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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산문 64] 황홀한 색채의 블랙홀에 빠지다

  • 김진문 시인
  • 입력 2026.06.26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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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 한국 근대 거장전 /2026. 5.19~10.25 : 서울시립미술관(관람 무료)

/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글·사진 / 김진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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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1층에 마련된 유영국미술전 홍보물

 

“와, 색채 바다에 풍덩 빠진 것 같아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전시장. 한 관람객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오래 귀에 남는다. 어떤 이는 “색채의 블랙홀 같다”고 했고, 충남 아산에서 어머니와 함께 온 초등학교 4학년 아이는 “그림 뜻은 잘 모르겠는데 색깔이 정말 아름다워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렇다. 유영국의 그림 앞에서는 굳이 어려운 해설이 필요하지 않다. 먼저 눈이 반응하고, 다음으로 마음이 물든다. 붉음과 푸름, 노랑과 초록이 서로 부딪히고 어우러지며 관람객을 그림 속 깊은 곳으로 끌어당긴다. 어느새 우리는 색채가 만들어낸 거대한 우주 한가운데 서 있게 된다.


올해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 탄생 110주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를 기념해《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특별전을 마련했다. 회화뿐 아니라 부조, 드로잉, 사진, 아카이브 자료 등 170여 점이 공개된 역대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 전시장을 걷다 보면 한 예술가가 평생에 걸쳐 구축한 예술 세계가 한눈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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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필자(2026.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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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work, 1979, 106×106cm(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작품 170여점 전시 공개

유영국은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새로운 미술 사조를 접하며 추상미술의 길에 들어섰고, 귀국 후에는 고향에서 어업과 양조업에 종사하며 생활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늘 그림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다시 붓을 들었고, 이후 평생 자신만의 추상 세계를 탐구하며 한국 현대미술사의 큰 봉우리가 되었다.


전시 제목인 ‘산은 내 안에 있다’는 그의 예술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다.

“내 그림의 주제는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자연이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산이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그의 말처럼 유영국의 산은 풍경화 속 산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산을 그대로 옮긴 것도 아니다. 산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과 생명의 기운, 자유의 정신을 색과 선, 면으로 새롭게 빚어낸 산이다.

생각해 보면 그 뿌리는 고향 울진의 자연에서 자라났을 것이다. 동해의 푸른 수평선과 밀려오는 파도, 금강송 숲이 우거진 응봉산과 통고산, 굽이치는 능선과 깊은 계곡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와 산이 함께 있는 풍경 속에서 성장했다.


동해의 물결에서는 끝없이 변화하는 푸른 색조를 보았을 것이고, 산 능선에서는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선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것이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빛과 하늘, 바람과 숲의 기운은 훗날 그의 화면에서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유영국의 추상은 현실에서 멀어진 예술이 아니라 자연의 본질을 향한 또 다른 언어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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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work, 1963, 130×1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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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1964, 130.8×194.4cm 

 

전시는 여섯 개의 주제 공간(이 글에 나오는 유영국 미술 작품과 사진 등의 출처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회 현장에서 촬영한 것임을 밝힙니다.)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공간 - 1964년, 내밀한 예술의 문을 열다

1공간에서는 1964년 첫 개인전에 출품되었던 작품들을 만난다. 봄빛처럼 깨어나는 색채의 공간이다. 그 가운데 대표작인 ‘해토(解土)’는 겨울 내내 얼어붙었던 땅이 봄기운에 녹아 풀리는 현상을 뜻한다. 화면을 채운 붉은색과 푸른색, 노란색과 초록색은 마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대지의 숨결처럼 꿈틀거린다. 땅속 깊이 얼어 있던 서릿발이 풀리고, 그 틈으로 따뜻한 생명이 솟아오르는 순간이 색채로 번져 나온다. 그림 앞에 서 있노라면 봄날 흙냄새가 코끝에 스치는 듯하고, 막 움트는 새싹의 기운이 가슴속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초기작들만 둘러보아도 유영국이 얼마나 뛰어난 색채 감각의 소유자였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추상을 그린 화가가 아니었다. 색채를 통해 자연의 리듬과 생명의 기운을 길어 올린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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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1957, 97×130cm

