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일찍 벌들이 잘 활동하는 지 확인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하는 아내 대신 집안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밭에 심어놓은 농작물을 체크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는 이대식(44)씨는 초보 농사꾼이다.
고추, 콩, 감자도 심고, 발효액도 담그는 등 한 가지라도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으면서 마음가는 대로 다 시도해 보고 있다. 대식씨는 최고의 농사꾼이 되는 그 날까지 묵묵히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2010년 2월 귀농을 결심한 대식씨는 울진군 기성면 황보마을로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평소 그리워하던 농촌 생활을 현실로 옮긴 것이다. 묵묵히 따라와 준 아내 이혜경(46)씨가 있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대식씨 고향은 경북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이다. 건축 관련 노무자 일을 하면서 틈틈이 농사도 조금씩 하시던 아버지는 그가 11살 되던 해에 서울로 이사를 했다. 시골보다 서울에서 더 돈을 벌기가 쉬울 것이라며 작은아버지의 권유로 고향을 떠났다.
아버지는 서울 생활 2년 만에 폐암으로 돌아가시자 가정형편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형과 나이 차가 7살로, 3살 위인 누나, 그리고 막내인 대식씨, 2남 1녀의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지만 화목했던 가정에 큰 시련이 닥쳤다.
어머니는 식당에서 주방일과 서빙을 하며 자녀들의 학업과 생업을 책임지면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고생만 하셨다고 했다. 형은 고등학교를 포기한 채 돈을 벌겠다고 일찍이 생업에 뛰어들었고, 누나는 여상 졸업 후 곧바로 취업했다.
대식씨는 그나마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대학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고 싶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고3 시절 방황도 많이 하고 어머니 속을 많이 아프게 했다. 당시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 해양경찰에 자원입대를 하였다고 했다.
오히려 군대 입대 후 마음은 편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면서 장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 상관들이 배려해준 덕분에 군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며, 제대할 무렵 응시해 합격을 했다.
군 제대 후 9급 공무원으로 법무부 소속 서울소년원에 근무를 했다. 첫 직장이고 혈기 왕성한 젊은 20대 청년으로 자부심과 의협심을 가지고 열심히 근무했다. 방황한 경험이 있는 대식씨는 그들 비행 청소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소년원에 다녀간 비행 청소년들의 재범률이 70%에 달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며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도 하고 자문도 구하는 등 열정적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친형처럼, 때론 선생님처럼, 친구처럼 가까이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 잘 대해 주며,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선도도 하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 진심 어린 관심을 보여주면 그것을 역이용하는 몇 명의 청소년 때문에 난처한 경우도 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교회에서 힘들고 궂은 일을 도맡아 봉사하던 대식씨도 실망감을 자주 안겨주는 그들 때문에 처음에 가졌던 사명감은 자꾸 떨어지기 시작하고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청소년을 대하면서 점점 나태해져 갔다.
같은 교회를 다녔던 부인 혜경씨도 이 시기에 만났다고 한다. 무기력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관심은 온통 혜경씨에게 쏠려 있었다. 아마도 청소년들과 계속해서 씨름만 했으면 장가는 꿈도 못 꾸었을거라며 엄살을 뜬다.

행복한 가정을 꾸미며 신혼의 달콤함을 즐기고 있던 대식씨에게 봉급이 차압되는 등 갑작스러운 변고가 닥쳤다. 친형의 대출 보증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봉급이 차압되면서 월급이 50%만 나오는 등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고 한다.
대출금이 1억6천만원으로 9급 공무원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수소문해보고 해결 방법을 강구했지만 뾰족한 해결 방안이 없었다. 대식씨 힘으로는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혜경씨랑 울기도 많이 울고 형님도 원망해 보았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요.”
신용불량자로 모든 금융거래가 막혀버린 상태에서 대식씨는 자기파산 신청을 했다. 공무원 신분 6년만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으로 일부 정리하는 등 보증 빚에서는 탈출했지만, 가진 것 없이 맨주먹만 남았다.
살길이 막막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일당을 받는 현장 노무자 일도 했다. 알고 지내던 지인이 컴퓨터 관련 영업사원으로 소개를 해주어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
컴퓨터 프로그램들이나 광고회사, 인쇄소 등에 글자체를 판매하는 영업이라 사전 교감이 없이는 영업이 상당히 어려웠으며, 당시만 해도 불법다운로드가 성행했던 시기라 저작권보호는 큰 의미가 없어서 더욱 힘들었다고 한다.
