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던 세상이 조금 조용해진 것 같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온갖 비방과 흠집 내기가 벌어지기에,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그 수위가 너무 아슬아슬해 가슴을 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생결단이라도 낼 듯 했던 분위기가 끝나고 승패가 가려지면 필경 한 쪽은 다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고 갑자기 조용해지니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이 궁금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처음부터 조용했었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투표율이 50%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걸 보면 역시 민심은 정치판을 떠난 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다 아예 묻지마식의 표 몰아주기 투표현상은 이런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국민의 일방적인 편들기요, 현 정부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기도 한 것이다.
선거기간 동안 유권자들에게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은 실종된 후보도 여유 있게 당선된 선거였으니 선거의 기본인 정책이나 인물 고르기는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선자 발표 후에 드러난 일이지만 그 지역의 유권자들은 죽은 송장을 뽑은 것이다.
지난 번 탄핵사태의 뒤집기 현상인데 그 정도는 가히 우리들의 예상을 훨씬 초월한 것이었다. 책대결 선거가 실종된 허망한 현상을 지켜보면서 민심의 두려움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 선거였다.
이런 현상은 선거가 시작될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터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후보자들은 떼거리로 사람들을 동원하고 상대에 대한 흠집 내기에만 열을 올렸다.
공약(公約)이라고 내걸었던 조항들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후보는 4년 전의 선거 때 내밀었던 내용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자치단체의 군수나 도의원, 시의원에 맞는 공약이 아니라 대통령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공약(空約)도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자기가 당선되면 할 수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제 이들의 활약상을 지켜 볼 일이다.
벌써 지역 공무원 사회에서는 눈치 보기가 시작되었다. <살생부(殺生簿)>가 작성되고 있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면서 인심이 퍽이나 사나워 졌다. 승리한 쪽에서 만세를 부르며 새로운 집행부 구성을 위해서는 논공행상을 근거로 대규모 인사이동이야 예견되는 일이지만, 반대편에 줄을 섰던 사람들은 후환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쓸데없는 구설수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과 정도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쯤을 누구나 알고 있다.
군 의회 원 구성을 놓고 들리는 소문은 참으로 가관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하는 기초의원들에게 정당이 개입하는 것도 문제이려니와,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선자들 대부분이 서로 모두 한 식구라고 공공연히 말하면서 다수의 힘으로 의장과 위원장 자리를 마음대로 나누어 맡기로 한다고 하니, 이제 이들에게 군 행정의 견제 기능을 바라기는 애시당초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예로부터,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 중에 가장 으뜸은 관용(寬容)을 베풀어 상대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다.
싸울 때 오갔던 말들 중에는, 참기 어려운 모욕적인 내용도 물론 있게 마련이지만 싸움이 끝나고 나면 승자는 관용과 아량으로 패자의 서운함을 달래주었던 것이 옛 사람들의 법도였다. 상대를 용서할 줄 아는 포용력조차 없는 사람에게 어찌 우리 군민을 사랑하는 행정을 펴달라고 주문할 수 있겠는가?
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낸 홍서봉(洪瑞鳳)의 살림살이는 그 권세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가난했다. 거친 밥과 죽으로 연명하는 것은 물론이요, 양식이 없어 굶는 날도 많았다.
어느 날, 홍 대감의 부인이 여종을 시켜 제사음식으로 쓸 고기를 사오게 했는데, 사 온 고기를 보니 색깔이 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이미 상한 고기였던 것이다. 부인은 여종을 보고 물었다.
“그 푸줏간에 고기가 얼마나 더 있더냐?”
이어 즉시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과 머리에 꽂은 비녀를 장에다 팔아 돈을 마련해 다시 여종을 그 푸줏간에 보내 남아있는 고기를 다 사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마당 한 구석을 파서 고기들을 다 묻어버렸다. 궁궐에서 돌아온 홍서봉이 그 연유를 물으니 부인이 대답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 고기를 사먹고 혹시 탈이라도 나면 어찌 되겠습니까? 하여, 패물을 팔아 고기를 사와서 마당에 묻어 버렸습니다.”
홍서봉이 부인의 머리를 보니 비록 은비녀 대신 나무비녀가 꽂혀 있었지만, 세상에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비녀를 본 적이 없다고 적고 있다.
옛 어른들의 백성 사랑하는 마음이 이와 같았거늘, 이제 군 행정의 집행과 감독에 대한 소임을 부여받은 군수와 도의회 의원, 군의회 의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과연 홍 대감 부인과 같은 마음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고기만 팔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푸줏간 주인의 마음을 택할 것인가?
짧은 질문에 대답은 쉽게 할 수 있겠지만 그 심판은 임기 말에 백성들에 의해 또 다시 준엄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특정 당의 간판 덕으로 겨우 당선되신 분이라면 더욱 명심해야 할 일이다. 다음에는 이번과 같은 어이없는 선거결과를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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