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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松津)은 일제 말기에만 채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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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0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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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구 온천장~원탕을 잇는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3교량(노르망디교) 못 미친 지점에 설치되어 있는 입간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송진(松津) 채취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 소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 입간판은 송진과 송진 채취 흔적에 대해 ‘일제 말기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항공기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으로,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곱씹어볼수록 무엇인가 설명이 부족하고, 게다가 약간의 역사․문화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아 사뭇 찜찜하다.  
송진은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해방 후를 거쳐 1970년대까지 울진군을 비롯한 전국에서 채취됐기 때문이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송진은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산골 농가의 주요 수입원이었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1960년대에 1톤당 10만원이던 송진은 70년대 초 20만원대를 거쳐 40만원, 50만원으로 가격이 치솟는다.
  
송진을 공업 원료로 사용하는 제품은 비누, 종이, 광택제, 봉랍(封蠟), 잉크, 먹, 접착제, 납땜 용제, 방수제 등 100여 가지가 넘는다.
특히 아쟁, 바이올린, 첼로 등 찰현악기(擦絃樂器)의 활, 무용수의 신발, 운동선수의 손바닥, 무대 바닥 등에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송진이 사용된다.  
게다가 송진 안내 입간판에 기록되어 있는 ‘일제강점기에 항공기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했다’는 설명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계곡에 폐기되어 있는 1970년대 송진 채취 깡통  

송진을 항공유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정제와 가공 공정을 거치고 비행기 엔진도 개조해야 했는데, 무엇보다 송진에서 추출한 송탄유(松炭油)는 순도(純度)가 떨어져 항공유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했던 것으로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후일 원자폭탄으로 일본을 점령한 미군들이 송탄유를 지프차에 사용했는데, 얼마 못가서 엔진이 멈춰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울진 지역 산중 소나무에 남아 있는 흉물스러운 송진 채취 상흔은 일제강점기 삼림 수탈의 역사적 흔적일 뿐 아니라, 해방 후 1970년대까지 곤궁하게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고단했던 삶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덕구계곡 한 곳에 무더기로 폐기된 채 녹슬어가고 있는 송진 채취 양철 깡통은 우리 손으로 자행된 소나무 고난의 아픈 역사를 실증하고 있다.
  
끊임없이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극악한 일본을 닮지 않기 위해서는 보잘것없는 안내 입간판 설명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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