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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전통 세시풍속 ‘풋굿제’…상흥부 마을은 지금도 이어간다

  • 김세연 기자
  • 입력 2026.10.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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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김성준 지역사 연구가·수필가(전 울진군문화원장)


 

평소 들어보기 힘든 생소한 이름이다. 

 

8월 29일(토) 북면 흥부체육관에서는 북면 부구3리 상흥부 마을의 전통 세시풍속인 ‘풋굿제’가 마을 주민 전체가 참여한 가운데 신명나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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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사에는 황이주 군수를 비롯해 임승필 군의회 의장, 김재준 도의원, 임정준 북면장, 어성수 북면농협장 등 다수의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고, 색소폰 연주를 비롯한 각종 공연단의 축하공연이 연이어 펼쳐져 흥을 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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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국(78세) 부구3리 이장·북면노인회장

 

북면노인회 회장이자 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이희국(1949년생) 대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풋굿제 행사는 다른 지역에서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됐지만, 우리 마을은 꾸준히 전통을 지켜오고 있어 매우 뜻깊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풋굿제란 옛날 농경 중심 사회에서 모내기와 김매기 등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일꾼들을 위로하는 행사였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일꾼들을 대접하고 옷을 지어 선물하거나 용돈을 주어 시장에 나가 마음껏 구경하고 즐기게 하는 세시풍속이다.


이희국 이장은 ‘풋굿’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풋’이란 말은 ‘풋사과’, ‘풋고추’처럼 곡식이 익어가기 시작하는 때의 의미로 들었어요. 이때 그동안 고생한 농민들이 풍년 농사를 기원하면서 하루 즐겁게 쉬는 행사가 풋굿제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 풋굿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옛날부터 지켜오던 마을 전통 행사입니다.”

 

풋굿제의 기원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때에는 백중을 기해 삼 삼기가 시작되었고, 도성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고 궁중의 공주가 주축이 되어 한 달 동안 삼을 삼아 8월 가윗날에 그 성적을 심사해 진 편이 이긴 편에 한턱내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다.

 

풋굿제는 백중(百中)날을 기준으로 치러졌는데, 백중 무렵이 되면 삼이 자라 그 껍질을 벗기기에 알맞게 익은 때이기 때문에 직조 작업을 권장하는 뜻에서 왕실 여인들이 시범으로 삼 삼기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풋굿 행사의 역사는 깊다고 하겠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을마다 연례행사로 ‘풋구 먹는 날’이 있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서도 ‘풋구 먹는 날’이라 하여 마을 사람들이 하루를 쉬면서 즐겁게 보냈고, 일꾼들은 매년 ‘풋구 먹는 날’을 애타게 기다리기도 했다.

 

이런 세시풍속은 산업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어 요즘은 울진군은 물론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행사가 되었다. 그러나 부구3리 상흥부 마을은 그 전통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타의 귀감이 된다고 하겠다.

 

다른 지역에도 풋굿제의 전통은 있었다. 풋굿제는 대부분 백중날을 기준으로 열리는데, 백중(百中)은 음력 7월 15일로 백종(百種), 중원(中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돌아가신 조상들의 혼을 위하는 날이라 하여 ‘망혼일(亡魂日)’로 부르기도 했다.

 

백중이란 뜻은 ‘백 가지 곡식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는 의미라고 하며, 어느 지방은 백중일을 기해 임시 장을 열어 지역의 축제일로 삼기도 했다. 흥부마을도 백중날을 중심으로 풋굿제를 여는데, 매년 양력 8월 하순께이다. 몇 해 전만 해도 마을 성황당 앞에 모여 농악놀이도 하고 씨름대회 같은 민속행사를 하면서 하루를 즐겼다고 한다.

 

본래 백중이란 말은 불교에서 나온 말인데, 불제자인 목련존자가 지옥에서 허덕이는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7월 15일에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공양하고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구제하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풋굿제는 지역에 따라 행사 내용이 약간씩 다르다. 주인이 일꾼들에게 용돈을 듬뿍 주어 장에 가서 즐겁게 놀다 오게도 하고,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어 일꾼들을 대접하기도 한다. 어떤 주인은 일을 잘하는 일꾼에게 옷을 지어 선물하기도 하고, 다음 해의 새경을 올려주기도 한다.

 

옛말에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마을 어른들이 홀아비나 총각 머슴에게 마땅한 처녀나 과부를 골라 장가를 들여주고 살림도 장만해주는 데서 생긴 말이다.

 

명칭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부른다. 울진을 포함한 경상도 지방에서는 ‘풋굿날’, ‘풋구 먹는 날’ 등으로 불렀고 경기도, 충청도 쪽에서는 ‘호미씻이’라고 많이 불렀다.

