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껏 최대한의 서비스를 해드리겠습니다

만물이 쉬어가는 겨울의 끝자락이고 바야흐로 봄의 문턱에 있다. 입춘과 우수가 지났고 3월 6일은 동면했던 개구리가 나온다는 경칩(驚蟄)이다. 겨우내 맨몸으로 추위를 맞았던 들(野)도 농부의 발길이 이어지며 새롭게 한 해의 농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또한 추위로 중단되었던 각종 건설공사가 시작되면서, 겨우내 깊은 휴식에 들어갔던 중장비들도 기지개를 켜며 엔진에 힘찬 시동을 건다.
이제는 인력을 대신해 언제 어디서든 눈에 띄는 굴삭기는 공사현장의 필수품(?)이다. 다양한 용도를 가진 굴삭기는‘만능 일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굴삭기로 자신의 삶과 꿈을 일궈가는 최영문(울진읍, 32세)씨다. 2월 25일 영문씨와 부인 유희정씨와 함께 다소 늦은 저녁 8시부터 이야기를 나눴다.
형이 꼼꼼하게 운전 방법을 가르쳐 줘...
울진종고 축산과를 졸업했습니다(97년 졸업). 졸업 후 현역에 입대했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운전면허증을 취득해 포병 운전병으로 복무했습니다. 사실 축산과를 졸업했지만, 졸업하고 마땅히 할 것이 없었어요. 집에 땅이라도 있고 살림 형편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소를 키워보고 싶었지만 현실상 어려웠습니다. 제대(99년)하고 약 1년 정도 대구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는데, 도저히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숨도 막혀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영락없는 촌놈이지요(웃음).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2년 정도 논과 밭을 열심히 일구었습니다. 지금도 젊지만 그때가 20대 중반이었으니까 어리고 뭘 잘 몰랐죠. 그냥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농사만으로는 생활하는데 타산 맞추기가 쉽지 않잖습니까? 몸은 튼튼하고 배운 기술이 있나요, 그래서 막노동도 하고 하여간 이것저것 뭘 모르고 열심히 했습니다. 바로 위에 형(최영구, 41세)이 10년 넘게 굴삭기를 하고 있었는데, 제가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사는 게 기특하고 한편으론 안쓰러워 보였는가 봐요. 형 밑에서 장비 운전 기술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부터 나오는데, 고등학교 마치고 군에 가기 전에 형이 일하는데 따라가 잠깐 쉬는 틈에 멋모르고 조종하다가 시쳇말로 시겁 했습니다. 오작동으로 굴삭기가 산으로 그냥 가는데,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었는데, 형이 꼼꼼하게 가르쳐 줬습니다. 이래저래 배우면서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죠. 장비를 운전한 지가 5년 정도 됐습니다.
새벽별 보고 나왔다가 저녁별 보고 들어가...
장비기사도 막노동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때로는 작업현장에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도착해야 될 때도 많거든요. 미리 시동을 걸어 예열을 하고, 사람처럼 준비운동(?)도 시켜야 됩니다. 공사현장을 다니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겠지만, 새벽밥 먹고 별보면서 일하러 나왔다가 저녁별 보고 집에 들어가잖아요. 때로는 지겹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배운 기술이 이게 전부인데... 한편으론 장비 기사가 진짜‘외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적(人跡)이라고는 드문 곳에서도 일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러면 라디오가 절친한 친구입니다. 음악도 흘러나오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에 머리가 끄덕여 지기도 하고, 괜히 가슴 한 구석이 울컥할 때도 있고요.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워 작업을 해야 되는데, 라디오가 없다면 상상할 수도 없죠.
울진의 구석구석 안 가본 곳 거의 없어...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울진군의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각 마을의 골짜기 이름을 알아야 찾아가기가 쉽거든요. 동네마다 골짜기가 명명돼 있습니다.
서면 소광리에 어머니(박옥랑, 67세)가 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9남매(5남 4녀)의 막내라서 그런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어 그런지 몰라도, 동네마다 다니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사시는 모습들이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안타깝기도 하고요.
