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두 차례 매출전액 불우 이웃 위해 기부

6명의 가족 중에 제일 먼저 몸을 움직이며 잠에 취한 아이들을 깨운다. 간편한 아침을 준비하며 네 명의 아이를 등교시키려면 늘 아침이 분주하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막내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들이 알아서 챙겨가지만 억순이 엄마로 불리는 주정미(44)씨의 일상은 휴일을 제외하곤 늘 비슷하다.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과 그들 스스로 자신이 바라는 목표를 향해 조금씩 다가설 수 있도록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준다. 공부까지 잘해주면 좋겠지만, 굳이 성적을 올리려고 학원에 보내려 하지 않는다. 최대한 아이들의 의사를 반영해 결정한다.
정미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 살던 이모에게 맡겨져 몇 년 동안 생활했다. 힘든 유년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와 다가올 미래만 바라보며 가족들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고향 죽변이 좋아...
그녀는 죽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잠시 서울에서 다닌 것을 빼놓고는 줄곧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라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이끌어 나가는 편이었지만 학교생활은 지극히 평범한 학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91년도 친구들이 대학진학을 선택할 때 그녀는 취업을 택했다. 빨리 독립을 해 자신의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졸업한 후 수협에 입사를 했다. 방학이면 집에 다니러 오는 대학생 친구들을 볼 때 어린 마음에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삶의 목표를 정해놓고 나름대로 계획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나중에 누가 잘되어있는지 결과를 지켜보자며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사회 초년생으로 당차게 출발했지만,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나름 동료들보다 더 열심히 근무에 임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온 후배가 더 나은 조건으로 입사한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상했다.
대학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으로 다시금 생각했다. 대학 진학을 못 한 것에 후회와 좌절감에 잠시 빠졌다. 늦은 나이였지만 대학 진학을 신중히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당일 영업 결산을 하면서 정산금액에 오차가 발생하는 일이 생겼다.
은행에서는 일과 중 마감이 제일 중요한 시간이며 단돈 일원이라도 틀리면 퇴근 시간이 그만큼 길어진다. 그날따라 몇십 만원의 오차가 생겨 비상이 걸렸다. 그녀의 출납 창구에서 발생한 일이라 동료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업무를 마감하는데 상사 한 분이 돈을 어디다 빼내 쓴 거 아니냐며 빈정대는 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결손처리를 하고 시간이 지나서야 전표상에서 수표 처리가 잘못 표기돼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너무 억울하고 속이 많이 상했다. 결국 그 일로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이런저런 일로 6년이나 정들었던 직장을 그만두었으며 대학 진학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친구들보다 일찍 사회에 진출해 멋진 인생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대졸 사원과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대우와 자존심 하나로 버티어온 직장생활마저 마음에서 멀어졌다. 한순간에 내려앉은 상한 마음을 좀처럼 끌어 올리지 못했다. 어쩌면 오기로 대학을 가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다행히 포항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상업계 고등학교와 은행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세무회계학과로 지원했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은 탓에 수업 이외에 별다른 대학활동은 참여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같은 학과 동료 학생들과도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
주말이 아니더라도 학사 일정에 특별한 일이 없고 시험 기간이 아니면 죽변에 올라와서 시간을 보냈다. 고향 친구들과 남녀 구분 없이 친하게 지내면서 다양한 모임들을 만들었으며, 죽변을 한 번 더 찾아오게 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91년도 친구들이 대학진학을 선택할 때 그녀는 취업을 택했다. 빨리 독립을 해 자신의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졸업한 후 수협에 입사를 했다. 방학이면 집에 다니러 오는 대학생 친구들을 볼 때 어린 마음에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삶의 목표를 정해놓고 나름대로 계획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나중에 누가 잘되어있는지 결과를 지켜보자며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사회 초년생으로 당차게 출발했지만,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나름 동료들보다 더 열심히 근무에 임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온 후배가 더 나은 조건으로 입사한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상했다.
대학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으로 다시금 생각했다. 대학 진학을 못 한 것에 후회와 좌절감에 잠시 빠졌다. 늦은 나이였지만 대학 진학을 신중히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당일 영업 결산을 하면서 정산금액에 오차가 발생하는 일이 생겼다.