 

제2공간 - 아방가르드 예술을 찾아서

이어지는 제2공간에서는 젊은 유영국의 치열한 실험 정신을 보여준다. 이곳에는 그가 새로운 예술의 길을 찾기 위해 탐색하고 도전했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본래 프랑스어로 ‘전위(前衛)’, 곧 앞장서 나가는 부대를 뜻한다. 예술에서는 기존의 관습과 형식을 과감히 넘어 새로운 표현을 개척하려는 혁신과 실험적인 예술 정신을 가리킨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난 입체파, 표현주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등이 이러한 아방가르드 예술의 흐름에 속한다.

『학교 선생들이 시키는 대로 해봤자 선생따라 가는 거지, 그 정도 될까, 조금 앞설까, 뒤질까. 내가 할 것이 없잖아요? 그럴 바에야 새로운 것 보자. 그래서 추상을 했지요.』(유영국, 1996)


젊은 유영국 역시 당대의 고정된 미술 관념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찾아 나섰다. 이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은 훗날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되는 그의 뜨거운 도전과 실험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회화라는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았다. 부조와 사진,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더구나 일본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출품했던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그가 직접 촬영한 경주 불국사와 남산, 골굴암의 흑백 풍경 속에는 이미 훗날 추상 세계를 이룰 조형 감각의 씨앗이 숨어 있다. 형태와 구조, 공간의 질서를 바라보는 예민한 시선이 사진 한 장 한 장에 배어 있다.


종이 위에 연필과 펜으로 남긴 습작들 또한 인상적이다. 거칠고 소박한 선들 속에서 훗날 찬란하게 피어날 추상의 세계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하다. 마치 거대한 숲이 되기 전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어린나무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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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대웅전(좌), 경주 골굴암 석불(가운데), 경주 서남산 석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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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사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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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작업실 의자와 작업대

 

제3공간 - 추상의 문법을 찾아서

그의 그림에서 추상화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던 시기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벽면에는 유영국의 말이 적혀 있다.


“색채 없는 그림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강력한 색채를 쓰더라도 그 배열과 대비에 따라 강도의 변화가 달라집니다. 리듬과 하모니, 밸런스가 중요하거든요.”


이 공간은 유영국이 평생 추구했던 추상의 의미와 확장을 가장 깊이 보여주는 곳이다. 1964년 첫 개인전 이후 그는 자신의 추상 세계를 더욱 치밀하게 다듬어 갔다, 1960~7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예술적 절정에 도달한다. 놀랍게도 그의 작품이 처음 판매된 것은 1975년, 나이 쉰아홉이 되어서였다고 한다. 긴 세월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한 예술가의 고독한 시간이 새삼 가슴을 울린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색채의 향연이다. 빨강·노랑·파랑의 삼원색은 물론 보라와 분홍, 초록이 수없이 변주되며 화면 위에서 춤춘다. 과감한 원색들은 서로 부딪치고 어우러지며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서른여 점의 작품이 걸린 전시장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어떤 이는 넋을 잃은 듯 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었고, 어떤 이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 또 다른 이들은 낮은 목소리로 감탄을 나누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의 움직임조차 잊힌다. 오직 색채만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면 속 녹색의 선들은 경계를 긋는 듯하면서도 오히려 벽을 허물어 버린다. 그 틈으로 주황과 노랑, 초록과 푸른빛이 눈부시게 솟아난다. 청록의 품 안에 자리한 붉은 삼각형은 강렬하면서도 따뜻하고, 붉은 사각형은 뜨거우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평온하다. 서로 충돌하는 색들이 오히려 화해와 균형을 이루며 깊은 평화를 만들어 낸다.


아, 저토록 맑은 녹색의 빛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붉은 바탕에 조용히 떠오른 둥근 붉은빛은 또 무엇을 품고 있는 것일까. 산일까, 해일까, 아니면 화가의 마음속에서 길어 올린 자연의 숨결일까.

