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강 이강년기념관 / 박열의사기념관과 생가
이강년기념관 광장 전경
흔히 우리 역사를 반만년의 역사라고 한다. 그 긴 세월은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 낸 과정이었다. 오늘의 대한민국 또한 그 역사 위에 세워졌다. 고대사와 중세사도 소중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근현대사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선열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시대였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졌다. 우리 근현대사의 큰 줄기를 이루는 항일독립투쟁사는 바로 이러한 민족의 피와 땀, 그리고 숭고한 뜻이 깃든 역사이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란 我(아)와 非我(비아)의 투쟁기록”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我’는 나라와 민족 자주성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우리를, ‘非我’는 이를 침략하고 억누르려는 외세를 뜻한다. 곧 역사는 민족이 스스로 지키고 자유와 독립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맞서 싸워 온 과정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역사관에서 보면 항일독립투쟁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우리 민족 존재와 얼을 지켜 낸 가장 치열한 실천이었다.
* 신채호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는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으며, 1948년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상고사란 단군조선부터 백제 멸망과 백제 부흥 운동까지 역사를 말한다. 그는 이 시기 고구려 중심 역사를 민족 자주 역사(필자 주)로 이해하고, 중국 중심 사대주의 역사관과 일본 식민주의 역사학을 비판하였다.
따라서 항일독립투쟁사는 지나간 사건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나라를 빼앗긴 절망 속에서도 끝내 독립을 이루어 낸 선열들의 굳센 의지와 나라 사랑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이를 후손들에게 바르게 이어 주는 살아 있는 역사로서 단재 신채호 선생이 강조한 자주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4박 5일 동안 만주 서간도 일대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과 기념관, 신흥무관학교 터 등을 둘러보았다. 이어 전국 여러 독립운동기념관과 독립운동가 생가를 찾아 답사하였다. 그 과정에서 역사의식은 책에서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선열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기억의 공간에서 체험할 때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 가지 물음이 마음에 남았다.
“독립운동의 고장이라고 하는 울진에는 왜 독립운동기념관이 없을까.”
울진은 한말 의병항쟁을 비롯하여 신민회와 울진청년회 활동, 3·1독립만세운동, 신간회와 고려혁명당 활동, 적색농민조합 활동, 창유계 사건, 만주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전 시기에 걸쳐 항일투쟁이 이어진 고장**이다. 그러나 이처럼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를 온전히 기억하고 계승할 독립운동기념관이 없다는 사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 울진군의 독립유공자는 87명으로 경북에서 상위에 속한다.(광복회울진지회 사무국장 남상균 제공)
이러한 생각으로 필자는 문경의 운강 이강년기념관, 박열의사기념관·생가, 영해의 신돌석장군기념관·생가, 안동의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영양의 남자현지사기념관·생가, 밀양의 밀양의열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이들 기념관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몸 바친 선열들의 삶과 독립 정신을 오늘에 전하는 역사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억의 공간이다. 이제 각 기념관이 기리는 인물, 전시 내용 등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雲崗李康秊記念館 정문
(좌측 위로부터 시계 방향) 이강년 동상, 의충사 이강년 영정, 이강년 기적비, 이강년 시비
의충사
이강년기념관 요약도(출처 문경시청)
의병의 깃발, 오늘도 바람에 나부끼다
문무를 겸한 의병장 雲棡李康年記念館(문경)
칼과 붓을 함께 든 의병장이 바로 운강 이강년 선생(1858-1908)이다.
필자는 지난해 8월 23일 오후 경북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 1683에 있는 운강이강년 기념관(이하 운강기념관)을 찾았다.
운강기념관은 대한제국 말기 구국 일념으로 1907년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빛나는 전공을 세운 도창의대장 운강 이강년(1858~1908) 선생의 삶과 항일 의병투쟁을 기리는 곳이다.
