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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천직... 고추 마이스터 ‘수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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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2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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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땅에 진정한 주인은 농부다!


붉은색 고추들은 녹색 물감 위에다 적당한 비율로 섞여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 낸다.

무더운 날씨로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연신 닦아낸다. 올해 유난히 더 긴 폭염과 가뭄으로 1만평 규모의 고추밭은 연일 비상사태였다. 애타는 농심은 고추밭에 물을 대며 풍년을 기약하느라 바쁜 일손을 움직인다.

새벽부터 밭에서 고추와 씨름하느라 끼니가 지난 아침을 먹는 김수철(37)씨 마음은 늘 고추밭에 있다.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도외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열악한 농촌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그가 이젠 지킴이로 살고 있다.



수철씨 고향은 금강송면 남회룡로로 ‘옥방’이란 곳이다. 중석을 생산하던 옥방 광산이 번성했을 때는 주변 옥방초, 남회룡초, 광회초등학교에 다니던 학생 수가 제법 많았다고 한다. 그가 옥방초등학교 입학할 때 동급생이 32명이었다. 3학년 때 폐광되면서 12명으로 줄었고 졸업은 9명만 했다.

명절이면 고향을 찾아오는 친구들의 얼굴은 간혹 보지만 1~2학년 때 헤어진 친구들의 얼굴은 기억조차 없다고 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친구와 스승을 찾아보았지만 오랜 단절의 시간은 추억까지 삼켜버렸는지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수철씨가 초등학교 다닐 때 옥방에도 태권도장이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시골에서 운동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제법 많은 학생이 다녔으며, 그도 원생 중에 한 명이었다. 남들이 운동을 한다고 하니 덩달아 배운 것이 태권도 3단, 택견 넉동, 유도 1단까지 오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중부대 경찰행정과 시절

옥방은 울진읍까지 내려오는 거리보다 영주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편리해 생활권은 영주와 봉화이다. 수철씨는 영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연마한 것이 인연이 되어 대학은 경찰행정학과로 선택했다. 멋진 경찰 간부 후보생이 되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경찰 간부 시험 준비를 위해 고시원에 들어갔다. 나름대로 공부에는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번번이 면접에서 고배의 잔을 마셨다. 5년을 공부했지만 꿈을 달성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해 상심도 컸고 좌절감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싫었다고 했다.

방황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겼던 수철씨 삼촌이 ‘택견 경기도본관’에서 지도사범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운동을 통해 어수선했던 마음들이 정리되어 활달하고 적극적인 수철씨 본연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갔다.

고교 동창회 모임, 대학 동기 모임 등 친구들이 모이는 곳은 빠짐없이 찾아다녔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며, 소위 잘나간다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정확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너희보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뭐 그런 것이었다고 했다.

때마침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가 직장을 포기하고 귀농을 선택하는 것을 보고는 무엇인가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띵’ 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직장을 버리고 남들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시골로 들어간다는 것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친구를 만나 농사를 지어도 대기업 연봉 못지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와 철저한 준비를 통해 귀농을 결심한 배경을 듣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평소 귀농에 대한 관심과 언젠가는 부모님이 하시는 농사일을 함께 경작하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실행을 못 했을까”라는 생각에 지금껏 허송세월만 보낸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수철씨는 꿈을 향해 달려갔던 도시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2009년도 서면 옥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귀향에 부모님과 동네 분들까지 안타까워하며 걱정을 했다. 그러나 나름 굳은 결심을 하고 제일 먼저 농사와 관련된 공부를 시작했다.


고추 수확 후 아들과 함께

경북대에서 운영하는 ‘고추 마이스터 양성과정’에 등록해 한주에 이틀씩 대구로 꼬박 다녔다. 농산물을 제대로 재배하고 어느 농업인에게도 뒤지지 않는 농민이라는 인증을 받고 싶었다. 특히 수철씨의 부친인 김창섭씨의 조언이 제일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농사 관련 여러 단체의 회장 직분과 울진군 친환경농업 사업단장, 만평 규모의 농사를 지어가며 경북대 강소농 과정을 수료했었다. 또한 농사일로 피곤한 몸이지만 늦은 밤까지 농사 일지를 빠짐없이 쓰고, 농사와 관련해 수많은 데이터 등을 입력해 농업별 메뉴화를 구축해 놓았다고 했다.

“농업도 경영이라 땅만 일구어서는 절대 수익을 남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초보 농사꾼인 수철 씨에게는 스승이자 큰 버팀목이었다. 때로는 “아버지의 그늘이 커서 불편한 점도 간혹 있지만 무엇보다 실속이 더 많아 늘 고맙다”고 말했다.

수철씨는 귀향 3년째인 2012년, 대학교 다닐 때 사귀고 있었던 권나영(32)씨와 화촉을 밝혔다. 기성면 다천에서 대봉감 농사와 건설업을 하시는 권수경씨가 그녀의 부친이다. “주변에서는 단체장 선거 등 정치적 성향이 다른 두 집안을 두고 로미오와 줄리엣에 빗대어 놀리기도 했다”며 웃는다.

