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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52년 온정면(溫井面) 의용소방대(義勇消防隊)

  • 입력 2015.04.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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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檀紀) 4284년(1951년) 촬영

이 사진은 각각 단기(檀紀) 4284년(1951년)과 4285년(1952년) 온정면(溫井面)에서 활동하던 의용소방대(義勇消防隊) 대원들이 기념 촬영한 것이다.
  
1951년에 촬영된 사진은 목조 건물인 온정면사무소를 배경으로 50여명의 의용소방대원들이 국방색 또는 흰색 제복에 모자를 쓰고 일부는 왼쪽 팔에 흰색 완장을 두르고 열을 지어 앉거나 서 있다.
  
연령 또한 젊은 청년들과 중·장년층이 뒤섞여 있고, 앞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일부만 운동화를 신고 있을 뿐 대부분 고무신을 신고 있다.
  

단기(檀紀) 4285년(1952년) 촬영
1952년 사진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나무 전봇대를 배경으로 50여명의 의용소방대원들이 국방색으로 통일된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앞줄에 앉아 있는 일부는 왼쪽 팔에 완장을 두르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조장(組長) 정도의 직책을 맡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51년 사진에서는 한사람이, 1952년 사진에서는 앞줄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칼빈으로 보이는 소총을 들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1980년대 이전 울진 지역의 소방 행정에 관한 자료는 지금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울진군지』는 소방 행정과 관련하여 1981년 이후의 소방 조직 변천사를 기록하고 있을 뿐이고, 울진소방서 홈페이지에서는 소방서 연혁이라면서 고작 1995년 5월 23일 울진소방서 및 울진파출소 설치 승인 이후의 역사를 간략하게 싣고 있을 뿐이다.

지방 제도의 변천은 대개 중앙 정부의 제도 변경에 따라 종속적으로 그 맥을 같아 하며 움직여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울진 지역 소방 행정의 변천사를 어떤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점은 무척 아쉽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시작된 근대적 의미의 소방 조직은 크게 1920년대까지의 소방조(消防組) 및 소방대와 1940년대의 경방단(警防團), 그리고 광복 이후의 소방대, 6.25전쟁 기간 동안의 방공단(防空團), 현재의 의용소방대(義勇消防隊)의 형태로 나뉘어서 변천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6월 23일, 조직과 운영에 관한 법규인 ‘소방조 규칙’을 조선총독부령 제65호로 제정 시행함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된 소방조는 애초에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운영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소방 조직은 경찰 조직 내에 속해 있었다.
1910년 6월에 일제가 설치한 경무총감부는 소방 업무를 보안과내의 소방계에서 담당하도록 했다.
  
그러다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행정 조직은 외청(外廳) 격이던 경무총감부가 총감부의 내국인 경무국으로 개편됐고, 소방 업무는 경무국 내의 보안과에서 관장하게 된다.
  
특히 당초에는 지방에 설치한 경찰서와 헌병부대에서 소방조를 지휘 감독하도록 했는데, 1919년 이후에 헌병 부대가 폐지되면서 각 경찰서에서 소방 업무를 분장(分掌)하게 된다. 
  
일제는 1939년 중·일 전쟁이 격화되면서 방공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경무국에 방호과를 신설하고 소방 사무를 분장하도록 한다.
  
그리고 기존에 활동하던 방호단(防護團), 소방조(消防組), 수방단(水防團)을 해체 통합하여 경방단(警防團)이라는 조직으로 재편성했다.
  
1939년 7월 3일, 조선총독부령 제104호로 경방단 규칙이 제정·공포됨에 따라 일제 통치하의 소방 기본 조직인 소방조 조직은 제도상으로는 완전히 모습을 잃고 새로운 경방당 조직으로 소방 활동을 하게 된다.
경방단 조직은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폐지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를 인수한 미 군정청은 조선정무국을 부(部)로 승격시키는 등 대대적인 기구 개편을 단행하여 미군 통치 기구를 확정했고, 1946년 4월 10일 중앙소방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소방 기구는 경찰 기구에 흡수된다.
  
과도 정부(過渡 政府)에서 경무부, 토목부, 중앙소방위원회를 인수한 내무부는 소방 업무를 치안국 내의 소방과에서 분장하도록 한다.
  
그러다가 1950년 3월 18일 내무부의 직제 개정으로 소방과는 보안과 내의 소방계로 축소됐다가, 1955년 2월 17일에는 보안과의 소방계를 경비과의 방화계와 병합하여 방호계로 변경하고 소방 업무와 방공 업무를 동시에 분장하도록 했다.
  
1961년 10월 2일에는 치안국에 소방과를 다시 설치했는데, 당시 소방과에는 방호계와 소방계를 두고 민방공, 소방, 수난 구조와 방호 업무를 분장했다.
  
소개하는 사진 2장은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울진 지역에서 생산된 사진이다.
  
전쟁 기간 동안 소방 조직은 소방단과 방공단으로 명칭을 바꾸어 가면서 소방과 방공 활동을 겸했던 시기로써, 이 사진들은 말없이 당시의 굴곡진 시대상을 웅변하고 있다.
 (사진 제공. 황지성 백암온천호텔피닉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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