이강년 선생은 무과에 급제한 뒤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몸소 의병을 일으켜 문경·충주·제천·단양 등 한말 중부 내륙에서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 항일 무장투쟁을 지휘하였다. 시문·격문·서간 등을 모은 유고『운강집』이 전하여 문무를 겸비한 의병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2002년 4월에 개관한 기념관은 선생의 숭고한 위업을 재조명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념관은 유물전시관, 사당, 관리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물전시관에서는 선생의 의병활동 연보과 교지, 간찰, 만사와 관련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사당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다.
나라 사랑 충절이 깃든 선생의 시
기념관 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잔디광장과 함께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먼저 맞이한다.
『1894년 청일전쟁,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선생은 1896년 가은 도태장터에서 의병을 일으켜 문경과 제천, 수안보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는 내용이다.
정문을 지나면 한 손에 칼을 높이 치켜든 운강 이강년 선생의 동상과 시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가 서린 동상 앞에 서면, 마치 지금도 의병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아가는 듯한 기상이 전해진다. 시비에는 선생이 옥중에서 남긴 한 시 세 수가 한글 번역과 함께 새겨져 있는데, 한 구절 한 구절마다 나라를 잃은 통한과 끝내 꺾이지 않은 충절이 배어 있어 발길을 붙든다. 그 가운데 한 수는 이렇다.
「丸子太無情 踝傷止不行 若中心腹裡 無辱到瑤京」
탄환이여, 참으로 무정하구나. 복사뼈만 상하게 하였으니. 차라리 내 심장을 꿰뚫었다면 이처럼 욕된 몸으로 붙잡혀 가지는 않았을 것을.
이 시는 1908년 7월 청풍 자양 전투에서 총탄에 복사뼈를 맞아 일본군에 생포되던 순간의 심정을 읊은 작품이다. 선생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적에게 사로잡혀 뜻을 이루지 못한 일을 더욱 부끄럽게 여겼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의병장의 굳건한 절개와 나라를 향한 충정이 짧은 시구마다 절절히 스며 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그 울림은 광장에 나부끼는 의병 깃발과 겹쳐지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의병들의 결연한 기상을 더욱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였다.
문경 독립유공자 91인 명단 게시물
표창장과 훈장증(좌측 위), 문집(좌측 아래), 급제패지
(좌로부터 시계방향) 애감록, 옥중서한, 의병장 관련 도서, 이경년 의병부대 전투지구
병법 속도작대도
기념관을 둘러보는 필자
유물전시관으로 들어가 보았다. 전시 내용은 선생의 탄생과 성장, 학문과 사상, 의병 활동사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옥중서한과 문집, 편지, 유품, 그리고 선생이 직접 작성한 보병 전법인 속오작대도(束伍作隊圖)가 눈길을 끈다. 전시실 벽면에 새겨진 ‘의병항쟁 13년, 운강과 함께한 분들’이라는 글과 이름들은 이름 없이 나라를 지킨 의병들의 희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유물전시관을 나서면 義忠祠가 자리하고 있다. 창의문을 지나 사당에 들어서면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신도비와 기념비가 그의 삶과 의병 정신을 묵묵히 전하고 있다.
기념관을 둘러보며 가장 깊이 남은 것은 화려한 전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한 선비의 굳은 뜻이었다.
운강 이강년기념관은 한 사람의 삶을 기리는 공간을 넘어, 문경 의병의 역사를 오늘에 되새기게 하는 살아 있는 역사 교육 현장이었다.
제국의 법정을 뒤흔든 아나키스트*** 항일 무장 투쟁가 박열!
1923년 박열(1902-1970)과 가네코 후미코(1903-1926)는 일왕의 왕실 가족을 폭살하려 했다는 이른바 ‘대역사건’ 혐의로 기소되어 일본 제국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 재판에서 박열이 보인 당당한 모습과 발언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다.
