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가원동 외솔박이, 그 푸름에 취하다

  • 기자
  • 입력 2015.10.23 11:58
  • 글자크기설정



「2, 7일 울진 5일장. 대흥리 미파골에서 울진장을 한번 나오려면 걸어서 3시간, 왕복에 족히 6시간이 걸렸다.

그때는 대흥리와 울진읍을 연결하는 지금의 36번 국도가 없었고,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지독한 어지럼증을 타고 산골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차를 탈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니 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국민학교 1학년이던 아이는 울진 장날과 일요일이 겹치는 날이면, 이른 새벽밥을 먹고 어둠살이 채 걷히지도 않은 시각에 희뿌연 산속 오솔길 윤곽을 따라 미파골을 출발하여 할머니를 따라 졸졸거리며 울진장에 나오고는 했다.
  
병풍처럼 미파골을 싸고도는 암지다람을 힘겹게 걸어올라 오형제 묘를 지나고 쉰배미를 지나 신림에서 다리쉼을 한번 한 후, 거북바위와 외솔박이를 지나 학마을로 불리던 구만동을 지나면 도착하던 울진장.
  
낯선 장꾼들 틈새를 비집고 장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려서 다 팔아봐야 돈 만원도 되지 않던 백푸로 보따리 속 할머니의 초라한 장거리들.
  
아침 먹고 나면 점심 걱정을, 점심 먹고 나면 저녁 때꺼리를 걱정하던 궁벽한 산골에서 5일장에 내다 팔 수 있는 물건은 빤했다.
  
할머니는 봄이면 앞산 뒷산을 헤매면서 채취한 도라지, 참나물, 개두릅, 취나물, 더덕, 고사리, 고비, 머구나물을, 가을이면 올벼를 디딜방아에 힘들여 찧은 입쌀이나 조, 수수, 밤, 고구마, 감자를 머리에 가득 이고 장에 내다 팔았다. 
  
걸음을 재촉하여 도착한 울진장에서 할머니가 이고 간 물건을 다 팔고 나면 점심때가 훨씬 지나있기가 일쑤였다.
  
할머니와 아이는 시장 한구석에 천막으로 둘러쳐져 있던 일명 새마을 레스토랑에서 거지빵으로 불리던 싸구려 풀빵이나 국수 한 그릇으로 급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미파골로 되돌아오고는 했다. 
  
종일 걸어서 도착한 시장바닥에서 흙먼지 뒤집어쓰며 쪼그리고 기다려봐야 돌아오는 건 월남방맹이라 부르던 알록달록한 막대사탕 하나가 전부였는데도, 그 시절 아이는 그렇게도 할머니를 따라 울진장에 가고 싶어 했다. 
  
흙바닥에 나앉아 산나물이나 곡식 판 돈 만원으로 궁색한 요기를 하고, 비린내 나는 생선 두어 마리 사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 한권 사주고 나면 할머니 주머니는 금세 텅텅 비었다. 
  
뒤처지는 아이 때문에 발걸음이 자꾸만 늦어지고, 행여나 아이가 복잡한 장바닥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되고, 춥거나 더운 장바닥에서 왠종일 기다리는 것이 보기 딱했던 할머니는 어떡하든지 아이를 떼어놓고 울진장에 가려고 했다. 
  
장날과 일요일이 겹치는 날이라도 할머니는 일부러 아이를 깨우지 않고 신새벽에 출발해서 울진장을 다녀오고는 했다.
  
그런 날이면 아이는 주둥이를 한발 빼문 채 하루 종일 암지다람을 쳐다보며 시무룩해 있었다. 
  
저녁까지도 서운한 기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아이는 고단한 걸음으로 사립문을 들어선 할머니가 ‘우리 간지 잘 있었나’며 정겹게 물어봐도 대꾸 없이 홱 고개를 돌리고는 했다.」





울진읍 고성2리 가원동(佳原洞, 가만동) 뒤 도산재(돌산재)에 굳건히 뿌리를 박고 서 있는 청청거목(靑靑巨木) 외솔박이가 수십 년 만에 온전한 자태를 드러냈다.
  
그동안 외솔박이는 주변의 잡목 등에 둘러싸여 격 있는 풍치를 감추고 사계절 그윽하게 푸름푸름했다.
  
가슴높이 지름이 2미터80센티미터에 달하는 외솔박이는 백두대간 아구지맥(蛾口枝脈) 아래에 터를 잡은 보부천, 옥생이, 장구령, 돌선골, 달밭, 독점, 미파골, 쉰배미, 신림, 삼거리 마을 사람들이 울진 5일장을 오가는 모습을 오랜 옛날부터 말없이 지켜보았다.


  
혼자 또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울진장으로 향하던 장꾼들은 외솔박이 아래서 지친 다리쉼을 했고, 누구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네, 누구네는 도지 땅을 부치면서 살기 어려워 대처로 나갔다네 같은 말들을 건네며 서로의 안부를 살갑게 챙겼다.     
  
현재 울진군은 향토 문화적 가치를 지닌 노거수의 너른 품에서 살아가는 가원동 주민들의 의견을 좇아 외솔박이 주변의 잡목을 정리하고 정자 한 동을 세워 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또한 외솔박이의 생물학적 가치를 고려하여 보호수로 지정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외솔박이는 한전 울진 지점에서 시작되는 삼봉산 등산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오래전 산골 마을 장꾼들의 애환 서린 무늬에 더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어(言語)와 삶의 무늬를 더하며 한층 결 고운 나이테를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 울진뉴스 & 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문의 054-781-6776)

추천뉴스

  • 금강송배 전국 유소년클럽 축구대회, 울진서 열전 돌입
  • 울진교육지원청 ‘2026년 을지연습 사전교육’ 실시
  • 새벽 일터에서 군정을 듣다! 민선 9기 첫 현장군수실 운영
  • 울진군, 가뭄 관심단계 선제 대응 농업용수 확보 기반 강화
  • 2025년 관광택시 1기 1,886건·5,583명 이용성과 바탕으로 2기 확대 운영 시작
  • 울진군, ‘햇빛소득마을 조성사업’ 공모 선정
  • 울진군 청년 창업 지원사업 지역 문화의 성과로 청년 예술가 정효민 개인전 개최
  • 울진 꼬마발명가들, AI로 게임 만들고 강릉에서 발명을 만나다
  • 제293회 울진군의회 임시회 개회!
  • 한울원자력본부, 울진군 부구천 산책로 조성 지원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가원동 외솔박이, 그 푸름에 취하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