은행에서는 일과 중 마감이 제일 중요한 시간이며 단돈 일원이라도 틀리면 퇴근 시간이 그만큼 길어진다. 그날따라 몇십 만원의 오차가 생겨 비상이 걸렸다. 그녀의 출납 창구에서 발생한 일이라 동료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업무를 마감하는데 상사 한 분이 돈을 어디다 빼내 쓴 거 아니냐며 빈정대는 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결손처리를 하고 시간이 지나서야 전표상에서 수표 처리가 잘못 표기돼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너무 억울하고 속이 많이 상했다. 결국 그 일로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이런저런 일로 6년이나 정들었던 직장을 그만두었으며 대학 진학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친구들보다 일찍 사회에 진출해 멋진 인생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대졸 사원과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대우와 자존심 하나로 버티어온 직장생활마저 마음에서 멀어졌다. 한순간에 내려앉은 상한 마음을 좀처럼 끌어 올리지 못했다. 어쩌면 오기로 대학을 가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다행히 포항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상업계 고등학교와 은행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세무회계학과로 지원했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은 탓에 수업 이외에 별다른 대학활동은 참여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같은 학과 동료 학생들과도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
주말이 아니더라도 학사 일정에 특별한 일이 없고 시험 기간이 아니면 죽변에 올라와서 시간을 보냈다. 고향 친구들과 남녀 구분 없이 친하게 지내면서 다양한 모임들을 만들었으며, 죽변을 한 번 더 찾아오게 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사랑의 큐피드 화살이 날아들어
산천은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날씨도 너무 화창해 마음마저 놀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빠졌지만, 딱히 갈 곳이 집밖에 없어 죽변으로 왔다. 그녀의 울적한 마음도 고향 바다는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학업을 위해 잠시 외지에 나가 있지만 친구들이 불러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죽변을 그녀는 더 자주 오게 된다.
그날도 웃고 떠들며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헤어지면서 인사를 나누다 포항으로 돌아갈 때 차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한 친구가 포항으로 돌아갈 때 자신의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그래라. 내야 버스 타고 가는 것 보다 훨씬 좋지”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당연히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학교로 가는 날 그 친구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자신의 면허가 정지된 상태인지라 운전을 해줄 직장 후배를 데리고 나타났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누가 운전하던 포항까지 편하게 모셔다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랜만에 편하게 승용차로 포항에 오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에 친구들에게 저녁을 먹여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말 죽변에 오기만 하면 포항까지 대신 운전을 해주던 그 후배가 자주 눈에 띄었다. 커피숍에 가도 그곳에 앉아 있고 또 길을 가다가도 마주치는 등 매번 얼굴을 보았다. 처음엔 웃다가 어느 때부터는 안 보이면 궁금해져 연락을 해서 차를 마시기도 했다.
그 후배는 정미씨보다 5살이나 어려서 만나도 부담이 없었으며 어린 친구가 싹싹하게 잘 챙겨주는 편이라 그녀도 다정하게 잘 대해주었다. 누나 동생 하며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만나는 횟수가 많아졌다.
어느 순간 그 후배가 남자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출장 가는 길이라며 포항에 잠시 들렀다가 얼굴을 보고 갔다. 멀리서 찾아오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편하게 지내던 사이에서 점점 부담을 느끼는 사이로 변해갔다.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다가오는 남자가 연하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연락을 피해 보고 마음을 정리하려 했지만, 마음 깊숙이 들어와 버린 연하의 남자는 좀처럼 지워버릴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남자의 힘이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여버릴지는 정미씨 본인도 몰랐다.
