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섭(동원대학교 교수)
소동파가 하남성 여주(河南省 汝州)로 유배 가는 도중에, 강서성(江西省) 구강(九江)에 있는 여산(廬山)을 지나가게 되었다. 170여 개의 봉우리와 14개의 호수,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여산은 불교와 도교의 성지로서 오늘날 중국 10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0여 일 동안 여산의 여기저기를 둘러본 소동파는 마지막 일정으로 서북쪽 기슭의 서림사(西林寺)를 돌아보고 한쪽 벽면에 시 한 수(首)를 남겼다. 오늘날 전하는 ‘제서림벽(題西林壁, 서림사 벽에 쓰다)’이라는 시(詩)다.
앞에서 보니 능선이요, 옆에서 보니 봉우리라, (橫看成嶺側成峯)
멀리 가까이 높고 낮음이, 보는 곳에 따라 다르구나. (遠近高低各不同)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함은 (不識廬山眞面目)
단지 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로다. (只緣身在此山中)
위 시에서 마지막 두 구절은 시인의 철학적 생각을 담고 있다. 즉, 여산이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은, 몸이 아직 산속에 있어서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산의 진정한 모습은 산속에서 나와 멀리 밖에서 바라봐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소동파는 이 시를 통해 한 시점에서 본 것만으로 전체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철학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이라는 성어의 유래가 된 명 시구절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이와 다름이 없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겪어봐야 그 사람의 됨됨이, 즉 인성이나 의리, 정직함 등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늘 시끄럽다. 잠시 그때 시류를 주도하는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지난 일과 지금 하는 일을 놓고 공과(功過)와 옳고 그름(是非)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조용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장강(長江)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일과 같다.
사람들의 관점과 평가는 그때의 시류에 편승하여 고정되는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사회적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들에 대해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흔들리는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평정심을 찾는다. 시류(時流)는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으므로 곧 사건의 이면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는 것쯤은 알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나 인간관계, 조직의 문제, 개인의 감정 등을 제대로 읽으려면, 우리에게는 일단 그 문제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제3의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문제를 너무 안에서 보려고 하다가 본질을 놓치기 일쑤다. 멀리서 보고, 다양하게 해석하고, 다르게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쏟아지는 뉴스들에 대하여 객관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사회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해 보려는 태도, 그리고 대국적 관점으로 살펴야 그 뉴스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SNS나 언론에서 하나의 사건을 두고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한 이유도, 이런 관점의 다양성 때문이다. 사건의 당사자보다 바라보는 사람이 더 자세하게 살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나무만 보면 숲을 볼 수 없고, 숲만 보면 나무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체의 모습을 이해하려면 거기에서 떨어져야 한다.
요즈음처럼 안방에 앉아 지난 일과 지금 하는 일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두 한 발짝 물러서서 ‘멀리서 바라보기’가 필요하다.
상대를 이해하려 들면 용서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입에 게거품을 물고 삿대질하며 흥분했던 일들이 실은 꼭 그럴 만한 일은 아니었다고, 그토록 미워하고 저주했던 사람들도 그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가슴 아픈 사고나 근심거리는 그만하길 다행이었다고,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이 나중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올 한해도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을 살면서 혹시라도 나의 인간 됨됨이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는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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