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섭
(동원대학교 교수, 국제교류원장)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이 밖에 나갔다가 제집을 못 찾아 길가에서 우는 자를 만났다.
“무슨 일로 울고 있는가?”
“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다 큰 자가 길을 잃었다니?”
“예. 저는 다섯 살 때 눈이 멀어 이 나이 되도록 스무 해 동안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와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눈이 밝아지더니 천지 만물이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눈을 떴다면 그건 기쁜 일이 아닌가?”
“아닙니다. 기뻐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밭둑에 갈림길이 많고 이 집 저 집 대문들이 같아서 도무지 제집을 구분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보지 못할 때는 괜찮았는데 보게 되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화담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돌아갈 방도를 가르쳐 주마.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는 화담이 일러준 대로 다시 눈을 감고 예전처럼 지팡이를 두드려가며 집으로 돌아갔다. 연암 박지원이 쓴 수필집 『답창애(答蒼厓)』 「지이(之二)」에 실려 있는 일화이다.
연암은 “눈을 뜬 소경이 길을 잃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색상(色相)이 뒤바뀌고 희비(喜悲)의 감정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로 망상(妄想)이라고 한다. 지팡이로 더듬고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진정한 도리요, 제집으로 돌아가는 증인(證印)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보이고 들리는 게 많아 어지러운 세상이다. 어지러운 것을 바라보면 그 어지러움 속에 빠지게 된다. 두려움에 빠지면 그 두려움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두려움은 마음이 빚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나룻배를 모는 뱃사공이 급류 속에도 문제없이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그 어지러운 물살을 보지 않고 강 건너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게 너무 많아 헷갈릴 때는 차라리 눈을 감고 초심을 떠올려야 한다. 길이 너무 많으면 길을 잃는다. 안 보일 때는 괜찮았는데 눈으로 보이는 게 많으니까 헷갈리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 뉴스를 검색하기가 두려운 세상이 되었다. 무엇 하나라도 마음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어렵다.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보고 판단하려면 내 식견이 그걸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금방 느끼기 때문이다.
나라 안팎에 예사롭지 않은데도 정치권 행태를 보면 지금의 이 모습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의 꼴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 선거가 끝나고 국회가 문을 연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원(院) 구성을 놓고 아귀다툼하고 있는 꼴이라니……. 그러고 보니 언제는 안 그랬던가? 늘 그 꼴이었는데 새삼스러운 것도 없다.
추위를 견디려고 서로 껴안고 싶지만 서로 가지고 있는 가시가 있음을 알고, 마침내 서로를 찌르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알맞은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용어처럼, 서로 양보하면서 협치를 통해 백성의 믿음을 회복하려는 노력에는 아예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저들의 행태를 지켜보는 백성을 마치 어린애처럼 취급하지 않는다면 어찌 저렇게 오만할 수 있단 말인가?
『답창애(答蒼厓)』에 실려 있는 또 다른 일화. 마을의 어린애에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다가, 읽기를 싫어해서는 안 된다고 나무랐더니, 그 어린애가 하는 말이 이랬다.
“하늘을 보니 푸르고 푸른데 하늘 ‘天’이라는 글자는 왜 푸르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싫어하는 겁니다.”
연암은 이 아이의 총명함이 가히 ‘창힐(蒼頡)’로 하여금 기가 죽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며 탄복하고 있다. 창힐은 눈이 네 개에 눈동자가 두 개씩이었으며 아주 총명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중국의 전설 속의 인물이다.
국정을 책임진 자들은 우리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무법천지 만들며 멋대로 노니는 저들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저 일화 속의 어린애 대답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저들이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은 하나다. 국정을 책임진 자들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초심을 되찾는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하늘이 푸르다는 걸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그래서 저들에게 이른다.
“도로 눈을 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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