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삶과 너무 닮아 레이스를 멈출 수 없다!

마라톤 레이스를 할 때 느껴지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순간에도 관성의 힘으로 반복된 걸음을 계속한다. 결승선 테이프가 허리에 감기면 아 끝났구나 하는 마음과 선두로 들어왔다는 감격이 함께 밀려온다. 힘든 순간을 견디고 얻은 성취감이 크기 때문에 다음 대회를 준비하고 또 달린다.
마라토너 대부분은 결승선이 보일 때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장성연(41)씨도 결승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할 때 급격히 힘들어진다고 한다. 그때마다 가족을 생각하고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되새기며 마지막 힘을 다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왜 마라톤을 하느냐고 물어오면 꼭 자신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어 마라톤을 좋아한다고 했다. 달리다 보면 수십 번도 더 포기하고 싶지만 이를 악물고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레이스를 이어간다. 결승점을 통과한 후에는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밀려오는 환희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울진군청 청원경찰로 근무하는 성연씨는 어릴 적 꿈은 공학도였다. 포항에 있는 공고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육상 특기생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각종 육상경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등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성연씨는 모교 중학교 체육 선생님과 부모님의 뜻에 따라 예천 대창고로 진학했다.
막상 진학해 들어간 육상부는 기대했던 것보다 교육 환경과 훈련 시설이 열악해 고생을 많이 했다. 고1때 경북도 대표선수로 한두 차례 선발되어 전국대회에 출전했지만,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다 2학년이 끝나갈 무렵 허리부상으로 대회 출전조차 못하게 되자 운동선수의 길마저 포기해 버렸다.
체육 특기생으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는데 막상 고3이 되니 장래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진학을 위해선 공부를 해야 했지만, 기초 학력 등 너무나 많은 것이 부족했다.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기초도 익히고 학교 수업도 착실하게 들으며 공부에 매진했다.
우여곡절 끝에 관동대학교 사회체육학과에 당당히 합격을 했다. 대학에서 스쿼시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는 헬스를 선택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스쿼시 강원도 대표선수로 뽑혀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등 예전에 육상으로 다져진 기초 체력이 있었는지 기량이 남달랐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서울에서 스쿼시·헬스 강사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3년 정도 도시생활을 하다가 권태기에 막 들어설 무렵 때마침 한울원자력이 운영하는 스포츠센터에서 헬스강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지인으로부터 받았다.

고향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 여러 가지 좋겠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짐을 꾸려 울진으로 내려왔다. 군대 시절 후임병 소개로 알게 된 부인 황근수(41)씨와 가정을 꾸미는 등 신혼의 달콤함과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 동기 중 친하게 지나던 친구가 서울에서 사업을 제안해 왔고 이에 귀가 솔깃한 성연씨는 사전 준비도 없이 친구 말만 믿고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이젠 혼자가 아닌 식구가 딸린 한집의 가장으로 누가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을 해버렸다. 주변의 만류와 부모님의 반대에도 성연씨의 결정을 뒤집지 못했다. 나름 사업을 해서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얻어 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성급함이 앞서 돈 버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서울로 올라온 성연씨는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알뜰 장터를 열어 장사를 했다. 건어물을 주로 판매하는 것으로 다양하지 못한 품목 선택이 제일 큰 실수였다. 그러다 보니 생각했던 만큼 남는 것이 없고 장사도 신통치 못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영등포 시장에서 장을 봐서 가판을 열고 밤 8~9시가 되어서 장사를 마치는데도 손에 쥐는 돈은 몇 푼 되지도 않았다. 매일 저녁 지친 몸과 허한 마음을 술로 위로받다 보니 몸은 망가지고 짜증만 늘어가고 최악의 상태였다.
“적성에도 잘 안 맞고 장사에도 소질이 없으니 고생은 고생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어느 것 하나 편한 것이 없고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후회를 수도 없이 했다. 부모님의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 하나 없이 빚만 늘어갔다.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어서 사업을 정리하고 이것저것 계산하니 손에 남는 것이 없었다. 취직을 하려 해도 고향에선 힘들 것 같아 처가가 있는 부산으로 갔다. 아내 근수씨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겨우 월세 단칸방 하나 얻어 이사를 했다.
다행히 헬스강사로 취업은 했지만, 몸 관리를 하지 않아 체중도 많이 나가는 등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체력과 몸 관리를 위해 시작한 운동이 마라톤으로 2006년 12월이었다. 마라톤 동호회도 가입하고 관련 정보 등 동호인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한 번도 제대로 달리기를 하지 않았던 성연씨는 10여년 만인 2007년 사천 ‘노을’ 마라톤에 처음 출전하여 6위를 차지했다. 동호회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마라톤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이뤄낸 성연씨의 기량에 놀랐고, 주변의 부러움도 한몸에 받았다.