때로는 회유도 해보고 강하게 싫다고 거부를 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남자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성큼성큼 다가와 있었다. 정미씨는 아직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임형택(39)씨에게 남자로서 당당하게 입대를 하고 제대하면 결혼을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정미씨의 어머님을 포함해 가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주변에서도 사람은 좋지만, 나이 차이도 나는 데다 무엇보다 결혼하기 이른 나이라며 반대를 했다. 그런데 정작 형택 씨는 유복자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입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선택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날도 웃고 떠들며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헤어지면서 인사를 나누다 포항으로 돌아갈 때 차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한 친구가 포항으로 돌아갈 때 자신의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그래라. 내야 버스 타고 가는 것 보다 훨씬 좋지”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당연히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학교로 가는 날 그 친구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자신의 면허가 정지된 상태인지라 운전을 해줄 직장 후배를 데리고 나타났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누가 운전하던 포항까지 편하게 모셔다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랜만에 편하게 승용차로 포항에 오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에 친구들에게 저녁을 먹여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말 죽변에 오기만 하면 포항까지 대신 운전을 해주던 그 후배가 자주 눈에 띄었다. 커피숍에 가도 그곳에 앉아 있고 또 길을 가다가도 마주치는 등 매번 얼굴을 보았다. 처음엔 웃다가 어느 때부터는 안 보이면 궁금해져 연락을 해서 차를 마시기도 했다.
그 후배는 정미씨보다 5살이나 어려서 만나도 부담이 없었으며 어린 친구가 싹싹하게 잘 챙겨주는 편이라 그녀도 다정하게 잘 대해주었다. 누나 동생 하며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만나는 횟수가 많아졌다.
어느 순간 그 후배가 남자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출장 가는 길이라며 포항에 잠시 들렀다가 얼굴을 보고 갔다. 멀리서 찾아오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편하게 지내던 사이에서 점점 부담을 느끼는 사이로 변해갔다.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다가오는 남자가 연하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연락을 피해 보고 마음을 정리하려 했지만, 마음 깊숙이 들어와 버린 연하의 남자는 좀처럼 지워버릴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남자의 힘이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여버릴지는 정미씨 본인도 몰랐다.
때로는 회유도 해보고 강하게 싫다고 거부를 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남자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성큼성큼 다가와 있었다. 정미씨는 아직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임형택(39)씨에게 남자로서 당당하게 입대를 하고 제대하면 결혼을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정미씨의 어머님을 포함해 가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주변에서도 사람은 좋지만, 나이 차이도 나는 데다 무엇보다 결혼하기 이른 나이라며 반대를 했다. 그런데 정작 형택 씨는 유복자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입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선택도 대단한 것이었다.

결혼과 힘든 출산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입대를 선택한 형택씨의 열정 앞에 그 어떤 반대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군 복무 기간에도 휴가를 나오면 죽변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는 등 한 여인을 위해 올인하는 모습에서 정미씨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찍어두기 시작했다.
유별난 이들의 만남과 사랑은 형택씨가 제대를 하기도 전에 결혼식을 감행하며 결실을 맺게 되었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추억을 나누던 장소로 기억한다며 평생 헤어짐을 떠올리지 말자는 뜻으로 결혼식은 정미씨 집 마당에서 올렸다.
군 복무 중에 결혼식을 올리는 등 아쉽고 제약된 부분이 많았지만 두 사람의 사랑 앞에 걸림돌은 없었다. 신랑이 아직 군 복무 중이라 신혼집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다. 형택 씨는 무엇보다 식구들이 한데 모여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자녀를 많이 두고 싶어 했다.
첫째 아들 채빈(17)이를 놓고 6개월 뒤에 형택씨가 제대를 해 정작 아이가 태어날 때 함께하지 못했다고 늘 미안해했다. 제대 후에는 정미씨의 본가 앞에다 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차렸다. 자주 처가에 들러 어머님을 도와주라는 형택씨의 배려가 숨겨져 있었다.
이후 채연(15), 채호(11), 채리(5)를 두어 2남 2녀가 되었다. 그가 더 많은 자녀를 두고 싶어 하고 정미씨도 자녀를 더 가지고 싶어 했지만, 아이를 출산할 때마다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경험이 있어 신중해진다고 했다.
둘째 채연이는 임신을 하고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기형아로 판정되어 마음고생이 많았다. 임신중독이 원인이라는 의사 소견에 세 군데 병원을 더 내원했지만 한 군데에서만 이상이 없다고 해 심적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중절 수술도 고민하고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부처님 모두에게 빌기도 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면 고아원, 양로원 등을 방문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자신과 약속을 했다.