*** 아나키스트(Anarchist)는 흔히 ‘무정부주의자’라고 옮기지만, 여기서 말하는 ‘무정부’는 정부가 없는 혼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본래 뜻은 어떤 개인이나 국가, 군주, 계급도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무지배'의 사상이다(아니키즘). 따라서 아나키스트는 폭력이나 무질서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지배와 강제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발적인 협동과 연대로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을 말한다. 박열은 민족의 독립을 넘어 권력과 계급, 식민 지배가 없는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였다. 그는 일본에서 흑도회에 참여하고, 뒤이어 불령사를 조직하여 천황제와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 맞섰다.
대역사건 재판 재현 모습,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1926년 대역사건 재판이 열린 일본 법정!
피고인 박열은 죄수복 대신 한복을 입고 당당한 모습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법정 발언에서 일본 제국의 법이 자신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고 맞섰다. 일제 법정 권위에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재판장이 일어서서 진술하라고 요구하자 박열은
“조선 예법에는 웃어른이 먼저 앉으라고 해야 앉고, 먼저 일어나라고 해야 일어난다.”는 취지로 응수하며 오히려 재판장의 무례를 꾸짖었다. 또한, 재판장을 높여 부르기를 거부하고, 인간은 누구나 평등한 존재이므로 대등한 입장에서 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태도는 목숨을 구걸하는 피고인 모습이 아니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제국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민족자존과 인간 존엄을 끝까지 지켜낸 아나키스트다운 독립운동가였다.
그날 법정에서 가장 당당했던 사람은 재판장이 아니라, 제국 권력 앞에서도 한 치의 두려움 없이 자유와 평등을 당당히 외친 조선 청년 박열이었다.
박열은 일제강점기 아나키스트이자 항일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나라를 잃은 현실을 단순한 민족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억압과 지배를 거두어야 할 인간 해방 문제로 보았다. 일본으로 건너간 뒤 흑도회와 불령사에서 활동하며 식민지 지배와 천황제를 정면으로 비판했고, 1923년에는 일왕가를 폭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의 곁에는 일본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가 있었다. 후미코는 식민지 지배와 국가 권력을 거부하는 신념 아래 박열과 뜻을 함께한 동지였다. 두 사람은 국적과 민족 경계를 넘어 자유와 평등, 인간 해방이라는 같은 이상을 품고 항일운동을 펼쳤다. 그들은 법정에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후미코는 옥중에서 스물세 살 짧은 생을 마쳤지만, 박열과 함께 보여 준 저항과 연대는 오늘날까지 국경을 넘어선 항일 독립운동과 아나키즘 정신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기념관 정문, 기념관
자유와 독립의 뜻을 품은 박열의사기념관
박열의사기념관은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샘골길 44에 있다. 이 기념관은 문경의 밀양박씨 문중이 건립을 추진한 뒤, (사)박열의사기념사업회와 문경시, 국가보훈처가 10여 년 동안 힘을 모아 2012년 10월 9일 문을 열었다.
샘골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서울 독립문을 떠올리게 하는 기념관 정문이 눈길을 끈다. 정문을 지나면 왼편에는 가네코 후미코의 묘역이 있고, 오른편에는 초가 두 채의 박열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그 뒤로 기념관이 들어서 있어 생가와 묘역, 기념관이 하나의 역사 공간을 이룬다.
박열의 묘소는 이곳에 없다. 그는 6·25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현재 묘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박열과 함께 항일 독립운동을 펼치고 옥중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가네코 후미코의 묘소는 이곳에 조성되어 있다.
박열 의사 생가와 기념관 전경
가네코 후미코 묘소(좌), 일제의 경찰서 고문실
가네코 후미코 전시관
기념관에는 박열의 성장 과정과 항일 독립운동, 아나키즘 사상, 일본 법정 투쟁, 가네코 후미코와의 만남과 옥중 결혼, 출옥 뒤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펼친 활동 등 600여 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가네코 후미코 특별전시실은 국적과 민족을 넘어 자유와 독립이라는 같은 뜻을 품고 제국주의에 맞섰던 두 사람의 삶을 되새기게 한다. 1926년 일본 법정에서도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던 두 사람을 떠올리니 전시물 하나하나가 더욱 뜻깊게 다가왔다.
