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50년 전 그때는 그랬다. 마을 구장들이 집집마다 나누어주는 ‘간첩 식별 요령’ 전단지나 ‘거동 수상자 신고 방법’ 전단지를 집안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온 가족들이 달달 외우고는 했다.
‘아침 일찍 산에서 신사복을 입고 내려오는 사람’, ‘구김살이 많은 옷을 입고 사람을 보고 당황하는 사람’, ‘말과 행동이 수상한 사람’, ‘물건 값을 잘 모르며 길을 묻는 사람’, ‘직장도 없이 돈 잘 쓰는 사람’, ‘장소, 시간, 시기, 기타 사정으로 보아 조화가 되지 않는 사람’, ‘행방불명되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사람’, ‘밤중에 이북 방송을 듣는 사람’, ‘12시를 전후하여 무전 치는 소리가 들리는 점’, ‘전에 살림이 곤란하였는데 갑자기 윤택하게 사는 자’, ‘신기한 듯 주위를 살피며 당황하는 사람’.
‘숨은 간첩 찾아내고 자수간첩 도와주자’는 명제 아래 간첩을 설명하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그럴듯했고,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달달 외웠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이런 내용을 담아 출제되는 사회 교과서 문제들을 풀어서 점수를 획득했다.
1953년 휴전 협정 이후의 분단 상황에 따른 남북한 양 체제의 이념 대립과 이에 따르는 국민들의 사상 교육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되어 갔다.
남북 냉전시대의 절정기를 달리고 있던 1968년 김신조 무장공비 일당의 청와대 습격 기도 사건과 같은 해에 또 다시 북한에 의해 자행된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등으로 양 체제의 혼란은 점점 더 가중됐다.
이에 따라 북한은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불온 전단지를 시도 때도 없이 살포했는데, 일명 ‘삐라’로 불린 전단지는 낱장짜리부터 달력의 형태, 소형 책자 모양까지 실로 다양했다.
북한은 삐라 살포와 함께 남한의 상황을 염탐하기 위한 간첩들을 수시로 남한으로 내려 보냈고, 정부에서는 간첩을 식별하는 요령을 담은 전단지와 책자 등을 제작하여 각급 학교와 각 마을 등에 배포하면서 교육에 열을 올렸다.
특히 각급 학교에서는 조회 시간마다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북괴군’, ‘쳐부수자 공산당’이라는 구호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단체로 복창하도록 강제했다.
국가 이념이 ‘반공(反共)’이었던 그 당시에 전국 초․중․고 학생들의 반공 교육은 말 그대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교육이기도 했다.
관공서, 학교, 정류장, 공중 화장실, 심지어 전봇대에도 반공 방첩의 구호가 홍수처럼 넘쳐났다.
북한은 북서 계절풍이 많이 불어 삐라를 실어 나르는 대형 풍선을 날리기 좋은 4월과 10월에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 전단지를 살포했고, 우리 정부는 지상에서 간첩 식별 요령 전단지와 간첩 신고 시의 포상금 지급 전단지를 뿌렸다.
전국의 경찰서는 삐라가 많이 살포되는 4월과 10월 두 달간을 ‘삐라 특별 수거 기간’으로 정하면서까지 불온 선전물을 거두어 들였고, 삐라를 주워서 군부대나 경찰서에 신고한 어린이들에게는 연필과 노트 등의 학용품을 상품으로 지급했다.
몇 십 년 사이에 온통 수상했던 시절이 많이 바뀌었다.
북한 체제를 선전하거나 남한 정부를 깎아내리는 삐라의 수거 처리 사항을 규정한 ‘북한 불온 선전물 수거 처리 규칙’은 지난 2007년 경찰청이 폐지했다.
따라서 이제는 삐라를 들고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가서 신고해도 더 이상 연필이나 노트를 주지 않는다.
울진군과 울진경찰서가 공동으로 제작한 A4 용지 크기의 이 전단지는 일부분에 낙서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지만, 지나간 60~70년대 지역의 안보․사회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써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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