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 교수)
조선 시대에 ‘사복시(司僕寺)’라는 관청이 있었다. 궁중의 말과 가마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곳이다. 지금의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뒤쪽에 있었다. 사복시에 속해 말을 돌보던 관리를 견마배(牽馬陪)라 하는데, 보통은 ‘거달(巨達)’이라고 불렀다. 종7품의 하위 관직으로 영조 때 11명이 있었다.
이들은 왕이나 지위가 높은 관리를 모시고 거동할 때 앞과 좌우에서 말을 타고 길을 트는 일을 주로 담당하였다. 이들은 마치 자신이 무슨 큰 힘이나 가진 듯이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우쭐거리고 몸을 흔들거리면서 연신 “쉬~ 물렀거라. ○○대감 행차시다.”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비록 낮은 신분이지만 지체 높은 관리들을 직접 모신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런 허세가 몸에 밴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잘난 체하며 허세를 부리는 이들을 가리켜 ‘거덜 거린다’ 라고 비웃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양반들은 나귀 타고 나들이하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양반 체면에 고삐를 직접 잡을 수 없으므로 건장한 체격의 사람들을 시켜 고삐를 잡아 길을 안내하도록 했다. 이들을 견마 잡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잡는 고삐를 바로 ‘거덜’이라고 한다. 양반들은 나들이할 때마다 여러 견마 잡이들을 세우며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곤 했는데. 문제는 이 견마 잡이들 역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열중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질 좋은 매끈한 가죽으로 만든 고삐에 번쩍번쩍 광을 내고 거들먹거리고 다녔다. 견마 잡이 주제에 허세에 열중하다 보니, 그나마 알량한 재산이 남아나지 않았다. 이런 풍조를 꼬집어 빈정대는 ‘거덜 났다’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
취업난 시대에 얼마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획기적인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대기업 CEO 조찬강연에서 “지금 50~60대는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으로 가야 된다.”고 말했다. 또 “젊은이들은 우리나라에 앉아서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 하지 말고, 신남방 국가를 가면 ‘해피 조선’”이라고도 했다. 또, “국립대 국문과 졸업하면 취직 못 하지 않나. 이들을 왕창 뽑아서 태국·인도네시아에 한글 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불황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도 훈수를 두었다. “자영업자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식당들은 왜 국내에서만 경쟁하려 하느냐?”고. 프랑스 왕정의 마지막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굶주린 파리 시민들이 베르사유 궁전 앞으로 몰려가 빵을 달라고 외치자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며 황당한 말을 했던 것이 떠오른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책임진 견마 잡이가 저잣거리의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 기가 막힌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지난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물고 늘어질 때는 예비타당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더니, 이제는 아예 전국적으로 대형사업들을 예타 면제하겠다고 선심정책을 내놨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급기야 보(洑)까지 허물겠다고 한다. 현지 농민들은 죽어라 반대하는데도 환경 운운하며 굳이 허물겠다고 우긴다. 그것도 조사결과의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체 높은 관리가 행차할 때마다 말고삐를 잡고 권마성을 외치는 견마 잡이들은 길거리에서 온갖 못된 짓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도심의 주요 통로였던 종로 주변의 저잣거리 백성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아픈 역사의 흔적은 오늘날 종로 뒷골목 ‘피맛골’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높은 관리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굽히며 예를 갖춰야 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가마가 나타날 때마다 일일이 예를 갖추느라 도무지 갈 길을 제 때에 갈 수가 없었다. 예를 갖추지 않았다가는 현장에서 바로 거달들의 발길질에 얻어터지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이른바 ‘아랫것’들은 큰길을 피해 아예 구불구불한 뒷골목으로 다니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던 것이다. ‘피맛길’이란 높은 사람이 행차하는 말(馬)을 피(避)한다는 데서 온 말인데, 실상은 그를 따르는 거달들의 횡포를 피하는 것이다.
‘살림이 거덜 나면 봄에 소를 판다.’는 속담이 있다. 생활이 쪼들려 막다른 처지에 이르게 되면 아무리 긴요한 물건이라도 할 수 없이 판다는 뜻이다. 요즘 경제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경기 침체가 오래갈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이 연일 들린다. 내수 부진은 결국 돈이 돌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니, 시장 경기가 바닥이라는 얘기다.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대한민국의 안정과 미래, 위신이라는 귀중한 소를 팔지 않으면 안 되는 궁색한 처지로 이 나라를 몰아가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현대판 견마 잡이들의 횡포는 이제 점입가경이다. 오늘날 견마 잡이들은 옛날과는 달리 고위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지난 시절 독재를 찬양하며 소리 높여 권마성을 외치던 그들의 횡포를 벌써 잊었는가? 볼 상 사납게 거덜거리지 말고 현실을 바로 봐야 한다. 닮지 말아야 할 것은 닮지 않아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바뀐다. 못된 짓 배우지 말라. 이러다 정말 거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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