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섭 교수>
숭정(崇禎) 17년(1644)음력 3월 18일 밤, 이자성(李自成)의 군대가 수도인 베이징을 공격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명(明)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 1611~1644)는 세 아들들을 변장시켜 피신시키고 비빈(妃嬪)과 공주(公主)는 적군의 손에 욕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다음날 새벽 베이징이 점령당하자 숭정제는 내관을 시켜 관병(官兵)과 대신(大臣)들을 소집하는 종(鐘)을 울렸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관병은 이미 항복했고 대신들은 도망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환관(宦官) 왕승은(王承恩)만이 그의 옆에 남아있었다.
숭정제가 피신하려고 하자 왕승은은 모욕을 당하지 말고 차라리 자결할 것을 권유한다. 마음을 고쳐먹은 숭정제는 황제복(皇帝服)으로 갈아입고 내관 왕승은이 안내하는 대로 경산(景山)에 올랐다. 그리고 역대 황제들의 위패를 모신 수황정(壽皇亭) 누각 앞의 홰나무(槐木)에 목을 맸다.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황제 즉위 17년, 짐(朕)이 덕(德)이 없고 보잘 것 없어 하늘이 나를 꾸짖는구나. 역적이 경성에 쳐들어온 것은 모두 여러 신하들이 짐을 그릇되게 만들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짐이 죽어서 장차 선조들을 볼 낯이 없구나. 내 황제(皇帝)의 관(冠)을 벗기고 헝클어진 머리로 수치스런 얼굴을 덮어다오!”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보필했던 환관 왕승은 역시 그를 따라 목숨을 버렸다.
그러나 그의 원망대로 명나라가 과연 신하들 때문에 멸망했을까? 아니면 황제를 올바로 보좌한 인재가 없어서였을까? 물론 아니다. 의심이 많았던 그는 신하(臣下)들을 잘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성격도 너그럽지 못해 수많은 중신(重臣)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17년 재위 기간 동안 내각의 각료를 무려 50여명이나 교체했을 뿐만 아니라 간신들의 모함에 속아 변방에서 청(淸)나라의 침입에 맞서 악전고투하며 잘 막아내던 원숭환(袁崇煥)과 같은 명장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의 가족까지 역적으로 몰아 죽인 장본인이 바로 숭정제였다.
반면, 숭정제를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은 바로 만주 여진족의 수장인 청(淸) 태종이었다. 《청사고(淸史稿)》에는 인재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당시 청나라에 마지막까지 대항하며 독전하던 홍승주((洪承疇)와 조대수(祖大壽) 등의 명나라 장수들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결국 항복하고 만다. 이들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들의 가족은 모조리 처형되었다.
이때 청 태종은 항복한 장수들을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만주족 장수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이들을 중용한다. 장수들이 불만을 나타내자 태종이 묻는다.
“우리가 비바람을 맞으며 수십 년을 고생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야 중원(中原)으로 들어가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장차 중원으로 들어가려해도 장님이나 다름없다. 오늘 우리에게 길을 안내할 인재를 얻었는데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인재를 알고도 쓰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쓰게 할 것인가(今獲一導者 吾安得不樂, 知而不擧 何以示勸)?”
이미 알려진 대로 훗날 홍승주와 조대수 등은 명나라 정벌의 앞잡이가 되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신하들이 자신을 망쳤다고 한탄하는 숭정제와 인재를 알고도 쓰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쓸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 청 태종. 두 사람이 가진 도량과 그릇의 차이가 승패를 결정지은 것이다.
최근 롯데그룹의 공격적 기업경영이 화제다. 내수에 치중해오던 기업의 방향을 해외시장으로 돌리고 해외 현지사업의 성패에 그룹의 명운(命運)을 걸었다. 롯데는 VRICs(베트남, 러시아, 인도네시아, 중국)를 전략지역으로 선택하고 글로벌 인재 확보를 통해 과거의 이미지를 벗고 젊고 공격적인 경영으로 기업 이미지를 전환해 나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부 조직의 변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60세 이상이었던 계열사 대표는 50대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 가운데 20%는 외부에서 영입된 인재들이다. 대졸공채 가운데 10%에 불과하던 여성의 비율도 30%로 높아졌으며 해외공장에서는 현지 대학생들을 공채해서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예전의 롯데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신격호 회장의 지론인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去華就實).’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롯데 고위관계자는 “한 번에 다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경영진이 ‘하다가 실패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된다.’라는 말을 수시로 할 정도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인재 확보와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전략, 그리고 조직의 확장에 따른 위기관리 시스템의 정비를 통해 글로벌 강자로서의 도약을 시작한 것이다.
리더가 하는 일 가운데 으뜸은 무엇인가? 바로 인재를 알아보고 그 사람을 쓰는 일, 즉 인사(人事)다. 그래서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제왕의 인재에 관한 인식과 태도가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고 강조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재발굴과 육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인재 키우기’에 전력투구한 결과, 이제는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이 대표적인 경우다. 정상에 올랐음에도 삼성은 결코 현실에 안주(安住)하지 않는다. 거대한 조직 전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다.
국가가 아무리 민주적으로 바뀌어도 위정자가 있는 한 인사는 정치의 핵심이다. 기업을 비롯한 조직들이 아무리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 하더라도 결국 인사가 단기적인 이익과 장기적인 조직의 수명을 결정한다. 현명한 인재를 기용해 기강을 바로 세우고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쉽지는 않더라도 무능하고 용렬한 사람을 써서 기강이 무너지고 민심이 동요되는 일은 쉬웠다. 그러므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요즈음 삼성과 롯데그룹의 변신을 보면서 역사 속 왕조(王朝)와 인물(人物)들의 부침(浮沈)의 과정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다. 사람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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