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기산(登起山) 끝자락의 백색 섬광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인천 앞바다에 한줄기 백색 파노라마로 뱃길을 알려주는 팔미도 등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불을 밝힌 지 100년하고도 2년이 지났다.
등대가 처음으로 세워지고 100년이 흐른 지금 전국적으로 500여개가 넘는 유·무인 등대의 불빛이 밤바다를 밝히며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돕고 있다.
깎아 세운 듯한 반월형의 등기산(登起山)이 가락지 형상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곳, 후포부두 끝자락에서 동북쪽으로 나 있는 해안 길을 따라 가다가 등기산으로 올라서면 후포리 산 141-9번지 해발 64m의 나지막한 산자락 끝에 후포등대가 외롭게 서 있다.
그곳에 올라 등대관리소 담벼락을 따라 돌아서 남쪽 언덕에 서면 고깃배들로 분주한 후포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후포 해수욕장을 지나 저 멀리 영덕 해안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은 끝 간 데 없는 망망대해의 푸른 바다가 자리하고 남쪽과 북쪽은 그림처럼 완만한 굴곡으로 수놓아진 해안자락이 펼쳐진다.
후리 망으로 고기를 잡던 곳이라 하여 후리포(厚里浦) 또는 후릿골로 불리기도 했던 후포면은 삼한(三韓)시대에는 진한(辰韓)과 예(穢), 신라 진흥왕 때에는 비량현(飛良縣)에 속했다.
고구려 때는 근을어현(斤乙於縣)과 영내현(榮乃縣), 다시 신라 비량현, 야음현(野音縣)에 속하기도 했다. 고려 현종 때는 예주(禮州), 명종 3년에는 기성현(箕城縣)에 속했고, 충열왕 때 평해군(平海郡) 남면(南面)에 속하게 된다.
1914년 3월 1일에 군(郡)이 통폐합되면서 강원도 울진군 평해면(平海面) 후포리(厚浦里)로 되었다가, 1963년 1월1일을 기해 울진군이 경상북도로 편입된다.
드넓은 동해바다의 수려한 풍광을 관망할 수 있는 후포등대가 자리한 등기산은 사방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의 구실을 하고 있고, 등기산 정상에는 소규모 체육시설과 벤치, 정자 등이 갖추어져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후포주민들의 여가생활을 돕는 생활체육공원으로서의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후포등대가 위치한 등기산 일원은 국내에서도 몇 안 되는 신석기시대의 매장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1983년 공원조성 공사 중에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이 조사한 이 유적지는 산 정상의 구덩이를 이용한 유적으로 구덩이 주변에는 화강암 돌덩이들로 경계를 지었고, 발견된 유골은 세골장으로 뼈를 추려서 구덩이에 넣은 것이다.
당시 후포리 유적에서는 돌도끼가 180여점이나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고, 돌로 만든 꾸미개(裝身具)와 대롱옥(管玉) 등이 나왔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희귀한 후포리 선석기시대의 매장 유적에서 발견된 다량의 장대(長大)형 돌도끼와 세골장(洗骨葬-죽은 다음에 바로 묻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두어서 시신의 살이 썩은 뒤 뼈만 추려서 묻는 장례법)의 흔적들이 신석기 시대 문화상 연구의 중요한 사료들로 평가하고 있다.
이밖에도 주변경관이 지극히 빼어난 등기산 정상에는 남호정(南湖亭) 정자가 지어져 있어 평소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남호정(南湖亭)이라는 정자 이름은 고려 말엽에 평해군 남쪽 10여리 되던 곳의 바다가 마치 호수와 같이 잔잔하다 하여 이곳에 있던 마을을 남호동(南湖洞)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이밖에도 후포면은 수년전 MBC TV 드라마‘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했던 주 무대로써 시내에서 후포등대를 올라가는 비탈진 길옆의 한집은 당시 드라마 주인공의 집으로 설정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계당국의 무관심으로 인해 현재 이곳에는 작은 안내간판 하나 걸려있지 않아 가끔 이곳을 찾는 내·외지인들을 안타깝게 한다. 지리적으로 N 36도40분9초, E 129도27분8초에 위치한 후포등대는 우리나라의 동해안 항로 중간에 위치하여 동해중부해상을 지나가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1968년 1월 24일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애초에 후포등대는 후포어업조합에서 항만을 알리는 선박의 안전표지인 사설항로표지로써 무인등대를 설치해 운영해 왔으나, 그 후에 정부의 지원 등에 힘입어 등대원이 상주하는 유인등대로 바뀌었다. 1967년 후포수협에서 기증한 2,014평 부지위에 세워진 후포등대는 당시 경향건설(주)에서 등대, 숙소, 동력실, 무신호실 등을 건립했다.