그 답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빛들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머물며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산 너머 저녁노을을 바라본 뒤에도 눈동자 속에 오래 남는 잔광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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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풀, 1959, 130.2×96.1cm 

 

제4공간 - 심상추상: 산은 내 안에 있다.

이 공간에는 55여 점 작품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하나하나의 그림 앞에 서다 보면 문득 놀라게 된다. 이 시기 유영국은 심장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들에서는 병마의 흔적보다 오히려 삶을 향한 강인한 의지와 창조의 열정이 먼저 읽힌다. 육신은 쇠약해졌을지라도 그의 정신은 더욱 깊고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듯하다. 이 공간에서 게시된 작품은 참으로 산과 바다가 빚어낸 색의 교향곡이었다.


유영국에게 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 화폭 속에서 되살아난 내면의 고향이자 삶의 상징이었다. 푸른색과 녹색이 어우러진 화면 속에서는 나무들이 하늘을 떠받치듯 서 있다. 때로는 두 팔을 높이 들어 우주를 향해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붉은 태양은 산등성이 너머로 천천히 기울며 장엄한 노을빛을 펼쳐 놓는다.

산은 저마다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어떤 산은 초록과 주황,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고, 어떤 산은 달빛을 품은 채 신비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여름 산을 그린 작품에서는 붉게 달아오른 산맥이 마치 화산의 숨결을 품은 듯 꿈틀거린다. 그 둘레를 감싼 짙은 녹색의 산들은 생명의 기운을 머금은 채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녹색 태양이 지평선을 따라 굴러가는 듯한 모습에서는 현실의 풍경을 넘어선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바다를 담아낸 작품들도 인상 깊다. 청색 계열의 색채는 자연스럽게 고향 울진의 푸른 동해를 떠올리게 한다. 녹색 바탕 위에 밝은 색채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울림은 새벽 바다의 빛과도 닮았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하늘과 바다와 땅이 하나로 이어지며 우주의 빛을 밀어 올리는 장면이 연상된다. 어떤 작품에서는 수많은 물고기가 바다를 가득 메운 채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그 모습은 생명의 율동이자 자연이 들려주는 무언의 노래처럼 느껴졌다.


특히 1981년에 제작된 한 작품(캔버스에 유채, 97.5×130cm) 앞에서는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다. 화면 속 검은 기둥들은 강물 한가운데 박힌 말뚝처럼 보이고, 그 사이로는 물줄기가 힘차게 흘러내린다. 그것을 바라보며 문득 고향 울진의 남대천이나 왕피천 하구의 보(洑)가 떠올랐다. 물론 어디까지나 관람자인 나의 상상일 뿐이다. 추상화에는 정답이 없다. 화가가 직접 말해주지 않는 한, 그림은 보는 이마다 다른 풍경을 품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추상의 매력일 것이다. 유영국의 산과 바다는 화폭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저마다의 기억과 상상 속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산이 되고, 또 다른 바다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가 평생 그린 산은 어쩌면 우리 밖의 산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산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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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work, 1981, 73×100cm 


제5공간 - 무한, 그 너머

이 공간에는 여섯 점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빗금 친 마름모꼴 형상의 그림이었다. 규칙적으로 이어진 마름모들은 마치 한옥 창호의 문살을 기하학적으로 풀어낸 듯했고, 화면 아래에는 산의 형상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청색과 연둣빛이 어우러진 푸른 마름모들 사이로 맨 위에 놓인 노란 마름모 하나가 유난히 빛났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붉은색과 주황색 계열의 마름모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따뜻한 햇살처럼 환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작품은〈무제〉(1993)였다. 검은색과 자주색이 겹겹이 쌓인 산의 형상 위로 자줏빛 하늘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 둥근 흰 형상이 떠 있다. 달일까. 산속에도, 땅 위에도, 밤하늘에도 같은 형상이 대칭을 이루며 나타나는데, 그 풍경은 현실이라기보다 꿈속의 한 장면처럼 신비롭다. 고요하면서도 어딘가 애잔하고,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그리움과 슬픔이 은은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래 머물렀던 작품은 1999년에 제작된 유영국의 절필작이었다. 작품 설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투명한 선홍빛 색채와 절제된 붓질을 통해 화면 전반에 고요한 진동을 형성하며 무한을 향한다.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붉은 산의 형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정점의 마지막 산은 채색되지 않은 채 여백으로 남겨져 있다. 이는 결핍이나 미완이 아니라, 재현과 구성의 원리를 넘어선 지점에서 도달한 자유의 상태를 가리킨다.”