‘호미씻이’란 말은 모내기와 김매기를 마쳤기 때문에 호미를 씻어 걸어둔다는 뜻이다.

 

경기도나 충북 지방은 대부분 ‘호미씻이’라 불렀는데 일부 지방에서는 ‘호미걸이’, ‘머슴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경상도 내에서도 명칭이 조금씩 달라 대부분 ‘풋굿’이란 명칭을 쓰는데, 구미시에서는 ‘일꾼 노는 날’, 고령군이나 울릉도에서는 ‘머슴날’, 영덕에서는 ‘손모둠 먹는 날’, 청도에서는 ‘상머슴 위하기’ 등으로 불렀고 호남지역에서는 ‘질꼬내기’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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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김사현(87세) 씨


상흥부 마을 주민인 김사현(87세) 씨는 이렇게 말한다.

“풋굿제는 역사를 알 수 없을 만큼 오래전부터 내려온 우리 마을 전통 축제입니다. 예전에는 마을 성황당 앞에서 매년 행사를 했어요. 하루 종일 전 동민이 모여 먹고 마시고 놀았지요. 씨름도 하고 농악대 놀이도 하고 널도 뛰고요. 한마디로 마을 축제였지요.

 

그때는 경비가 없어 반별로 돌아가면서 경비를 냈어요. 지금은 마을 위를 지나가는 고압선 보상금 중에서 일부를 떼어 축제 기금으로 마련했기 때문에 자금 걱정은 안 합니다.”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이희국 씨는 이렇게 말한다.

“풋굿제는 모심기를 하고 논매기까지 마친 농민들이 하루 피로를 풀고 쉬는 날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음식을 마련해서 하루 종일 재미있는 민속놀이도 하고 즐깁니다. 다른 지방에서도 해왔겠지만 거의 사라졌어요. 그렇지만 우리 마을은 지금까지 매년 행사가 이어져 오고 있어요.”

 

이 마을은 마을 명칭이 매우 기분 좋은 이름이다. ‘흥부(興富)’라는 의미는 ‘크게 부자가 되는 마을’이란 의미인 듯하다. 지형적으로도 마을 앞으로 부구천이 흐르고 마을 뒤쪽으로 나지막한 산들이 둘러싸여 북풍을 막아준다. 하천 양쪽으로 꽤 넓은 농토가 분포되어 예전부터 식생이 풍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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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김진석(86세) 씨


그래서 그런지 이 마을 출신들이 공직에 많이 진출했고 걸출한 인물들도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상흥부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김진석(86세) 씨는 마을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여기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기 때문에 마을 역사에 대해서는 산증인입니다. 풍수지리설로 보면 상흥부 마을은 ‘배 형국’이라 했어요. 배는 물에 뜨면 떠나가잖아요.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바다가 보이는 쪽에 일부러 나무를 심어 바다가 보이지 않도록 막았다고 합니다.

울진군 역사를 보면 군수나 울진군을 이끌어온 유지들이 우리 마을 출신이 제일 많았어요. 공무원들도 북면 출신이 가장 많았고요.”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상흥부 마을이 애국마을이라는 점이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이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때 의병이나 독립운동가들도 이 마을 출신이 많았고, 6·25 한국전쟁 때도 공산군들에게 부역한 주민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김진석 씨는 과거를 회상하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상흥부 마을은 일제강점기 때 의병이나 독립운동가들이 가장 많았던 동네입니다. 3·1 만세운동 때도 가장 열심히 만세를 불렀고요. 6·25 때도 공산군들이 쳐들어왔지만 한 사람도 공산군에 협조한 사람이 없었어요.

공산군들이 인민위원장을 뽑으라고 하도 난리를 쳐 협박에 못 이겨 김 모 씨를 뽑았어요. 그런데 그분은 마을 주민들을 공산군들로부터 오히려 보호했어요. 나중에 아군이 들어와 인민위원장을 잡아가려 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서서 ‘그는 오히려 우리를 보호했다’고 강력하게 변론해서 무사했지요.”

 

이렇듯 상흥부 마을은 애국심으로 결속된 모범 마을이다.

울진군 북면은 원자력발전소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부구리를 중심으로 원자력발전소 직원들의 숙소, 식당, 공장 등 다양한 업소들이 생겨나면서 외지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다.

 

인구가 많아지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좋은 점도 있지만 달갑지 않은 점들도 많다. 사시사철 문을 잠그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농촌 마을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인심이 후하다’는 말조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부구3리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미풍양속이 소멸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마을의 대소사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장을 중심으로 항상 단합된 모습을 보임으로써 주변 마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상흥부 마을같이 전통을 고수하는 마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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