흡사 사람의 손으로 일부러 조각한 것처럼 가파른 절벽의 돌산으로 이뤄진 등기산(燈基山)은 오랜 옛날부터 부근의 바다를 지나가는 선박의 안전을 위한 지표로 낮에는 하얀 깃발을 꽂아 위치를 알리고 밤에는 봉홧불을 피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이런 사실로 미루어 우리나라의 고대 항로표지시설을 설치 운용한 역사가 깊은 곳으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확실한 문헌이나 유물 등의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후포등대와 거일항 중간쯤에 후리산 봉수(厚理山 烽燧)가 있었다는 구전이 전해 내려오는 점과, 후포의 또 다른 옛 이름인 후리포(厚里浦)와의 연관성 등을 미루어 짐작할 때, 후포등대가 위치한 돌출된 곶의 형태를 띤 후포 등기산이 고대로부터 선박의 항로표지를 설치할 만큼 상당한 지리·군사적 요충지였음은 유추할 수 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백색 8각형 등탑으로 건설된 후포등대의 높이는 11m에 이른다.
1968년 초점등한 후포등대는 1년 전인 1967년 8월 건립하면서 한전의 전원을 인입하여 무신호기를 설치했고, 1979년 4월 발동 발전기를 설치하여 운용해 오고 있다.
그리고 1989년 등대원들의 숙소를 벽돌 슬래브 기와지붕으로 개축하고 동력실과 무신호실은 벽돌 슬래브로 개축했다.
후포등대가 운영 중인 RB-90(120V-400W) 기종의 광파표지(燈明機-등대의 불을 켜서 비추는 기계)는 섬백광(閃白光) 10초 1섬광(FLW10s)의 등질(燈質)로 광달거리는 지리적으로 21마일, 광학적으로 31마일, 명목적으로 19마일(35km)에 이른다.
또한 음파표지로 전기 사이렌을 운용하는 죽변등대와는 달리 공기압축기(에어 사이렌)를 운용하는 후포등대의 취명(吹鳴)주기는 매 60초에 1회 취명하며, 취명 5초에 정명 55초로 운영 중이다.
음파표지의 한 종류인 에어 사이렌의 취명 도달 거리는 무려 9km에 이른다.
에어 사이렌의 경우 전기 사이렌과는 달리 취명 도달거리가 길어지는데 비해,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다고 등대원은 설명한다.
공기압축기에 의해 만들어진 공기에 의해 사이렌을 울리게 되는 에어 사이렌은 바다에 안개가 발생하면 그것을 검출하여 자동적으로 음향을 울려서 항해하는 선박에 신호소의 소재를 알려주게 되는데, 검출하는 시간에 더해 공기를 모으는 시간까지 수십분 이상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후포등대에서 사용되던 에어 사이렌 장비가운데 취명주기를 조정하는 장비인‘공기사이렌 시한계전기’는 현재 국립 등 대박물관에 문화예술자료로 보관, 진열되고 있다.
이 자료는 후포등대에서 1975년부터 1982년까지 사용되었다.
공기사이렌 시한계전기는 가로 43cm, 세로 30cm, 높이 42cm로써 공기압축기에 의한 무신호기 운영 시에 무신호기의 취명주기에 따라 공기 개폐기를 조작하여 음향을 울릴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서 직류 100볼트의 전원을 사용했다.
후포등대는 관내의 또 다른 유인등대로서 1910년에 초점등한
죽변등대에 비해 58년이나 지난 1968년에 건립되었다.
훨씬 뒤에 건립된 만큼 후포등대는 등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소재로 콘크리트가 사용되었고, 보행 공간도 훨씬 넓어지는 등으로 현대화되어 통행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런 편리함과는 별도로 뛰어난 미적 감각의 나선형 구조로서 철재 주물을 재료로 사용하여 만들어진 죽변등대의 그것과는 달리 역사·예술적 가치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어서 아쉬운 점도 크다.

현재 후포등대에는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에 소속된 직원 3명이 3교대로 근무하며 등대를 유지·관리하고 있다.
울진군 관내의 등대 가운데 죽변등대와 더불어 관리인이 상주하는 유인등대인 후포등대는 오는 2010년경 예산절감과 효율적인 등대관리 등의 이유로 인해 무인등대로 바뀌게 될 예정이다.
