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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2회] 민들레 홀씨 되어

  • 장원섭 교수
  • 입력 2026.09.0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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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카(大阪)에서 피어난 조선(朝鮮)의 혼(魂), 이복남(李福男)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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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 정상 후사면의 왜장 바위. 김제 군수 정담은 이곳에서 왜군 1만여 명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옥쇄했다. 

 

한편, 김제군수 정담의 간곡한 당부가 담긴 명령으로 할 수 없이 부하들과 현장에서 몸을 뺀 나주판관 이복남과 황박은 아래 두목마을로 이어지는 급경사로 된 내리막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넘어지고 뒹굴면서 어렵게 마을로 내려온 이복남은 먼저 내려온 부하들이 마을 우물가에서 담아온 바가지 물을 건네자. 정신없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뜨겁게 내리쬐는 한여름의 태양은 무거운 갑옷을 걸쳐 입은 그의 등에 더욱 깊은 골을 만들었다. 땀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종사관. 군사들을 이쪽으로 모이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장군.”

종사관은 숨을 몰아쉬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는 얼른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나 능선에서 헐레벌떡 내려오는 군사들을 이리저리 손으로 가리키며 한 곳으로 불러 모았다. 

 

그의 주변으로 몰려든 군사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숨을 고르면서 저만치에서 손을 들어 자신들을 가리키는 이복남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서로 손을 잡고 얼싸안으며 반가워했다. 

그는 헐레벌떡 모여들어 목을 축이는 부하들을 추스르며 잠시 주변을 훑어보았다. 마을은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도 볼 수 없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고 있었던 듯 급하게 피난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웅치를 올려보았다. 산 정상 부근은 우거진 숲이 보였으나 이곳 두목마을로 이어지는 급경사면은 헐벗은 산 경사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마을 쪽으로 쓰러지고 나뒹굴면서 내려오는 조선군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정상 부근의 숲속에서는 창칼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고함,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조총 소리가 산 정상 후사면 바위 숲 부근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모두 목을 축이고 인원을 재정비하라. 장비도 다시 챙기고….”

종사관은 계속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능선 아래로 내려오는 군사들을 불러 모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능선 아래로 모여든 군사들은 수십 명에 이르렀다. 모여든 군사들은 대부분 다치거나 손에 든 무기조차 변변한 것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복남이 소리쳤다. 

“황 장군은 어디 계시느냐? 황 장군은…? 황 장군 못 봤느냐?”

그는 경사면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 미끄러지며 몇 번을 굴렀다. 

그는 마을에 이르자마자 의병장 황박을 찾았다.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며 황박을 찾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더욱 조바심이 났다. 

 

그때였다. 종사관이 그에게 뛰어오며 한 곳을 가리켰다.

“나으리. 황 장군께서 저기, 저기에 오십니다.”

종사관이 가리키는 곳에 의병장 황박이 병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황박은 다리를 다쳤는지 절뚝거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벗겨진 투구가 들려 있었다. 이복남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황박에게 뛰어가 그를 부축했다. 


“오오. 황 장군. 어디 다쳤소? 어디 좀 봅시다. 어디….”

“괜찮습니다. 장군.”

황박은 웃으면서 이복남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다시 포옹했다가 산 정상을 올려보았다. 산 정상부에서는 아직도 고함과 창칼이 맞부딪히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간간이 들려오는 조총 소리도 여전했다.

 

“이제 전주성으로 이동합시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으니 서두릅시다. 황 장군은 이동하면서 장군 부대 인원을 점검해 보고해 주시오.”

“예. 장군.”

황박이 그의 지시에 짧게 답했다. 이복남은 고개를 둘러 좌중을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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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마을. 웅치 정상 후사면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 마을로 이어지는 곳은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자. 이제 출발한다. 이 마을 어귀를 벗어나면 전주성으로 연결되는 안덕원이다. 거기에 우리 조선군이 진을 치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 합류하여 전열을 재정비한다. 질서 있게 빨리 이동하라. 대오를 갖추어라. 알았느냐?”

마을 어귀를 벗어나면 가까운 안덕원 들판에 조선군이 진을 치고 있다는 말에 군사들의 얼굴에는 비로소 화색이 돌았다. 

이복남은 칼집에서 칼을 뽑아 하늘을 향해 높이 들고 소리쳤다.

“자. 이제 가자. 서둘러야 한다.”

“예.”

 

군사들은 힘차게 대답하며 대오를 갖추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군사들이 서둘러 마을을 벗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 가고 없는 한적했던 두목마을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은 더 맹렬한 기세로 내리쬐고 있었다. 

안덕원(安德院)은 전라북도 전주시 산정동에 있던 원(院)의 하나였다.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마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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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원. 웅치를 넘어서면 전주성으로 이어지는 들판이다. 

 

안덕원 마을은 진안 방면에서 웅치고개를 넘어 완주군 소양면을 지나 전주부(全州府)로 들어오는 초입에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산정동과 금상동 지역에 해당한다. 

안덕원 마을의 왼쪽인 북쪽에는 소양천이 흐르고 있으며, 오른쪽인 남쪽에는 묵방산(墨方山, 523m)에서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자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금은 금상동 성당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산자락을 깎아 길을 내는 바람에 경사도가 낮고 완만하게 이어지게 만들어져 있으나, 옛날에는 경사가 제법 있었던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8월 8일(음력 7월 2일), 왜군이 전주성을 목표로 진안 용담을 거쳐 웅치 방면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은 김제군수로 발탁된 정담을 대장으로 나주판관 이복남의 부대와 동복현감(同福縣監) 황진(黃璡)의 부대를 합류토록 하여 웅치를 방어하도록 조치했다.