비싼 돈 들여 장비 불러 벼 한포기 더 심기 위해 논을 늘리려고 하는데 늘릴 수 있는 면적이 얼마 되지 않거든요. 굽은 허리로 논에 대한 애정을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픈 것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제가 다 버리고 편히 생활하시라고 말씀드리면, 노인 분들이 그러시더군요. “우이는고, 논을 묵힐 수는 없잖은가? 잘해주고 가게...” 이런 말씀을 들으면 그냥 해드리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잖아요.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장비 사용료를 깎아드리기도 하지만 돌아설 때는 발걸음도 마음도 똑같이 무거워 집니다. 고맙다고 닭 잡아 준다는 어른들도 꽤 많았습니다.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뭐니 뭐니 해도 가정
일거리는 봄, 가을에 제일 많습니다. 특히 봄은 겨울동안 중지됐던 각종 공사 일이 터지기 시작하니까 3월부터 5월까지는 정신없습니다. 또 제가 주로 논이나 밭에서 하는 일이 많은 편입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지요. 때로는 하늘 보면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웃음). 보통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가 일하는 시간인데, 점심시간과 오전, 오후 2번 있는 참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의자에 앉아 있거든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손만 까닥까닥 하면 장비가 일하지, 사람이 일하는가?”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거든요. 긴장하면서 온 몸을 써야 됩니다. 손만 까닥거려서는 일이 안 되거든요. (일하면서)계속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거든요. 일 마칠 때쯤이면 어깨가 가장 결리고, 목과 눈 등 온 몸이 뻐근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막걸리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지만 집에 애들이 반겨줄 때가 제일 좋습니다. 아내와 애들이 고생했다고 주물러 주거든요. 이런 재미와 보람이 있어 하루하루 열심히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뭐니 뭐니 해도 가정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깔끔하게 최대한의 서비스로...
‘일을 할 때는 최대한의 서비스를 하자. 열심히 깔끔하게 처리해서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욕이나 손가락질은 받지 말자’는 게 저의 일에 대한 마음가짐입니다. 어차피 일을 시키는 사람은 비싼 돈(장비 하루 사용료는 30만원)을 들여서 하는 거잖아요. 일을 마무리 했는데 기분이 나쁘면 시킨 사람도 저도 역시 찝찝하잖습니까? 장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되었을 때 제 고향인 서면 소광리로 수해복구 공사를 나가게 됐습니다. 그때는 아직 조종기술이 조수의 역할 밖에 안 되었거든요.
사실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 보면 경력이 오래된 기사보다 아직 초보단계에 있는 기사들을 그렇게 흡족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물론 소광리 출신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김진업 이장님을 비롯한 주민 분들이 많이 이해해 주셨죠.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1시간 이면 할 일을 3시간 가까이 해야 마무리를 지었으니 보는 사람들이 답답할 수도 있었는데, 저를 많이 배려해주신 것에 대해 너무 감사했죠.
한편 지금까지 아찔했던 순간들을 3~4번 넘긴 것 같습니다. 장비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누구든지 경험하곤 합니다만, 일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장비가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2005년 겨울 기성면 다천에서 임도 사방공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산사태가 나면 복구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하게 됩니다. 겨울이다 보니 산비탈이 얼어 있었는가 봐요. 괜찮겠다 싶어 올라갔는데 어느 순간 바퀴가 헛돌면서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다가 돌부리에 바퀴가 걸렸으면 그대로 돌면서 전복(顚覆)되거든요. 다행히 사고는 없었습니다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집니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어...
딱히 배운 기술이라고는 지금 하고 있는 것 이외에는 없으니 계속 이 일을 하게 되겠죠. 하는 동안은 성의껏 일해서 일로 인정받으며 살고 싶습니다. 제가 한 일로 인해 손가락질 안 받고 욕 안 먹고, 부지런히 일을 할 겁니다.
새벽 밥 먹고 나오면 일을 마칠 때까지는 집에 갈 수 없으니 가정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고, 비오는 날이 아니면 딱히 쉬는 날도 없으니 애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요. 이제까지 생활했던 것보다는 좀 더 가정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되겠지요. 배움에 대한 욕심도 많습니다만, 형편상 선뜻 결정하기가 쉽진 않고, 막노동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없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초보(初步)였을 때가 있다. 다소 서투르고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며 하나하나를 배워가기 위해 정성을 다하고 심혈을 기울이던 그런 시절이 있다. 그러나 일에 대해 손이 익어 가면서 스스로도 모르게 관성과 타성에 젖어 들어가 처음과는 동떨어진 자신을 보게 된다.
한편 연초(年初)에 다짐했던 많은 계획들도 머리에서만 맴돌고 몸과 마음이 따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작심 3일을 100번만 하더라도 한 해 동안 뭔가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나태(懶怠)해진 심신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첫 마음(初心)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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