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바보 임종근 씨, 세상에서 제일 큰 선물이 태우예요
나무를 자르는 시끄러운 기계음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다음 공정으로 넘길 작업 물량을 일일이 체크해 변수가 없는지 확인한다. 머릿속에 그려진 도면을 수십 번도 더 그려보며 작업 공정을 점검하느라 끼니를 놓치기 일쑤다.
늦은 점심을 먹는 임종근(55)씨는 배고픔보다 도면 속에 그려진 공정 하나하나에 신경 쓰느라 밥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모든 일에 중심은 소비자가 의뢰한 실내 인테리어를 어떻게 하면 만족시켜 드릴까 하는 것이다. 신뢰와 성실함으로 지금까지 사업을 해온 그에게는 이젠 일상이 되어 버렸다.
후포면 금음리에서 태어난 종근씨는 5남 1녀의 셋째로 늘 위아래 형제들에게 치여 손해를 보며 자랐지만 크게 불만은 가져보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누구하나 더 귀하게 대접해줄 여건이 못 되었지만 형님이나 동생들에게 정해지는 약간의 우선 순위에는 개의치 않았다.
형제들은 나이 터울이 그렇게 많지 않아 다툼은 많았지만 농사일과 바닷일을 하시는 아버님을 돕는 일에는 누구하나 토를 달지 않았다. 힘든 어린 시절을 함께한 형제들이기에 그 우애는 지금도 돈독하다.
목공소에서 사회생활 시작
종근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곧 바로 대구로 갔다. 가난한 가정형편에 고등학교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대구에서 생활하는 동네 선배들이 놀러오라는 말에 도시 생활이 부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차에 무작정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고 했다.
형들을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목공소 앞을 지나는데 불현듯 그 일이 너무 멋져 보이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무작정 들어가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주인이 위아래로 쭉 훑어보더니 몇 살이냐고 물었다.
너무 어리다면 주인이 일을 시키지 않을 것 같아서 나이를 올려서 말했더니 주인아저씨는 웃으면서 일은 많이 힘들 것이라며 일할 수 있겠냐는 말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언 40여년이다.
당시 먹고 자고 한 달에 만오천원을 받으면서도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것이 그 목공소에서만 8년을 했다고 한다. 주로 문 제작이나 가구 등을 만들었다. 성실하게 일하면서 거래처 사장들과 인맥 형성도 자연스레 키워졌다.
독립 후 첫 사업
그러던 어느 날 거래처 사장이 잘 알고 있던 지인이 성서에서 호프집을 오픈할 계획이라며 실내 인테리어를 맡아서 해줄 수 있냐고 제안을 해왔다. 목공 생활 8년 만에 독립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평소 출장 다니면서 내가 직접 인테리어를 한다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도 해보고 관심을 가지던 중이라 사장의 제안에 무조건 수락을 했다.
하지만 막상 인테리어를 하겠다 하여 찾아간 가게는 70평 규모에 제법 큰 공사였다. 일은 하겠다고 말은 던졌지만 처음 맡아서 하는 일이라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다. 주변 지인의 도움 등 3주 가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음을 조려가며 일을 했다고 했다.
첫 사업이라 많이 힘들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과 처음 만져보는 거금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자신감 충만 등으로 모든 일이 쉽게 보였다고 했다.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는지도 몰랐다. 이를 확인하듯 영천 대창에 있는 사찰 내부를 맡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종근씨는 자세한 견적도 내어보지 않고 수락부터 해버렸다.
종근씨는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호프집 실내인터리어를 무사히 끝낸 것을 운으로 보는 시선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사찰 인테리어는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이 생겨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고 한다. 정확한 판단과 시장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얼렁뚱땅 시작한 두 번째 사업은 세상 이치를 깨우치는데 만족해야 했다.
사찰 인테리어를 하면서 그때까지 벌어 놓았던 돈을 다 털어 넣고 말았다고 한다. 두 번 사업에 천국과 지옥을 다 경험했다고 했다. 그때 나이가 24살로 어쩌면 세상을 이해하기 부족한 연령일 수 있다. 젊었기에 좌절보다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서울로 올라갔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아
서울 신촌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지인이 소개한 업체에서 실내 인테리어 일을 다시 하게 되었다. 큰 시련을 경험한 종근 씨는 늘 남들보다 늦게 퇴근하고 일찍 작업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작업이 없는 날은 틈틈이 가구를 제작해 소일거리로는 제법 괜찮은 부수입도 올렸다.
주야가 따로 없던 종근씨 손에는 망치와 톱이 늘 쥐어져 있었다. 또한 전국 팔도를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주문받은 업소의 인테리어를 위해 출장을 많이 다녔다. 서울 숙소에서 잠을 자는 날보다 외지에서 잠을 자는 날이 훨씬 많은 탓에 가정을 이루고 규칙적인 생활은 애초에 꿈도 꾸지 못했다.
2년 정도 힘든 서울 생활을 하면서 재기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종근씨는 옷가게, 식당 등 조그마한 일이지만 직접 맡아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욕심나는 일들도 있었지만 견적을 내어보고 확인해서 무리하지 않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차곡차곡 해 나갔다.
그의 깔끔한 일 마무리 솜씨는 입소문을 탔고 일감이 밀려왔다. 사업장 규모도 조금씩 키워가며 당시 또래 30대가 직장에서 받는 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돈을 모았다고 한다. 자연히 돈 씀씀이도 커지면서 허세도 조금씩 늘어갔다.
