다.(2026. 7. 23) 이날 하마노사치 감독은 가네코 후미코 서거 100주년을 맞아 문경과 세종시 부강을 방문해 기념식과 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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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박열기념관 동상 

 

자유와 사랑을 피워 낸 저항시

박열이 1922년 일본 유학생 잡지 『조선청년』에 발표한 「나는 개로소이다」는 일제의 억압과 권력에 맞선 대표 저항시이다. 

스스로 가장 낮은 존재를 내세우지만, 억압하는 권력 앞에서는 결코, 굴복하지 않고 같은 방식으로 맞선다는 역설을 통해 자유와 인간 존엄을 힘 있게 드러낸다. 짧은 시이지만 박열의 저항정신과 아나키즘 사상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이 시에 가장 깊이 마음을 빼앗긴 이는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였다. 그는 훗날 "가슴의 피가 들끓고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황홀경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한 편의 시는 국경을 넘어 두 사람을 이어 주었고, 두 사람은 자유와 조선 독립이라는 같은 뜻을 품은 동지가 되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뒤 일제는 조선인 학살의 책임을 감추려 박열과 후미코를 체포하고 대역죄로 기소하였다. 그 대역죄란 이들이 일왕가를 폭살하려고 폭탄 반입을 모의 했다는 혐위였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뒤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하지만 후미코는 스물세 살의 나이로 옥중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희생은 오늘날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기려지고 있다.


「나는 개로소이다」는 단순한 저항시가 아니다. 총칼보다 강한 자유의 정신을 담은 외침이며, 한 편의 시가 시대를 넘어 사람의 삶과 역사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오늘도 이 시는 8·15 광복이 수많은 희생 위에 이루어졌음을 다시 일깨워 준다. (김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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