동호회 회원들은 성연씨의 어려운 생활 형편과 안정되지 못한 직장생활 등을 걱정하면서 자신들의 일처럼 직접 챙겨주기도 했다. 학원에서 학생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해보지 않겠느냐며 노창훈 동호회 회장이 새 직장까지 알선해 주었다. 또한 학원 원장도 운동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를 아낌없이 해주었다.
그러던 중 연말쯤 간경화로 성연씨 아버님이 쓰러지면서 주말이면 울진과 부산을 힘겹게 다녔다. 계약직이지만 울진보건소에 자리가 생겼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아버님 병간호를 위해 집사람과는 별도의 상의도 없이 근무하겠다고 했다. 아버님이 위독한데 자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곁을 지키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울진으로 돌아왔다.
집사람은 부산에서 하던 일이 있어 같이 오지 못하고 성연씨만 울진으로 올라왔다. 성연씨가 울진에 온 지 5개월 정도 지날 무렵 병세가 악화된 아버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스포츠센터를 그만두는 것을 그렇게 반대했던 아버님의 뜻을 진작 헤아렸으면 하는 아쉬움 등 죄책감으로 그 당시 많이 울었다.
보건소 계약직 근무가 끝났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아들로서 홀로 계시는 어머님을 두고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때마침 군청소속 도로보수원 자리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무기 계약직이지만 신청을 하였다. 그나마 직장과 생활이 안정되면서 집사람도 울진으로 오고 마라톤에도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울진군청 유니폼을 입고 각종 마라톤대회에 출전하면서 2009년도 MBC 마라톤 우승, 2010년도 서울동아국제마라톤에서 마스터스부문 우승, 2008년도부터 출전한 도민체전 10Km 단축마라톤에서는 3연패를 달성하는 등 최고 절정의 기량을 보였다.
이 무렵 한 달에 4번 정도, 한해 60여 군데 넘는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무쇠 체력을 선보였다. “아마도 지금까지 마라톤을 위해 달린 거리를 환산해 보면 지구 한 바퀴 정도는 돌아설 것”이라며 성연씨는 너스레를 떨었다.
서울, 전라도 광주, 부산 등 전국 각지를 주말이면 혼자서 차를 몰고 다녔다. 시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거의 초주검 상태였지만 즐거움 마음으로 다녔다. 그러다 가족을 동반해 다니면서 태원(11), 지원(9)이 두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연씨는 아마추어 선수들 사이에서는 제법 잘 나가는 선두 그룹으로 분류되어 있다. 대회 출전 여부를 확인해 오는가 하면 레이스 페이스를 이끌어 달라는 부탁과 마라톤 관련 정보를 공유하자는 제의를 하는 등 나름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멀리 울진까지 와서 본인들과 교류를 하자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연씨는 각종 대회에 출전하여 받은 상장과 트로피, 메달 등이 300여개가 넘는다. 중요한 대회나 기념적인 대회에 출전해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자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지만 훗날 큰집으로 이사하면 다 전시해 놓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받은 상금의 일부를 적립해 두었다가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기부를 하고 있다. 2009년도부터 시작한 기부는 6년째 이어오고 있다. “기부를 시작하면서 성적은 더 좋아지는 것 같다.”며, “부족하다 생각하면 더 많은 것들을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것 같아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어렵고 힘든 시절에 다시 시작한 마라톤이라 그런지 많은 이야기가 묻어 나온다. 철몰랐던 지난 시절을 달리기를 통해 되돌아본다. 웃음 짓는 일보다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았던 시간들이었기에 더 악착같이 달렸다.
2013년 12월에는 청원경찰로 정식 발령을 받았다. 그간의 마음고생 한 것들과 조바심이 사라지면서 달리기에 전념할 수가 있게 되었다. 10여년 만에 안정된 직장을 잡은 것도 마라톤을 통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냈기에 가능했다. 많은 고비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야 하는 마라톤을 그래서 사랑한다.
성연씨는 최근 도민체전이 각 시·군에서 성적 위주로 너무 집중하다 보니 간혹 부정 선수들이 다수 출전하는 것을 목격한다. “올해 도체에서는 대학 선수들이 마라톤에 다수 출전하면서 군부 6위를 차지하는데 만족해야 했죠.” “물론 예년과 같은 체력은 아니지만 젊은 선수들과 40대인 제가 똑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기란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를 뛰고 나면 근육통, 관절 등에 조금씩 무리가 오고 있다”며, “기록과 성적도 예전 같지 않아 대회출전도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체력이 받쳐 줄 때까지는 계속해서 마라톤을 할 것”이라고 했다.
성연씨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후배들을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육상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젊은 시절 꿈을 후배를 통해서라도 성취해보고 싶다. 요즘 즐겁고 재미나는 운동들이 많아서 그런지 젊은 친구들이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언제까지 마라톤을 계속할지 모르겠지만, 마라톤 레이스는 고독하고 자신과의 싸움이니 멈출 수가 없어 본능적으로 또 달린다. “여러분의 많은 격려와 응원이 큰 힘이 된다.”며, “주변 분들의 아낌없는 응원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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