힘들게 올라온 서울이었지만 나름 좋은 경험들을 쌓았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았다고 자신했다. 사업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면서 제법 잘나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찾아온 허영심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순서들을 놓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사업 실패
조그마한 일거리는 거들떠 안보고 큰 일거리만 쫓아다니며 실속보다는 외형만 보고 결정하는 일이 늘어갔다. 그러던 중 포항에서 제법 큰 규모의 인테리어 공사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다. 볼링장, 목욕탕 등 건물 통째로 인테리어 공사에 대한 하청 건이었다.
종근씨는 하청을 받은 일에 또 하청을 받는 일이라 고민하고, 좀 더 숙고하고 결정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후좌우 따져보지도 않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20대에 큰 실패를 경험했지만 욕심 앞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조차 또 망각했다.”고 말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종근씨는 서울에서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포항에서 볼링장과 목욕탕 인테리어 사업을 위해 올인했다. 공사 시작 후 1년 정도는 필요한 물품 대금과 노임 등이 순조롭게 나오던 것이 불규칙하게 지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재비를 종근씨가 대납을 하게 되면서 이상하게 일이 꼬여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인테리어가 마무리 되었지만 공사 대금은 하청을 맡았던 업체가 받아간 상태라 종근씨는 나머지 잔금을 받지 못했다. 불법 하도가 된 상태라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져 버렸다. 부끄러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만 태웠다고 했다.
인생의 반려자 만나
일도 잘 안 풀리고 마음을 무겁게 해서 찾아온 고향집엔 어머니가 장가는 안가냐고 닦달을 하셨다. 종근씨 고향집 인근에는 친한 후배가 중국에서 시집온 부인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단란하게 살아가는 이들 부부를 늘 지켜보았던 모친이 중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한 후 후배 부인과 종근씨를 중국 연길로 억지로 보냈다고 했다.
마음도 무거웠고 쉬고 싶었던 차에 결혼보다는 휴가 간다는 기분으로 못 이기는 척하며 가볍게 따라 나섰다. 중국에서 소개해준 사람을 만났지만 느낌이 오지 않아 포기하고 편한 마음으로 쉬고 있었다. 돌아오기 이틀 전에 우연히 중국인 아줌마 한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종근씨가 맞선을 보러온 것을 알고는 자신의 딸과 선을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당황했지만 특별히 할 일도 없던 차에 종근씨는 따라 나섰다고 했다.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지만 이내 후회했다. 43년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그때 처음 설래임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했다.
두 시간 정도 함께 했는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고 했다. 다음날 약속을 정하고 돌아와서는 소개팅 한 여인의 얼굴을 몇 번이고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첫눈에 반해버린 종근씨는 이 여자가 나의 평생 마지막 여자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구애해 성취한 사람이 지금의 부인 이연화(43)씨이다.
1주일을 예정하고 간 중국이지만 연장을 해 20일을 더 있었다고 했다. 매일 만나면서 연화씨 가족들과도 친밀하게 지내며 그 집도 사윗감으로 생각했던지 잘 대해주었다고 했다. 짧은 만남의 시간이었지만 마음은 벌써 만리장성을 몇 번이나 쌓았다고 했다.
종근씨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는 연화씨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서 그는 한 달 뒤 중국행 비행기를 또 타고 말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열정은 43살이 넘은 노총각 가슴에 늦게 찾아왔지만 불타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한 번 더 중국을 방문하는 등 만난 지 6개월 만에 띠 동갑인 연화씨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 날짜 등 준비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신랑 나이가 많은 탓에 초스피드로 진행되었다.
연화씨는 어릴 때 평양에서 살다가 중국으로 돌아온 화교라고 했다. 그 곳에서 초등학교 1학년까지 다니다가 식구들과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 당시만 해도 한국말이 서툴고 어색했지만 사랑을 만들어 가는데 불편함은 없었다고 했다.
연화씨 부모님은 중국 훈춘에서 오징어를 가공해 상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부모님이 한국어 공부와 운전면허까지 획득해 가도록 준비를 시켰다고 한다. 딸이 한국에서 생활하는데 있어 빠른 적응과 불편함 없도록 미리 대비시켰다고 했다.
종근씨는 연화씨가 처음 한국에 시집온 그날부터 지금까지 집안 어른들을 잘 공경하고 특히 우리 형제들에게도 우애있게 잘 해주고 있다고 했다. 종근씨가 인테리어 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도 그 빈자리가 표시나지 않도록 부지런지 집안의 경조사를 챙기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다고 했다.
특히 일이 없는 날에는 후포초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태우와 모든 시간을 같이 보낸다.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라 애틋한 마음도 더 깊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고 귀엽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그를 아들 바보라고 놀리기도 한다.
두 번의 사업 실패가 종근씨에게는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달려간다. 결혼 이후 후포에서 생활 터전을 잡고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울진다문화가족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직분을 맡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살자
종근씨는 다문화 가족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부 사람들로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모두가 친구이고 가족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불편한 시선도 가려질 것이라며 주변 다문화 가족들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어 달라고 했다.
또한 소통의 부재로 다문화가족회가 몇 년 동안 힘들었지만 군과 다문화센터, 가족회 모두가 늘 하나가 되어 서로를 믿고 격려해주는 관계로 만들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어울러 군민들의 많은 관심과 애정을 당부했다.
오늘도 종근씨는 “주문받은 가게가 멋진 인테리어 작업을 통해 새롭고 대박나길 희망한다.”며,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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