채워지지 않은 마지막 산은 오히려 가장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비어 있음은 부족함이 아니라 무한으로 열려 있는 가능성이었고, 여백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처럼 다가왔다.

유영국은 말한다.


“화가의 눈은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산은 추상의 빈 그릇일 수도 있다.”


그의 말처럼 예술가는 눈앞의 사물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보아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유영국이 평생 그린 산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자유와 이상, 그리고 예술의 절대 세계를 향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절필작에 남겨진 마지막 여백 앞에 서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화가는 붓을 내려놓았지만, 그의 예술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채색되지 않은 그 산 너머에서 그는 지금도 끝없는 창조의 세계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아, 한평생 산과 바다를 그리며 자유를 꿈꾸었던 유영국의 뜨거운 예술혼이여. 그는 색채를 통해 영원의 풍경을 그렸다고 하면 지나친 언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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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공간 - 작은 다큐멘터리, 유영국의 삶을 비추다

전시의 마지막 길목에 이르자 어둑한 공간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화려한 색채로 가득하던 전시장을 지나온 사람들은 자연스레 걸음을 늦추고 화면 앞 의자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눈빛만이 조용히 빛났다. 작은 화면에서는 유영국의 삶을 담아낸 짧은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상은 그의 고향 울진의 산과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먼 수평선 너머로 밀려오는 파도, 죽변의 푸른 바다와 해안 풍경이 화면을 채웠다. 마치 그의 그림 속에서 끝없이 되살아나던 산과 바다가 다시 제 모습을 찾아온 듯했다. 이어 가족들이 등장해 화가 유영국이 아닌 한 인간 유영국을 이야기했다. 가족의 기억 속에 남은 따뜻한 아버지이자 남편, 그리고 평생 붓을 놓지 않았던 예술가의 모습이 담담하게 펼쳐졌다.(사진 출처는 유영국 다큐에 나오는 장면을 캡쳐했음.)


화면 속에는 작업실에서 그림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도 나타났다. 말없이 캔버스 앞에 선 채 색을 올리고 선을 다듬는 손끝에는 평생 산과 자연을 탐구해 온 한 예술가의 시간이 배어 있었다. 동료 예술가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는 장면, 전시 개막식에서 테이프를 자르며 관람객을 맞이하는 장면도 이어졌다. 특히 젊은 시절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금강산 수학여행을 떠나 찍은 흑백사진은 관람객의 시선을 오래 붙잡았다. 앳된 얼굴의 소년은 훗날 한국 추상미술의 큰 산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상이 끝나갈 무렵, 나는 다시 그의 그림 속 산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울진의 산과 바다에서 시작된 기억이 평생의 예술이 되어 캔버스 위에 피어난 것이었다. 다큐멘터리는 화가의 생애를 설명하는 기록이면서도, 한 사람이 자연을 사랑하며 살아온 긴 여정을 보여주는 조용한 고백처럼 느껴졌다.

   

제7공간 - 작품, 일상 속으로 스며들다

전시장을 나오자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술관 기념품 공간에는 유영국의 작품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 형상이 담긴 엽서들이 진열대에 놓여 있었고, 그림을 응용한 컵받침과 작은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의 대표작을 인쇄한 천 가방은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의 어깨 위에서 또 하나의 작은 전시가 되어 거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품 이미지가 담긴 인쇄화와 도록, 해설집도 함께 놓여 있어 관람객들은 전시의 감동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캔버스 위에 머물던 그림은 그렇게 엽서가 되고 가방이 되고 책이 되어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살아생전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하며 산과 바다를 색채로 노래했던 유영국의 작품은 이제 미술관 벽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의 삶 속에서 다시 숨 쉬고 있는 셈이다.


