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약방 사절서(仕切書)·출하전표(出荷傳票)

  • 기자
  • 입력 2015.04.28 10:46
  • 글자크기설정

 
소화(昭和) 13년(1938년) 사절서(仕切書)

  소화(昭和) 14년(1939년) 약품출하전표(藥品出荷傳票)

일제강점기인 소화(昭和) 13년(1938년)에 경성(京城) 남대문통(南大門通) 이정목(二丁目)에 자리한 주식회사 신정약방(新井藥房)에서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遠南面) 신흥리(新興里)에 소재한 동인약방(同仁藥房)으로 발송한 사절서(仕切書)이다.
  
또 한 점은 소화(昭和) 14년(1939년)에 경성부(京城府) 황금정(黃金町) 이정목(二丁目) 구번지(九番地)에 위치한 조선매약주식회사(朝鮮賣藥株式會社)에서 역시 원남면 신흥리의 동인약방으로 보낸 약품출하전표(藥品出荷傳票)이다.  
  
사절서(仕切書)는 일본에서 에도시대(江戸時代)부터 상품 거래의 중개 업무에서 해당 수취인 도매상이나 운송선 도매상 등의 거래와 결재에서 사용됐던 문서를 뜻하는 것으로, 요즘으로 치면 ‘송장(送狀)’ 내지 ‘납품서(納品書)’이다.
  
이는 운송 계약에서 발송인이 운송인의 청구에 따라 교부하는 서류로써, 운송 제품과 함께 도착지에 송부되어 수취인이 운송 제품의 동일성을 검사하고, 그 운송에 관한 권리 의무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일찍부터 사용되어 왔다.
  
‘출하전표’는 ‘출고전표(出庫傳票)’의 또 다른 말로 ‘송장’ 또는 ‘인수서’이다.
  
사절서와 출하전표를 살펴보면, 당시에 동인약방으로 보낸 물품 중에는 ‘사카린(サッカリン)’ 등의 의약품이 포함되어 있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1878년에 발견되어 1884년에 미국에서 최초로 공업적으로 제조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사카린은 비당질계 감미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합성 감미료이다.
  
사카린은 설탕에 비해 300배 이상의 강한 단맛을 내는 합성 감미료로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에 ‘당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됐다.
  
사카린은 1970년대까지도 ‘뉴슈가’ 또는 ‘신화당’ 등의 이름으로 판매됐고, 일반에 널리 애용됐다.
  
특히 1950년대 전후(戰後)에는 설탕 값이 쇠고기의 2배 값에 달했고, 이에 따라 비싼 설탕 대신 값싼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이 우리나라 서민들의 뛰어난 설탕 대용품으로 자리하기도 했다. 
  
사카린은 설탕과는 달리 열량이나 충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이 단맛을 충족시키는 감미료로 널리 사용됐지만, 1980년대 들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가 사카린을 인체 발암성이 의심되는 ‘2B군’으로 분류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판매가 금지됐다.
  
다행이 최근 들어 사카린이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확률이 매우 낮다는 과학적 사실이 명백히 밝혀지면서, 2014년 7월 27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나트륨(사카린)’의 사용 범위를 어린이 기호식품으로까지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1992년에 빵류, 과자, 캔디류, 빙과류, 아이스크림류, 코코아가공품, 껌, 과자류, 간장 등을 제외한 식품에서 사카린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푼데 이어, 2014년에 사용 가능한 대상을 큰 폭으로 확대한 것이다. 
  
사실상 전면적으로 허용한 것인데, 사카린이 30여년 만에 그동안 뒤집어쓰고 있던 발암 물질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은 셈이다.

일제강점기에 왜 약방에서 사카린을 구입하고 또 판매했는지 지금으로서는 미루어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하게 식재료의 하나로 약방에서 사카린을 판매했는지, 아니면 약방에서도 약의 조제가 가능했던 당시에 사카린을 약재의 한가지로 사용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일제강점기의 각종 자료에 따르면, 소화불량에 사카린을 먹어서 소화를 도왔다거나, 부스럼 치료에 사카린과 밀가루를 혼합 반죽하여 환부에 붙였다는 식으로 민간요법(?) 수준의 의학상식이 널리 통용됐던 점을 상기할 때, 사카린이 약재의 하나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생산 판매된 다양한 종류의 약(藥) 가운데 사카린이 염산키니네(鹽酸kinine, 금계랍 金鷄蠟-해열·진통제)와 더불어 가장 이문이 많이 남는 품목이었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일제강점기의 제약사(製藥史)에 더해, 울진 지역의 사회상을 단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써 가치가 뛰어나다. (본지는 2014년 9월호 통권 제101호에서 1934년에 생산된 원남면 동인약방 사절서를 소개했었다. 기사 내용 다수는 당시의 글을 빌려왔다)

ⓒ 울진뉴스 & 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문의 054-781-6776)

추천뉴스

  • 금강송배 전국 유소년클럽 축구대회, 울진서 열전 돌입
  • 울진교육지원청 ‘2026년 을지연습 사전교육’ 실시
  • 새벽 일터에서 군정을 듣다! 민선 9기 첫 현장군수실 운영
  • 울진군, 가뭄 관심단계 선제 대응 농업용수 확보 기반 강화
  • 2025년 관광택시 1기 1,886건·5,583명 이용성과 바탕으로 2기 확대 운영 시작
  • 울진군, ‘햇빛소득마을 조성사업’ 공모 선정
  • 울진군 청년 창업 지원사업 지역 문화의 성과로 청년 예술가 정효민 개인전 개최
  • 울진 꼬마발명가들, AI로 게임 만들고 강릉에서 발명을 만나다
  • 제293회 울진군의회 임시회 개회!
  • 한울원자력본부, 울진군 부구천 산책로 조성 지원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일제강점기 약방 사절서(仕切書)·출하전표(出荷傳票)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