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시린 손을 비비며 외출했다 돌아와 밥을 먹고 책상에 앉아 책을 펴니 살짝 졸음이 온다.
매서운 바람에 이리저리 흩어지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겨울밤은 어느새 깊어만 가는데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대충대충 책을 읽어내려 가다가 문득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나 흐트러진 자세를 다시 고쳐 앉는다.
후한(後漢) 말기 헌제(獻帝) 때 동우(董遇)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것을 즐거워해 어디를 가든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노자(老子)와 좌전(左傳)에 정통하였는데 이 무렵에 노자와 좌전을 해설한 주석서를 지어 이름을 얻었다. 그의 명성을 들은 헌제는 그를 불러 황제의 글 공부를 가르치는 황문시랑(黃門侍郞)에 임명했다.
동우의 명성이 점차 알려지자 그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그러나 동우는 아무나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찾아온 사람들에서 항상 “내게서 배우려 하지 말고 책을 읽으라. 책을 백 번 읽으면 자연히 그 의미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遇不肯敎而云 必當先讀百遍 言讀書百遍而意自見)”라고 말하며 돌려보내곤 했다.
어느 날 찾아온 한 선비가 날이 저물어 가는데도 물러가지 않고 버티면서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했다. 물러가지 않는 이유는 혼자서 백번씩이나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우는 ‘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다(當以三餘)’ 라고 말하고 그를 꾸짖어 돌려보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세 가지 여가가 무엇인지 묻자 동우가 말했다.
‘겨울은 한 해의 남은 시간이요(冬者歲之餘),
밤은 하루 낮의 남은 시간이며(夜者日之餘),
오랫동안 계속 내리는 비는 한 때의 남은 시간이다(陰雨者時之餘也).
즉, 자투리 시간까지도 아껴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이다. 삼여(三餘)라는 성어는 바로 이 고사에서 유래했고 오늘날까지 독서삼여(讀書三餘)라는 고사성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학문을 하는데 가져야 하는 이 세 가지 여유는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가져야 할 넉넉함에도 비유되었다. 그래서 살면서 늘 여유를 가지라는 뜻으로 옛 어른들은 세 마리 물고기를 그림으로 그려 족자에 담아 서재에 걸어두거나 병풍으로 만들어 보관하곤 했다. 고기 어(魚)자와 남을 여(餘)자의 중국식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독서의 중요성을 통해 학문하는 자세를 강조하는 옛 성현의 가르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보면 “공자가 늦게 역을 좋아하여 역을 읽어…(중략)…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졌다.(孔子晩而喜易 讀易…(中略)…韋編三絶)”라고 하였다.
옛날 중국에서는 대나무를 깎아서 만든 죽간(竹簡)에 글씨를 쓰고 그렇게 기록한 몇 십 장의 죽간을 가죽 끈으로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 그 단단한 가죽 끈을 위편(韋編)이라고 하는데 이 위편이 여러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한 책을 계속하여 정독했다는 말이다. 공자 같은 성인도 학문 연구를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고사(故事)로서, 후세 사람들이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성어로 학문에 대한 열의와 노력을 나타내는 말로 많이 인용하고 있다.
주역(周易)은 눈으로 대충 보아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책이다. 오늘날처럼 해설이 붙어 있지도 않았을 때이니 어려운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해설서가 많이 출간된 조선 중기에 퇴계 선생도 주역을 공부하면서 이해하는데 침식(寢食)을 잊을 정도로 열중하다가 평생 지병이 된 병을 그 때 얻었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책이다. 더구나 공자는 주역을 읽고 서문까지 붙였으며 “시간이 좀 더 있어서 연구를 더 할 수 있다면 주역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운 심경을 토로했을 정도였으니 어떤 자세로 학문에 정진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중국속담에 ‘活到老 學到老’라는 말이 있다.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살 것이며 죽을 때까지 배우기를 쉬지 말라’는 말이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다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라고 했던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좌우명에 이르러서는 선비로서의 고고한 모습이 떠오른다.
밤과 겨울과 비오는 날에는 책을 읽으라. 요즈음이야말로 겨울날씨에 눈비가 자주 내리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에는 안성마춤이다. 거기다가 지금 밤이 되었으니 더 말해 무삼하리오. 옛 어른들이 남긴 말씀을 생각하며 흐트러진 자세를 다시 고쳐 앉아 책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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