당시 결혼식장에서 많은 사람이 주고받던 이야기 중에 아직도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말이 있다고 했다. 하객들 대화 중에 “신랑 뭐 하는 사람이래요?”라는 물음에 어떤 아줌마는 “농사짓는다는 말도 있고,” “뭐... “농사? 젊은 사람이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지 시골에 살면서 무슨 농사를 짓냐”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당시 기분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수철씨는 “그래 두고 보십시오, 반드시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고 한다. 그가 부지런하고 적극적으로 농사에 올인하는 이유도 그때 받은 마음에 상처가 지워지지 않았기에 그런지도 모른다며 속내를 비쳤다.
수철씨는 “농민을 안 좋게 보는 풍토를 이젠 바꿔야 합니다.” “남들이 뭐라고 말하든지 저부터 열심히 일해서 농업으로 꼭 성공해 아들 대훈(3)이 까지도 농사를 시켜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이 부끄러운 세상이 아니라 농업 경영인으로 대우받는 때가 오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부친과 함께 1만 평 규모의 밭에다  친환경 농법으로 고추, 야콘 등 특용작물들을 재배하고 있다. 수철씨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농사짓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동틀 때쯤 밭에 있으면 안개 사이로 방긋방긋 웃는 고추들을 보면 어찌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몰라요.” “농부는 가을을 그리워하고 계획하면서 봄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특히 재배기술이 탁월한 아버지가 일군 농작물들은 어찌나 탐스럽고 예쁜지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이렇게 잘 지은 농산물이 판로가 없어 밭에서 혹은 창고에서 썩어나갈 때 수철씨는 많이 속상하다고 한다. 꼭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했다. “잘 팔리지 못한 농산물처럼 시험 준비로 힘들었던 그 시절에 부모님의 속은 얼마나 상했을까”라며 잠시 하늘을 쳐다본다.



농산물이 풍년이라 계약한 업체에서 판로가 없다며 발뺌을 해버린 작년 여름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힘들게 지은 농작물이 밭에서 썩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수철씨에게 어린 대훈이를 업고 있던 나영씨가 “보고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해야지요.”라며 “빨리 고추 땁시다.”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따서 어떻게 하려고?”라는 수철씨 말에 아내는 “불영계곡이라도 가서 휴가 온 사람들한테 팔아야지요.”라며 고추밭으로 향했다. 나영씨 성화에 고추를 따기는 했지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몇 박스를 만들었다.

“상품이니 포장도 예쁘게 해서 답운농장이라는 스티커도 붙이고, 대훈이까지 등에 업고 고추를 팔기 위해 불영계곡으로 향했지요.” 마침 불영사 주차장에는 각양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어서 주저 없이 그곳에다 장터를 마련했다고 한다.

아이를 업고 있는 아내까지 장사를 위해 데리고 왔지만 판매까지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수철씨는 고추 포장 박스를 들고 다니며 “고추 사세요.” “고추 사세요.”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관광객들의 관심은 끌지 못했다. 그렇지만 밭에 있는 고추를 생각하면서 관광버스가 들어올 때마다 “사장님!” “사모님! 울진에서만 생산되는 과일 맛 나는 고추를 한번 드셔 보세요”라며 고추 홍보를 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우리 차 근처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어, 혹 이 더운 여름날 아들이 어디 아픈가?라는 나쁜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어요.” “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뛰어갔는데 창피하고 부끄러워 장사를 못 하겠다고 말했던 아내가 아들을 업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영씨는 수철씨를 향해 “뭐 하고 있어요. 빨리 포장을 좀 해요”라며 다그쳤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고추를 먹어보고는 “와! 고추 맛있고 특별하다”며 물건을 사갔다. 번갯불 같이 짧은 시간에 가지고 나간 고추를 다 팔았다고 한다.

또한 농산물을 팔던 나영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수철씨는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했다. 그는 남자지만, 즐겁고 고마울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무엇보다 어린 대훈이를 키우면서도 힘든 기색 없이 묵묵히 알아서 자신을 보필해준 나영씨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것을 계기로 주말이면 덕구온천, 망양해수욕장, 양원역, 울진군 관내에 관광객이 쉬어갈 만한 곳은 다 찾아다니며, 고추 판매를 위해 직접 뛰어다녔다. 농사를 짓고 판로를 직접 해결하느라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나름 직거래에 대한 노하우도 생겼다.

지금도 농사일지에 보면 참 많이 울었던 ‘2014년 여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며, 삶의 현실로 기억된다. 농민이면 누구나 겪어본 일이지만 앞으론 이러한 일이 줄어들어야 농촌의 모습이 달라진다고 했다. 고추 농사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지만 수확 때마다 고민하시던 부모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했다.

수철씨는 가격대가 안정적이고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작물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방송을 통해 ‘퀴노아’라는 작물에 대한 소개와 효능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전망과 좋은 먹거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판단하여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도 고추 농사는 풍년이다. 풍년이면 농부는 즐거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일부 계약한 물량은 계획대로 생협을 통해 납품을 준비 중이지만, 친환경 농산물과 관행 농산물의 가격 차이가 너무 커서 친환경 농가들이 힘들다고 한다. 

수철씨는 일부 농산물을 전자통신업 판매를 통해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힘들게 지은 작물들이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고 신선할 때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부모님이 팔지 못하고 남긴 고춧가루를 인터넷을 통해 나영씨가 품절을 시켜 가족들의 근심을 한방에 날려 버리기도 했다.



수철씨네 답운농장은 울진로칼푸드관광(회장 이종은)이 주관해서 열리고 있는 로컬푸드 장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농산물 직거래를 통해 신선하고 저렴하게 구매하도록 연결해주는 행사에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수철씨네 농산물이 전국 각지를 넘어 멀리 미국 LA까지 물건이 전해지고 있어 고객들 호응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아직도 좋은 농산물들이 판로를 찾지 못해 밭에서 썩어버려 지는 일이 발생하는 등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수철씨는 판로를 신경 쓰지 않고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늘 고민한다. 안정적으로 농산물이 유통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업체에서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농부가 주도권을 잡는 시대를 꼭 만들고 싶다.

수철씨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심(農心)이 곧 천심(天心)이다”라는 말씀을 가장 좋아한다. 농민은 양심과 인내를 늘 마음에 새기며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배웠으며, ‘밥상이 행복한 그 날까지 항상 노력하는 농부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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