 

그 사이에 전주만호(全州萬戶)를 지냈던 황박(黃璞)이 의병 200여 명을 모아 웅치로 정담을 찾아와 합류하였고, 관군 출신이었던 오정달도 여러 전투에서 왜군에게 패퇴하고 떠도는 관군 50여 명을 모아 현장에 도착했다. 

 

김제군수 정담은 크게 감동하여 이들을 맞아들였다. 그는 전투 경험이 있는 오정달의 관군부대를 황박의 의병부대에 합류시켜 전력을 증강했다. 

특별한 무기도 없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자원해서 나선 200여 명의 의병과 관군의 일부가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불안한 마음으로 웅치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조선군의 사기는 한층 고무되었다.

 

그런데 충청도 영동을 점령한 왜군부대 일부가 전주성에 이르는 주요 길목인 남원성(南原城)을 목표로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남원부사 윤안성(尹安性)은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그는 전투 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왜군이 이르기도 전에 남원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남원부사가 달아나고 남원성이 왜군의 손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댔다. 현장으로 급히 투입할 수 있는 군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크게 낙담하여 한숨을 쉬며 고민하다가 급히 전령을 보내 웅치 방어에 투입되었던 동복현감(同福縣監) 황진(黃璡)의 부대를 남원 부근으로 이동시켰다.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방안치고는 너무 허술한 전략이었다. 하긴 워낙 조선군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그나마 묘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고작 그런 것이었다.

그는 웅치를 지키는 일이 시급하지만, 후원군을 보낼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곳곳에 있는 의병과 패전 관군을 끌어모아 만약 웅치가 무너진다면 전주성에 이르는 주요 길목인 안덕원 벌판에 1차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지시를 내렸다. 

 

여기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주성을 지키고 있던 전주부윤(全州府尹) 권수(權燧)가 과로로 시달리다가 갑자기 병사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광은 즉시 의병장 이정란(李廷鸞)으로 하여금 전주부윤의 임무를 대신하게 하여 전주성을 방어하도록 명령했다. 그런데 전주성을 지켜야 할 자기는 성을 빠져나와 남고산성(南固山城)으로 들어갔다. 

 

일명 견훤산성(甄萱山城) 또는 고덕산성(高德山城)이라고도 불리는 남고산성은 전주부의 북쪽 고덕산의 서북쪽에 있으며, 골짜기를 에워싼 포곡형(包谷形) 산성이다. 

이광 자신은 최후의 보루로서 남고산성(南固山城)에 들어가서 방어진을 편성하고 지켜야 한다고 명분을 둘러대고 군사를 몰아 산성으로 들어가 수비에 들어갔다. 

 

의병장 출신인 이정란에게 전주성을 지키게 조치하고 정작 전라도 방어의 임무를 맡은 자신은 정규군을 인솔하여 성 밖의 산성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군사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로서는 이런 식으로라도 부족한 병력과 지휘관을 재편할 수밖에 없다고 부하들에게 둘러댔으나 당시 기록으로 보면. 그의 진짜 의도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광의 조치를 두고 인조 때 문신으로서 사관(史官)을 겸했던 박동량(朴東亮)이 임진왜란 전후의 사실을 기록한 사초(史草) 일기인『기재사초(寄齋史草)』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금산의 적이 멀리 말을 달려 추격해 와서 웅치에 도착하고, 곧장 전주로 향하니 감사 이광이 말하기를, “대군이 성안에 들어와 지키고 앉아서 적을 우리 지경에 가까이 오게 한다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다. 내가 군사의 절반을 나누어 성 밖에 외진을 만들 터이니, 너희들은 마땅히 힘을 다하여 성을 지키다가 안팎으로 협공하면 성공할 것이다.” 하였는데, 실제로는 도망가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박동량, 기재사초 하권)


이 책은 저자가 인조 때, 승정원(承政院) 가주서(假注書)가 되어 사관(史官)의 직을 겸하고 있던 1591년(선조 24)부터 1592년(선조 25)까지 임진왜란 전후의 사실을 일기 형식으로 쓴 글로서 상권은 1591년 2월 3일부터 5월 16일까지, 하권은 1592년 6월 18일부터 6월 22일까지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현존하는 사초(史草)로는 유일해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이렇게 하여 전주성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으로 나름의 명분을 들어 3개소에 방어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때, 전주성을 목표로 진군하던 왜군의 제6진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지휘하는 본진은 7월 31일(음력 6월 23일), 금산(錦山)을 점령했다. 

당시 왜군은 이치(梨峙) 전투에서 권율(權慄)이 이끈 조선군에게 패한 후, 금산으로 방향을 틀어 성을 점령하여 주둔하고 있었다. 왜군의 병력은 약 1만 5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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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산성. 역사적으로 전주를 지켜온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금산의 북쪽 지역인 진산(珍山)에 주둔하고 있던 전라도방어사 곽영(郭嶸)의 관군은 마침 호남의 의병을 거느리고 북상하던 의병장 고경명(高敬命)과 조헌(趙憲)의 의병부대와 합세하여 기세를 올렸다. 진산은 금산에서 배티재를 넘으면 곧바로 완주로 들어갈 수 있는 요충지였다.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광주목사 권율(權慄)을 도절제사(都節制使)로 삼아 영남과 호남의 경계를 지키게 하는 한편, 금산에서 퇴각한 전라도 방어사 곽영, 동복현감 황진(黃進), 나주판관 이복남 그리고 김제군수 정담(鄭湛)에게 각각 금산의 이치(梨峙)와 진안의 웅치(熊峙)의 방어를 명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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