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제(齊)나라 왕 경공(景公)은 백성들 사이에서 재상 안영(晏嬰)의 명성이 점점 높아지자 그를 더욱 가까이에 두고 싶어 했다.
기회를 엿보던 어느 날 경공은 그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그의 집은 너무 작고 낡은 데다가 맞이하는 부인은 늙어 볼품이 없었다. 경공은 안영에게 집을 고치라고 권하면서 말했다.
“경(卿)의 부인은 늙고 못났구려. 과인의 딸이 젊고 아름다우니 그대에게 주겠소.”
안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절하며 대답했다.
“신(臣)의 아내가 비록 늙고 추(醜)하나, 그녀도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인이 한 남자에게 몸을 맡기는 것은,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도 그 남자가 끝까지 책임져 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저를 믿고 평생 함께해왔는데, 이제 와서 어찌 그 믿음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미 아내의 마음을 받았으니, 왕의 딸이라 해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경공은 감동했다.
“늙은 아내를 버릴 수 없다는 사람이니, 그가 어찌 왕인 나를 저버리겠는가? 내 생각이 짧았도다.”
후한 광무제(光武帝)에게는 누나이자 과부가 된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있었다. 그는 공주가 대사공(大司空)의 직에 있는 송홍(宋弘)을 사모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송홍은 이미 유부남이었다. 만약 그가 공주와 결혼한다면, 황족을 감히 첩으로 들일 수는 없으니 반드시 정식 부인으로 삼아야 했다. 그렇게 되면 송홍의 본처가 쫓겨나야 했으므로 문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황제의 누이라 해도 강제로 혼담을 진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광무제는 송홍을 불러 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병풍 뒤에 호양공주를 숨겨두고 송홍과 얘기를 나누면서 넌지시 그의 마음을 떠보았다.
“세속에 흔히 이르기를,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貴易交), 집안이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富易妻)라고 하는데 경은 어떻게 생각하오?”
송홍이 대답했다.
“신은 가난하고 천할 때 친했던 친구는 잊어선 안 되고(貧賤之知不可忘),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쳐선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糟糠之妻不下堂).”
송홍의 뜻을 눈치챈 광무제는 슬쩍 누나가 있는 쪽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네요.”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에 실려 있는 고사이다.
술지게미(糟)와 쌀겨(糠)로 끼니를 이어가야 했던 가난한 시절을 함께 견디며 살아온 아내가 곧 조강지처다. 단어 자체에 가난과 고생, 그리고 동반자라는 의미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조강지처 사례는 역사와 문학작품 속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고려 시대는 물론이요 조선 시대 선비는 권세를 얻은 뒤에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가 변해도, 가난하고 힘겨운 시절을 함께한 인연을 저버리지 않는 것을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도리로 여겼다.
오늘날에도 사회생활이나 직장, 정치와 기업의 세계에서도 조강지처의 교훈은 유효하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그 뜻이 인간관계의 신뢰와 도덕적 의리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인생의 황금기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가장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드물다.
저잣거리에서조차 “조강지처 버린 사람 치고 잘되는 사람 없다.”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도 바로 그 말이 주는 ‘신의(信義)’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딘 인연은 결코 가볍게 저버려서는 안 된다. 인생에서 진정한 동반자는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드러난다.
오늘날처럼 빠르게 변하고 관계가 쉽게 끊어지는 시대일수록 그 본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래서 신의는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주는 귀중한 지혜다.
지금 옆에 있는 동반자, 혹은 나의 가장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해준 소중한 사람들에게 오늘은 “고맙다.”라는 말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함께 술지게미를 먹던 시절은 지났어도, 그 시절의 마음은 영원히 간직해야 할 가치요 도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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