전시장을 나서며 문득 뒤돌아보았다. 한 화가가 평생 그려 온 산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울진의 산만이 아니었다. 관람객 각자의 기억과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새로운 산이 되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유영국의 색채는 전시장을 떠난 뒤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저녁노을이 산등성이에 오래 머물 듯, 그의 그림은 한동안 마음속 풍경으로 남아 잔잔한 울림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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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 아트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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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화집과 심상추상 

 

유영국 탄생 110주년 기념전 인터뷰

 

이 인터뷰는 유영국 탄생 110주년 기념전을 맞아 마련한 것으로, 필자가 서면으로 질의한 내용에 대해 답변을 받은 것이다. 

 

전시 준비와 운영으로 아주 바쁜 일정 속에서도 정성 어린 답변을 보내주신 서울시립미술관 여경환 학예연구사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전시 관람과 취재 과정에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 서울시립미술관 권대희 주무관님과 박 교수님께도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유영국은 울진의 산과 바다를 가슴에 품고 한국 추상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선구자이다. 그의 그림 속에는 자연의 본질을 향한 탐구와 자유로운 정신, 그리고 시대를 앞서간 예술혼이 담겨 있다.

이번 인터뷰가 독자들에게 유영국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작은 길잡이가 되고, 더 나아가 그의 작품 속에 깃든 깊은 울림과 아름다움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진문>

 

이번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는 어떤 기획 의도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까?

특히 “산은 내 안에 있다”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를 설명해 주십시오.


탄생 110주년을 맞아 거장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하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동안 유영국의 '산'이 서구식 추상의 영향 안에서만 주로 해석되어 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평생 마주했던 자연의 본질이 어떻게 내면화되었는지에 주목하는 문제의식을 담았습니다. 전시 제목인 “산은 내 안에 있다”는 작가가 단순히 눈앞의 자연 풍경을 재현한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유영국에게 산은 평생을 거쳐 내면화된 절대적인 자연의 정수(Essence)였습니다. 외부의 대상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예술가의 내적 필연성으로 구축된 자연의 에너지를 화폭에 쏟아냈음을 상징하는 문장입니다.


여경환 학예연구사님께서는 오래도록 한국 현대미술을 연구해 오셨는데, 한국 미술사에서 유영국 화백은 어떤 위치에 있는 작가라고 보십니까?


유영국 작가는 한국 현대미술의 문을 연 '독보적인 개척자'이자, 시대의 격동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예술적 나침반' 같은 존재입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이미 가장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미술을 선도하셨고,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도 단 한 번도 추상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미술사에서 서구의 추상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우리 고유의 미감으로 완성해 낸 가장 위대한 성취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유영국 작가는 흔히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또는 “한국 추상화의 태두”로 불립니다.

그의 추상이 서구 추상미술과 다른 한국적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구의 추상미술이 주로 인간 이성과 내면의 순수한 정신성, 혹은 조형 법칙 그 자체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면, 유영국의 추상은 우리가 늘 마주하는 한국적 자연과 그 안에 흐르는 생명력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비록 선과 면으로 엄격하게 분할된 화면이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한국의 사계절이 품은 강렬한 원색과 대지의 기운입니다. 추상이라는 서구적인 조형 형식 속에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거대한 자연의 생동감과 깊은 서정성을 주체적으로 녹여냈다는 점이 유영국 추상만의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한국적인 특성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작부터 후기작, 사진 작품 등 까지 폭넓게 소개된다고 들었습니다.