후포 등기산에 올라 등대와 지극히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살피다보면 각박한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서 금세 카타르시스의 희열을 맛볼 수 있게 된다.
등대는 그런 곳이다. 단지 밤바다에 불빛을 던지고 무적을 울려 뱃길을 인도하는 것뿐만은 아니다.
등대에 근무하는 등대원도 단지 기계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항해하는 선박의 각종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물론 자연 속에서, 사람 속에서 진정한 사랑으로 정을 나누며 어우러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등대를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해 늘 등대를 쓰다듬고 살며 윤기 나게 닦는 사람들, 기계장치로 이뤄진 등대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들, 등대원들......
/ 이명동기자(uljinnews@empal.com)
미니 인터뷰 - 후포등대 이강일(51세)소장
▲ 그동안 어느 등대에서 근무했나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 직원으로 지난 85년 첫발을 내딛었다. 이십여년 동안 호미곶 등대, 송대말 등대, 울릉도 등대, 독도 등대 등에 근무했다. 포항지방청에서 관리하는 등대 가운데 울릉도 도동 등대와 죽변 등대에는 근무해보지 못했다. 후포등대에 오기 전에 포항지방청에서 1년 반 정도 근무했다. 그 전에는 독도등대에 있었다.
▲ 후포등대에서 관리하는 등대 또는 규칙적으로 이뤄지는 업무는
후포등대에 근무하는 직원 3명이 왕돌초의 등표(레이콘)를 비롯하여 후포항 동·서방파제 등대, 후포 제동항 방파제 등대, 직산항 동·남방파제 등대, 대진항 북·남방파제 등대, 축산항 남·북·동방파제 등대, 축산항 등대, 경정항 북·남방파제 등대, 창포말 등대, 창포항 방파제 등대, 강구항 동·서방파제 등대, 구계항 방파제 등대, 구계항 남·북방파제 등대 등을 관리한다. 가까운 곳은 직접 감시·관리하고 멀리 떨어진 곳은 위탁하여 감시·관리하고 있다. 또한 후포등대에 부착된 기상측정 장비를 통해 수집된 후포면의 기상 정보를 매일 5회씩 울진기상대에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 요즘처럼 현대화된 장비를 갖춘 선박들에게 등대가 필요한가
선박에 장착되는 장비가 현대화된 건 사실이지만 디지털 장비는 고장이 잦다.
특히 악천후 시 등대의 역할은 매우 크다. 에어 사이렌 같은 무신호기의 경우 예전 범선 때는 매우 유용했겠지만, 요즘 운항하는 동력선들은 엔진 소음 등으로 인해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도 연안에서 작업하는 어선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
▲ 2010년 후포등대를 무인화 시킬 계획이라는데
포항지방청에서 후포등대를 2010년 무인화 시킬 예정이다. 무인화 시키면 현재의 인원들로 별도 점검반을 구성하여 각 등대를 순회하면서 점검하고 관리해나갈 계획이다. 현재의 유인등대들은 앞으로 점차 무인화 될 것이다. 그 대신 일부 등대는 규모도 키우고 주변도 공원화 시키는 등으로 일반 관광객들을 위한 문화, 예술적 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 등대 100주년 기념 ■
전국 공모전 그림 부문, 학생부 입선작
▲ 그림 진영은 / 희망이 있는 풍경
전국 공모전 시 부문, 일반부 대상 수상작
▲ 내 마음의 불빛을 밝히며
글 / 김성현
사람들 사이에서 받은 상심은
푸른 바닷물로 씻길 수 있을까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면서 찾은 바다는
말없이 어둠을 불러오고 있었다
초저녁에 올라와 이미 잠든 초승달
밤이 돼서야 존재가 드러나는
저 너럭바위 위 등대는
모두 잠든 이 밤의 외로움을 무엇으로 견뎠을까
저 자리를 얼마나 떠나고 싶었을까
물가에 비친 그림자를 쓰다듬으며 등대를 위로할 때
절망같은 어둠 속의 한줄기 불빛
그리고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던 바다 저 편에서
하나 둘 돌아오는 사람들
희망과 절망 사이에 등대가 있었구나
사람은 등대를 통해 다시 사람 사이로 돌아오는구나
내 마음의 불빛을 꺼 버렸으니
아무도 나를 찾아오는 이 없었던 거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슴에 빗장 걸었으니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지 못하고 도망만 다녔던 거다
제 한 목숨 불 밝히며 살면
외로움도 상처도 없을 거라고
저 고암 등대는 숨쉬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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