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 우물이
혼자 있다
엄마가 퍼 간다
할매가 퍼 간다
순이가 퍼 간다
돌이가 퍼 간다
우물은 혼자서
물만 만든다
엄마도 모르게
할매도 모르게
순이도 못보게
돌이도 못보게
우물은 밤새도록
물만 만든다
이번 달에는 동시「우물」을 소개합니다.
동시는 흔히 어린이들만 읽는 시로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동시는 어른들도 꼭 읽어야 할 시이기도 합니다.
이 동시는 권정생 선생님이 1960년대, 청년 시절에 쓴 작품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마을에는 동네마다 한두 개쯤 우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거나 방치된 채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우물’이라는 말조차 생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어사전은 ‘우물’을 ‘땅을 파서 샘물이 나오게 만든 시설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상수도 시설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우물은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는 존재였습니다.
우물은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물을 길어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물을 퍼갈 줄만 알았지, 생명을 지켜주는 물을 만들어 내는 주체가 바로 우물이라는 사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순이, 돌이… 누구든 우물에서 물을 퍼가지만, 우물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합니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존재할 뿐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이지요.
이렇듯「우물」은 끊임없이 퍼주기만 하는 무한한 사랑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 동시는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우물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입니다. 이 동시에서는 우물을 만든 사람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이는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이며, 공동체의 따뜻함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회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조용히 헌신하며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 존재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할머니, 엄마, 순이, 돌이 등은 모두 정겨운 이웃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우물을 중심으로 가난하지만 따뜻하게 정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바로 이런 사람 사는 냄새 나는 소박한 마을이, 권정생 선생님이 꿈꾸던 이상향이었을 것입니다.
권정생(1937~2007) 선생님은 평생 독신으로 병마와 싸우며 아름다운 동화와 동시 수백 편을 써오신 분입니다. 한국 어린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셨으며, 동화『강아지 똥』과『몽실언니』는 널리 알려져 영화나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권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도 벌써 20여 년이 되어갑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십수억 원에 달하는 인세를 모아두었다가 가난한 북한 어린이들과 세계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겨,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가장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이 바로 ‘우물’이 되어 살아간 분이셨던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권정생 선생님의 삶을 두고 ‘우리 시대의 성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생전에 인연이 있었던 터라,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으로서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과 삶이 일치한 그가 남긴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샘솟는 우물처럼 우리 영혼을 맑게 해주는 마중물이 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김진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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