관람객들이 특히 주목해서 보아야 할 작품이나 시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묘미는 유영국이라는 한 작가의 예술적 궤적을 통해 구성주의 추상부터 표현주의 추상, 기하학적 추상, 그리고 말년의 심상 추상에 이르기까지 한국 추상미술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 두 가지를 꼭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선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미공개작 15점입니다. 그의 예술적 빈틈을 메워주는 귀한 수작들입니다. 그리고 1960~70년대 유영국 추상의 절정을 보여주는 파트에서 조형의 엄격함과 과감한 색채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에너지는, 실제로 마주했을 때 전해지는 감동이 정말 남다를 것입니다.


유영국 화백의 작품에는 ‘산’, ‘바다’, ‘빛’, ‘색채’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러한 자연의 이미지가 그의 삶과 예술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다고 보십니까?


그에게 자연은 삶의 일터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안식처였습니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생계를 위해 고기잡이배를 몰고 양조장을 운영해야 했던 삶의 무게 속에서도, 자연은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화면 속에서 변주되는 산과 바다, 강렬한 빛과 색채는 작가가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롯이 예술가로서 누릴 수 있었던 절대적인 자유와 위로의 언어였습니다.


울진이라는 동해안 지역의 자연과 풍광이 유영국 화백의 예술 세계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울진은 유영국 예술에 있어 일종의 유전자(DNA)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태백산맥이 등 뒤를 버티고 있고, 눈앞에는 깊고 푸른 동해 바다가 펼쳐지는 울진의 장엄한 지형적 특징은 그의 거대한 스케일과 화면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짙푸른 바다의 청색, 타오르는 태양의 적색, 깊은 숲의 녹색 등 그가 사용한 강렬한 원색들 역시 울진의 사계절이 선물한 자연의 팔레트에서 추출된 것입니다.

생전 유영국 작가는 “산에는 모든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울진의 산과 바다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을 넘어, 대자연의 거대한 질서를 담아낼 수 있는 무한한 우주이자 예술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가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이라고 하는데, 작품 선정과 구성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단순히 과거부터 현재로 흘러가는 연대기적 나열을 과감히 탈피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시간을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유영국의 예술적 연관성을 새롭게 구조화’한 점입니다. 작가의 초기 실험과 만년의 심상 추상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어떻게 하나의 본질로 연결되는지, 그 구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미공개작들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을 주제와 내적 맥락에 따라 재배치함으로써, 관람객이 유영국의 예술 세계를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경험하고 그의 깊은 내면과 다각도로 만날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최근 젊은 세대들도 유영국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관람객들이 그의 그림에서 새롭게 공감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SNS와 인공지능 시대를 사는 젊은 세대들에게 유영국의 회화가 주는 ‘압도적인 시각적 몰입감’과 ‘시대를 초월한 세련미’가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핸드폰의 스크린이 줄 수 없는 캔버스 고유의 마티에르(질감)와 대담한 색채 대비는 젊은 층에게 매우 신선하고 감각적인 경험으로 다가갑니다. 무엇보다 평생 예술이라는 한 길 만을 묵묵히 걸었던 거장의 ‘타협 없는 예술 정신’이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와 영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국 근현대미술은 아직 대중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어떤 시선으로 유영국의 추상을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추상은 말이 없어 좋다”던 작가의 말처럼, 무언가를 분석하거나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전시장에 들어섰으면 좋겠습니다. 유영국의 추상은 머리가 아닌 ‘가슴과 세포’로 느끼는 예술입니다. 캔버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마주하며, 그 속에서 나만의 ‘산’과 나만의 ‘자연’을 자유롭게 발견하는 편안한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가 한국 미술계와 지역문화, 특히 울진 지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이번 전시를 통해서 보다 많은 대중에게 유영국 화백과 그의 작품 세계가 폭넓게 사랑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울진 지역민들께는 커다란 문화적 자부심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한국 근대 미술의 거장 유영국의 예술적 뿌리가 다름 아닌 울진의 아름다운 대자연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아 유영국의 추상 속에서 울진의 산과 바다를 생생히 느끼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울진의 자연이 밑바탕이 된 위대한 예술이 어떻게 세대와 지역을 넘어 보편성을 획득했는지 그 경이로운 여정을 지역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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