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전 동원대학교 교수)
사람은 살아가며 수많은 인연을 맺는다. 그중에서도 가르침을 주고받는 사제(師弟) 사이의 인연은 한 사람 삶의 방향을 바꾸는 깊은 힘을 지닌다.
“말없이 서 있어도 길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스승의 자리를 일컫는 말이다. 스승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 곳곳에서 열매를 맺고 있다는 뜻으로, 옛 선비들은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라는 표현으로 칭송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복숭아(桃)와 오얏(李)이 세상에 가득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복숭아와 오얏은 스승이 길러낸 제자들을 비유한다.
이 말은 중국 당나라 명재상 적인걸(狄仁傑)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오로지 능력과 인품을 기준으로 인재를 천거하고 발탁하여 당 왕조 부활을 이끌었다.
조정 곳곳에 적인걸이 추천한 인물들이 포진하여 활약하자, 사람들은 그의 문하에 걸출한 인재가 가득하다 하여 ‘천하의 인재들이 모두 공의 문하에 있습니다(天下桃李 悉在公門矣).’라고 칭송했다. 이는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인재를 길러 세상에 내보낸 스승의 공로를 기리는 찬사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 「당기(唐紀)」에 나온다.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때, 교육과 훈육의 수단으로 회초리를 사용했다. 그 회초리는 학생의 부모가 자식을 잘 가르쳐 달라는 의미로 바친 것이었다. 그래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일러 ‘교편(敎鞭)을 잡는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편(鞭)’은 회초리를 뜻한다.
『예기(禮記)』에는 ‘싸리나무 회초리와 가시나무 회초리, 이 두 개는 교육의 권위를 위한 것이므로 약간의 체벌이 필요하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에도 ‘자식 사랑이 지나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는 버릇이 없다(慈母有悖子).’라고 했다. 자식 교육에 회초리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자식을 서당에 맡길 때 초달(楚撻)이라 하여 싸리나무 회초리를 한 다발 만들어 훈장에게 바쳤는데 이런 관습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했다. 율곡도 『학교모범(學校模範)』에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은 회초리로 때려라.’라고 가르쳤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에서도 훈장이 종아리를 맞고 우는 학동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묘사돼 있을 정도로, 회초리를 들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못된 짓을 한 자식을 조상 묘에 데려가 아이에게 아비의 종아리를 때리게 하는 ‘조상매’도 있었고, 가문의 규율을 어긴 족인(族人)을 회초리 치는 ‘가문매’도 있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자식교육과 제자 교육에는 회초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교사로 첫발을 내디딜 때 ‘교편(敎鞭)을 잡는다.’라고 하여 집안의 자랑거리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때가 불과 몇십 년 전이다. 교편(敎鞭)은 출석부와 함께 교사의 상징처럼 여겨졌었다. 문자 그대로 회초리를 들어 학생의 종아리를 때리며 가르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회초리를 놓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교사는 교사라는 이름만으로도 존경받아야 하는데, 체벌 금지 등을 담은 ‘학생인권 조례’가 제정되면서, 이제 교육 현장에서 ‘사랑의 매’를 들먹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폭언·폭행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제자에게 폭행까지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지금의 교육 현장이다. 학교 교사의 회초리는 ‘폭력’이고, 학원 선생의 매는 ‘사랑의 매’라는 자조 섞인 말이 교사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교사에 대한 모욕과 수난이 도를 넘었다.
오늘날 교육이 성과와 속도로 재단되는 현실에서 ‘교편’은 더 이상 잡아서는 안 되는 위험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교사의 역할이 훈육 없이 지식만을 가르치는 지식전달자로서 가치만 인정된다면, 교편의 진정한 의미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가 말하는 교육은 시험 성적이나 즉각적인 결과가 아니다. 스승으로서 제자들을 이끌어가는 삶의 방향이요 결이다. 그러므로 ‘도리만천하’는 스승에게는 최고의 찬사이며, 제자에게는 그 배움에 대한 길임을 일깨우는 말이다.
나무는 하루아침에 꽃을 피우지 않는다. 묘목 때부터 물과 거름을 주고, 가지를 손질해야 한다. 자라면서 비바람과 추위를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교육 또한 다르지 않다. 교육은 앞선 사람이 아직은 덜 성숙한 후학을 가르치는 고도의 지적, 전인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교편을 놓으면 교육이 바로 설 수 없다. 교사로서의 교육적 권위가 존중되지 않으면 사회적 인간을 만드는 학교 교육은 필요치 않다.
앞으로 교사들에게 어떤 덕담을 해드릴 수 있을까? 이제는 복숭아와 자두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는 고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옛날이야기가 된 것이다.
오호, 통재라! 어찌하다 내 자식만 귀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교사(敎師)는 귀하지 않은 세상이 되고 말았을까? ‘스승의 달’이라는 5월이 무색해진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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