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나라 말, 소하(蕭何)는 한(漢) 고조 유방(劉邦)을 도와 반진(反秦)의 의거를 일으켰다. 그는 유방을 도와 진(秦)을 무너뜨리고 항우(項羽)의 초(楚)와 천하를 다투었던 5년 동안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공헌을 했는데, 후세 사람들은 그를 두고 한신(韓信), 장량(張良)과 더불어 한초삼걸(漢初三杰)이라 부른다.
그는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도 뛰어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한신을 발탁하여 천거했으며, 나중에 한신이 대우에 불만을 품고 도망치자 그를 붙잡아 와서는 유방에게 ‘천하를 차지하실 생각이라면 그 외에 마땅한 인물이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그를 중용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함락시켰을 때 점령군의 대부분 장졸(將卒)들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납치하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소하는 상부(相府)로 달려가서 지도와 법령 등 중요한 문건들을 먼저 수습했다. 그리고 훗날 재상(宰相)이 되자 그 때 확보한 진나라의 문헌과 자료들을 토대로 전국의 지리나 풍토, 민심 등을 파악하여 한나라의 법령과 제도를 제정하였다.
그의 관심은 오랜 전쟁으로 피폐된 민심을 어떻게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소하가 죽자 그의 천거로 조참(曹參)이 승상에 올랐다. 그는 소하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소하가 만들어 놓은 틀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답습하면서 오랜 전쟁으로 상처받은 민심을 치유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한나라는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급속도로 안정되어 갔고 이른 바 문경지치(文景之治)에 이어 무제(武帝)라는 걸출한 제왕을 탄생시킨다.
후세 사람들은 두 사람을 소조(蕭曹)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전한(前漢) 말기 학자 양웅(楊雄, B.C.53~A.D.18)이 지은《법어(法語)》의〈연건(淵騫)〉편에 보면, ‘소하가 만든 법규를 조참이 그대로 따랐다(蕭也規 曹也規)’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규조수(蕭規曹隨)’라는 고사성어로 회자되면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시화연풍의 태평성대를 만들겠다고 호기 있게 출발했던 이명박 정부가 비틀대고 있다. 지난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몰아세우며 극렬하게 비판했던 보수정권은 지난 1년 동안 거의 한(恨) 풀이에 가까울 정도로 기득권을 찾는 데 몰두해왔다. 지난 정권에서 만들어 놓은 법은 대부분 악법이고 대부분의 제도는 불필요하다면서 닥치는 대로 뜯어 고치고 부수는 바람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작 들려와야 할 건설현장의 망치소리는 사라지고 다수의 힘으로 법과 제도를 바꾸려는 의사당의 망치소리만 시끄럽게 들려온다. 그 결과 정치는 실종되고 민생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이제 국민소득 4만 불의 시대를 열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없다. 출범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불과 1년 만에 사라진 기업들과 일자리, 반 토막나버린 주식과 천정을 모르고 오르는 물가 등, 먹고 사는 문제는 말도 꺼내기가 쑥스러울 정도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권, 세상은 이를 두고 ‘명박산성’이라고도 불렀고 때로는 ‘먹통’이라고도 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바로 ‘촛불’로 상징되는 ‘소통(疏通)의 부재(不在)’에서 비롯된 현상이라 하겠다.
시대는 21세기인데 70년대의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려고 하니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난 1년 동안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서민들은 요즈음 억장이 무너지고 있다. 매번 정권이 바뀌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어디 잘못된 구석이 없었는지 허물을 캐서 폭로하기에 바쁘다 보니 지난 정권에서 해놓은 것은 아무 소용도 없어지고 뭐든지 새로 다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자기 임기 중의 업적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이 되니 법은 모두 누더기가 되어버렸고 그 결과 대부분의 법은 국민들로부터 권위를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바꾸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님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청와대는 2009년 새해 화두로 ‘위기를 맞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세우다’라는 뜻의 부위정경(扶危定傾)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부위정경은 주서(周書) 이기전(李基傳)의‘태조가 위기를 맞아 나라를 안정시켜 그 위엄과 권위가 왕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太祖 扶危定傾 威權震主)’에서 유래된 문구로,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경제위기를 극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나라를 든든한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설명을 들으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동안 정치를 잘못해서 나라가 위태로워 졌다는 것인데 자기들은 그동안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남들이 잘못해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으므로 이제 자기가 슈퍼맨이 되어 위기에서 구해 반석에 올리겠다는 참으로 오만방자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안하무인격인 현실인식이 바탕에 흐르고 있으니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소하와 조참 같은 훌륭한 재상을 더더욱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축년(己丑年) 새해가 밝았다. 힘들었던 2008년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그래도 우리는 모두 새해에는 무언가 새롭게 달라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는지 어디 한 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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