대한민국 정부는 박열 의사의 항일 독립운동을 기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가네코 후미코에게는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두 사람이 실천한 자유와 독립의 정신은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다. 2026년 7월 23일, 가네코 후미코 서거 100주기를 맞아 문경 (사)박열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서원)에서는 기념식과 학술발표회,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그린 영화 상영 등 행사가 있었다. 이어 7월 24일에는 가네코 후미코가 어린 시절 7년을 보낸 세종 부강에서 가네코후미코선양사업회(회장 이규상)가 위령제를 열어 그의 삶을 기리고 항일 독립 정신을 되새겼다.
박열의 생애
영화박열의 포스터(박열의사기념관)
대한민국을 사랑한 일본인 독립운동가 가네코 후미코는 누구인가
가네코 후미코(1903~1926)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1912년 할머니와 고모를 따라 충청북도 부용면 부강리 용포마을(현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로 건너와 약 7년 동안 살았다. 이곳에서 가정부와 다름없는 고된 생활을 하며 조선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았고, 그들의 처지에 깊은 공감과 동질감을 품게 되었다.

당시 일본을 뒤흔든 이른바 괴사진사건의 박열과 가네코후미코 모습,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1919년 3·1운동을 목격한 뒤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조선인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 박열을 만나 뜻을 함께하였다. 두 사람은 흑도회와 불령사에서 활동하며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를 비판하였다.
1923년 일왕 가족을 암살하려고 폭탄 반입을 모의한 혐의로 체포, 대역죄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으로 1926년 두 사람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옥중 혼인신고를 하여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후미코는 같은 해 수감 중 숨졌다. 일본 당국은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그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재판 중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촬영된 사진 한 장이 큰 화제를 모았다. 후미코가 박열의 무릎에 앉아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은 신문에 널리 보도되었고, 일본 사회와 정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이른바 ‘괴사진 사건’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23세라는 짧은 생애를 불꽃처럼 살다 간 그의 항일 독립운동과 희생을 높이 평가하여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사>박열의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한 독립운동가 가네코후미코 서거 100주기 기념식(문경문화원)

박열 의사와 가네코 후미코. 출처: 박열의사기념관
가네코 후미코, 서거 100주기 추모 기념식 열리다
2026년 7월 23일은 박열 의사의 아내이자 사상의 동지였던 일본인 독립운동가 가네코 후미코가 서거한 지 100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문경문화원 다목적실에서는 (사)박열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대한민국을 사랑한 일본인 독립운동가·애국지사 가네코 후미코 서거 100주기 기념식』이 열렸다. 이번 기념식은 일제 제국주의에 맞서 박열과 함께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신념을 기리고, 국경과 민족을 넘어 자유와 정의를 위해 헌신한 그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되었다.
기념식에는 권오을 국가보훈부장관, 이종찬 광복회장, 김희곤 독립기념관장, 김학홍 문경시장, 서훈 박열열사기념사업회장, 시·도의원, 이규상 세종시 부강면 가네코후미코선양사업회장과 지역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해, 한·일 두 나라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독립을 위해 온 삶을 바친 가네코 후미코의 뜻을 함께 기렸다.
세종시 부강면 가네코 후미코위령제 모습(좌), 사진 가운데가 일본 가네코후미코선양회장(문경문화원)
세종시 부강면 용포리가네코후미코선양사업회>가 주최한 100주년 위령제<가네코 후미코다실 앞>
한편 세종시 부강면에서도 7월 25일(토) 가네코후미코선양회 주관으로 위령제가 있었다. 조상호 세종시장 등 시민단체와 지역민, 일본의 후미코선양회 회원과 후미코영화를 제작한 일본영화감독(하마노사치)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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