영업을 하면서 인생 경험도 많이 했지만, 너무나 힘든 시기라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3년 만에 손을 들고나와서 동대문에 있는 스포츠 용품업체의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 같은 영업계통 일이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대식씨와 잘 맞았고, 그전에 했던 영업사원 경험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사실 대식씨는 축구 선수 버금가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30대까지 성북구 대표 주전 스트라이크로 출전할 만큼 공을 제법 잘 다루었다. 조기회를 5군데나 가입하면서 나름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조기회 대항 원정 경기를 뛰면서 발목 인대가 나가는 큰 부상을 당했다.
필드 현장에 뛰어다니던 영업사원이 병실에 들어 누워 있으니 갑갑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고 했다. 주변 분들의 도움도 받아가며 영업도 하고 좋아하는 축구도 하면서 열심히 살았는데 뜻밖에 부상을 당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일을 할 수 없어서 가정 경제에도 비상이 걸리자 언제까지 영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학창시절 방학 때마다 시골할머니 집에 내려가던 때가 그리워지고 평소 동경해오던 농촌 생활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9년 병원에서 퇴원하자 곧바로 경기도 시흥에 있는 연두농장(대표 변현단)에 들어갔다. 농업공동체로 멘토를 역할을 해주며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농업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이다. 체험 형식으로 노동력을 제공해주고 귀농에 필요한 정보와 아이템을 습득하는 시스템이다.
연두농장에서 열심히 귀농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울진자활후견인센터 교육 강의를 위해 변현단 대표가 울진까지 장거리 운전을 하고 와야 해서 동행을 하게 된 것이 울진과 첫 인연을 맺은 계기다.
“변 대표와 내려올 때 현장 경험을 익힌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선 것이 이젠 울진 사람이 되었네요.” 그당시 울진에 대한 느낌이 좋았고,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 많은 조건과 여건들이 맞아 떨어지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울진을 다녀온 뒤 귀농을 결심하고 자활센터의 도움으로 울진에서 터전을 잡는 기회를 잡았다. 변 대표도 울진으로 귀농을 결심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사정이 생겨 후에 오겠다고 대식씨와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변 대표는 현재 전남 곡성에 귀농해 살고 있다.

지금부터 꼭 5년 전 대식씨는 가족을 데리고 봄 기온이 막 느낄 무렵 울진으로 내려왔다. 기성 황보리에 자리 잡고 있던 자활후견인센터 비닐하우스 작업장 한쪽 구석에다 방을 꾸미고 살림살이를 마련했다. 귀농에 필요한 많은 부분을 자활후견인센터에서 도움을 받았다.
귀농은 하였지만 보금자리 이외에는 마련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손에 가진 돈도 얼마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힘든 귀농이었다. 다행히 노력한 만큼 보람도 느끼고 서울 직장생활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감에 몸은 힘들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고 한다.
2011년 자활후견인 센터에서 임대한 비닐하우스 12동을 관리하면서 농사일에 대한 요령과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해 겨울 많은 눈으로 비닐하우스가 폭삭 무너져 버렸으며, 땅 주인과 자활센터에서는 재계약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대식씨는 땅 주인과 협상에 나서 계속해서 임대할 수 있도록 비닐하우스 임대를 결정하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감행하였다고 말했다.
막상 직접 하겠다고 나섰지만 초보 농사꾼에겐 벅차고 힘들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농사 장비와 기술은 어떻게 하겠지만 재정적인 부분이 너무나 많은 어려움에 부딪쳤다고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그때 마다 어떻게든 채워지고 겨우겨우 이끌고 나갔다.
대식씨는 지금도 부족한 농업기술들을 농촌기술센테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고 틈이 나면 교육에 참석하고 있다. 농민사관학교를 2번이나 입소해 양잠, 곤충 과정, 로컬푸드 과정을 수료했다.
이외에도 농산물가공 창업 아카데미, 기계화 영농사 교육, 녹색대학 2년, 울진농어촌체험지도사과정 등 기술센터에서 개소되는 모든 교육은 빠짐없이 받고 있다. 열심히 쫓아다니다 보니 기술센터에서 선발하는 일본 선견지 농업 견학에도 뽑혀 다녀왔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내려온 울진은 대식씨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처음엔 농사를 짓겠다고 왔지만 이젠 사람 농사를 하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만큼 주변 사람 누구와도 친밀하게 지내며 사람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통해 지역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면서 봉사 활동도 틈틈이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처럼 도시에서 귀농을 결심하거나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도 제공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울진군귀농인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힘들게 울진까지 왔지만 이젠 주변을 조금씩 둘러보는 여유도 생겼다고 말하는 대식씨는 지역을 위해 어떤 봉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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