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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 입력 2016.02.0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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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원 섭(경민대학교 교수)
사람은 누구나 어려서부터 세상에 나가 입신출세를 하겠다는 꿈을 키우며 노력한다. 덕을 닦아 공명(功名)을 세움으로써 성현(聖賢)의 자리에 이르려는 이러한 야망을 일러 ‘청운의 꿈(靑雲之志)’이라 했다.

‘청운(靑雲)’은 귀한 푸른 구름을 이른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신선이 있는 곳이나 천자가 될 사람이 있는 곳에 오색구름과 함께 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청운의 꿈을 꾼다는 말은 남보다 훌륭하게 출세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당나라 현종 때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모략으로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나 초야로 돌아가며 남긴 명재상 장구령(張九齡)의 시에 처음 나오는 말이다.

옛날에는 청운의 뜻이 있었는데(宿昔靑雲志)
우물쭈물 하는 사이 백발이 되었구나(蹉跎白髮年)
누가 알았으랴! 밝은 거울 속에서(誰知明鏡裏)
나와 그림자가 서로 불쌍히 여기게 될 것을(形影自相憐)

그러고 보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하는 하나의 숙명적인 ‘짐’을 안고 태어난다. 그리고 그 짐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일생을 쉬지 않고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그 짐의 무게를 느끼지 않으려고 말이다. 왜냐 하면, 어느 누구도 그 짐의 무게를 결코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방송에 출연한 한 개그맨이 대학생들 앞에서 지리산 등반 때 일화를 소개했다. “등에 진 배낭이 너무 무거워 도중에 몇 번이나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끝까지 참고 정상에 올랐다. 무거운 배낭을 열어보니 먹을 것이 가득했다.” 그는 이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인생의 짐을 함부로 내려놓지 말라’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이 이와 다를 바 없다. 짐 없이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저마다 힘든 짐을 감당하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 생각해보면 어느 한 때 시리고 아픈 가슴 없이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기쁨과 즐거움의 햇살이 비치는가 하면, 어느 한 때는 슬픔과 아픔, 괴로움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게 우리 삶의 모습이다.

돌아보면, 인생 자체가 모두 짐이다. 가난도 짐이고, 부유함도 짐이다. 아픈 것도 짐이고, 건강함도 짐이다. 책임이 있으니 짐이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지금의 권세도 짐 아닌 게 없다. 헤어짐도 짐이고, 만남도 짐이니, 미움도 짐이고, 사랑도 짐이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일 중에서 짐 아닌 게 하나도 없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게 ‘인생의 짐’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짊어지는 게 낫다. 잠시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이 가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라면 피하지 말고 지는 게 현명하다. 그 개그맨의 경험담처럼 언젠가 정상에 이르러 짐을 풀 때가 되면 그동안 짊어지고 살아온 짐의 무게만큼 보람과 행복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한 원주민들은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널 때는 등짐에 일부러 큰 돌덩이를 넣는다고 한다. 무거워진 짐 때문에 급류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걸 터득했기 때문이란다. 무거운 짐이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진흙탕에 빠져서 헛바퀴가 도는 차에도 일부러 짐을 더 실어 빠져나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짐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생의 무게를 짊어질 것인가, 아니면 인생의 무게로부터 도망칠 것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이 문제를 선택하는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짐’이라는 말을 ‘도전’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을 통해 감동적인 성공을 이루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인생의 짐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책임을 회피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지탄을 받을지언정, 인생의 짐을 짊어진 것에 비해 피해가며 사는 것이 더 잘 사는 길이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인생의 짐이라는 말을 어떻게 느끼든, 인생에는 무거운 짐들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편안한 인생 같은 건 애당초 없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짐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매진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나라 때 시선(詩仙)으로 불린 이백(李白)은 서역의 무역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촉(蜀) 땅에서 보냈다. 젊은 시절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이백은 그 무리들과 어울려 쓰촨성(泗川省) 각지의 산을 떠돌기도 하였다. 마음을 다잡고 학문을 위해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갔던 이백이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 산에서 내려와 돌아오는 길에 한 노파가 냇가에서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백이 물었다. “할머니,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바늘을 만드는 중일세.” 노파의 대답을 들은 이백이 기가 막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도끼로 바늘을 만든단 말씀입니까?” 노파는 가만히 이백을 쳐다보더니 꾸짖듯이 말했다.

“젊은이, 비웃을 일이 아닐세.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이 말을 들은 이백은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오던 길로 다시 돌아 산으로 올라갔다. 그 후로는 한 눈 팔지 않고 글공부를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初心不忘磨斧作針)’는 말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를 가지고 계속 노력하면 마침내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일러주는 고사(故事)이다.  그가 고금을 통하여 대시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러한 경험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송(南宋) 때 축목(祝穆)이 지은 지리서《방여승람(方與勝覽)》과《당서(唐書)》〈문예전(文藝傳)〉에 보이는 고사이다.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며 불평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젊은 날의 초심(初心)을 잃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운의 꿈이라는 것이 꿈을 꾸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우연한 기회가 가져다주는 행운을 믿고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짐은 자신감과 성취감을 안겨주는 신(神)의 선물 같은 것이다. 자신감은 갖고 싶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짐을 짊어지고 극복함으로써 자신감이 생기고 그 과정을 통해 행복한 인생을 꾸려갈 수 있는 것이다. 때론 짊어지고 힘들어하고, 때론 피하기도 하는 인생의 짐. 그 짐을 대하는 방식을 바꾼다면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이 진정 자기다운 성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손쉽게 들거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면 그건 짐이 아니다. 나무 한 짐이라도 지게를 한 번 져보라. 자연스럽게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 진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허리가 굽어지며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짐의 무게를 분산해서 온몸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다. 짐을 진 모습 자체가 신중하고 조심스럽듯이, 인생의 짐을 지고 있다는 마음만으로도 세상을 대하는 자세도 자연스럽게 성실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 등 위의 짐은 내 자신에게 삶이 주는 선물이자 스승인 셈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무게를 떠맡은 사람은 의젓하고 무게가 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먼 훗날 평생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에 이르러, 젊은 날 품었던 청운의 꿈을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을 기꺼이 고마워하자.

병신(丙申) 새해 아침에 독자여러분께 큰 절로 세배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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