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날 103년, 방정환의 물음 앞에서
필자가 졸필로 쓴 방정환 선생이 1923년 5월 1일에 발표한 선언문은 <어른에게 전하는 부탁>과 <어린이에게 전하는 부탁>으로 되어있다. 1920년대에는 아직 한글 맞춤법이 지금처럼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룬”, “보드랍게”, “가튼”, “때맛쳐”, “맨그러” 같은 낱말이 소리나는 대로 쓰였다.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소파 방정환은 어른들에게 조용하지만 단호한 부탁을 남겼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쳐다보아 주시오.”
그 한마디에는 어린이를 어른의 소유물이나 미완성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보아 달라는 간절한 외침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의 가난과 억압 속에서도 그는 어린이의 웃음과 꿈을 먼저 생각했다. 아이들이 햇볕 아래 뛰놀 수 있는 세상, 마음껏 배우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 매 맞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래서 그는 ‘어린애’ ‘이놈, 저놈’ 대신 인격존중하는 뜻으로 ‘어린이’란 말을 만들었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최초로 어린이 인권선언을 외쳤다.
그러나 어린이날 103년을 맞은 오늘, 정말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세계 곳곳에서는 어른들이 벌인 전쟁으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늘 어린이다.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아이들, 노동 현장에서 손이 닳도록 일하는 아이들, 돈벌이와 욕망의 대상으로 착취당하는 아이들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겉으로는 예전보다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학교를 마치면 다시 학원으로 향하는 생활이 되풀이된다. 이러한 모습은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 있다. 배움의 즐거움과 마음의 성장은 차츰 밀려나고, 정서와 놀이보다 성적과 지식이 더 앞세워진다. 어릴 때부터 대학입시 경쟁교육은 보편적인 현실이 되고 있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라는 어느 교육학자의 말을 새삼 되새겨 보는 바이다.
어린이가 우리 미래라고 하면서도 정작 현재 어린이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사회 미래 또한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이가 웃지 못하는 나라는 평화로운 나라가 아니다.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어린이가 두려움 없이 잠들 수 있어야 진정한 문명이며, 어린이가 행복해야 비로소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파 방정환은 103년 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린이를 어떻게 존중하는가가 그 사회의 품격이라는 것을.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어른들을 강하게 질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할 것 같다.
어린이를 경쟁 도구로 키우지 말아 주십시오. 어린이를 착취 대상으로 삼지 말아 주십시오.
아이들의 놀이와 웃음을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전쟁과 증오를 멈추고,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어린이 행복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이 세상의 평화와 인간다움을 지키는 첫걸음임을 명심하시오.
(김진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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