특히 둘째를 놓고는 형택 씨가 정관수술을 했었다. 그만큼 출산에 대한 고통이 심했던 이들 부부에게 선택의 길은 이것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동으로 남자 형제가 없이 외롭게 자라온 형택씨는 나중 채빈이가 성장하면서 힘들 것 같다는 이유로 4년 만에 정관수술을 스스로 풀었다.
어렵게 결정해서 낳은 아이가 셋째 채호였다. “아마 셋째가 아들이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아이를 낳자고 했을 것”이라며, “저도 아마 애기 아빠 뜻에 따라 계속해서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셋째를 놓으면서 또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유도분만을 위해 주사를 너무 많이 맞는 바람에 하혈을 심하게 했다. 대다수 산모가 500㎖ 정도 피를 흘리지만 정미씨는 3,800㎖ 정도의 피를 흘려 수혈을 받아야 했다. 다산의 욕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 부부에게도 출산의 어려움을 두 번씩이나 겪은 상태에서 더는 욕심을 내지 말자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채연이가 동생을 만들어 달라고 쪼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볍게 받아주며 넘어갔는데 그 정도가 도를 넘기 시작했다. 특히 채호는 동네 어른들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동생이 생겼다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정미씨가 동네 주민들이나 아는 지인들을 만나면 “배 속에 아이가 있다.”며 아무튼 축하한다는 인사를 자주 받았다. 한발 더 나아가 채연이가 동생 이름을 ‘채리’라고 지었으며, 채호는 수시로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임신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들이 자꾸 커져 아이들이 크면 다 이해할 거라 생각했지만, 부모로서 어린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싫어 입양까지 고민했다가 어렵게 부부가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어가며 6개월 정도 노력한 결과 기적처럼 막내 채리가 들어섰다.
하지만 무엇보다 산모가 노산인 데다 앞서 고생했던 기억들로 걱정이 많이 됐다. 소중한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부부는 세상에 빛을 꼭 보여주자며 결심했다. 병원의 도움으로 산모운동과 의사의 처방대로 출산일까지 준비하고 노력했다.
정미씨의 출산은 늘 이야기를 만들어 왔듯이 막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연분만을 위해 하루종일 병실에서 고생하다 결국엔 산모의 안전을 위해 제왕절개를 통해 출산했다. 그나마 둘째나 셋째보다는 수월하게 채리를 얻을 수 있었다.


진정한 삶이란...
막내 출산 이후 형택씨는 자녀 출산에 대한 욕심을 버렸지만 못내 아쉬워하는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힘들게 낳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스로 약속했던 것들도 어느 순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은 바쁘다는 핑계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 봉사하는 삶을 살자고 했던 마음의 약속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쇠퇴해 갔다. 언제 내가 그런 약속을 했냐며 아마도 잊고 살았다. 다른 가정보다 힘들게 얻은 아이들임에도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 소식을 뉴스로 통해 접하고 나서 하루종일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수학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나간 아이들이 꼭 내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그날 아무런 일들을 할 수 없었다. 같은 부모 마음으로 그들과 아픔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러웠으며 본인 스스로에게 다짐했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날 이후 정미씨는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꼭 봉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었다.
늦었지만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장남 채빈이는 커피 향을 좋아하면서 바리스타의 꿈을 키워나가길 원했다. 가끔 어른들에게 커피 봉사를 하면서 아이는 너무 즐거워했다.
부부는 아이들이 원하는 꿈을 키워주기 위해 커피숍 오픈을 실행에 옮겼다. 부족한 것은 정미씨와 형택씨가 도움을 주면서 가족 모두가 파트를 나누어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의 또래 친구들 중 원하는 이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직업체험을 시켜주고 있다. 어린나이에 손님을 대하는 방법과 서비스방법을 교육시키며 하루를 몸소 체험하도록 한다.
울진처럼 작은 동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우리나라를 멋지게 짊어지고 나갈 주인공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신이 잘하는 분야가 분명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고 그쪽으로 가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지난 5월 27일에는 ‘사랑과 나눔’이란 행사와 ‘사랑의 열매’ 행사를 주관해 북면지역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당일 매출 1백3십여 만원의 매출 전액과 당일 모금함을 통해 모은 5십여 만원의 기금까지 울진자활후견인센터에 기부하는 행사를 했다. 정미씨네 아이들도 동참해 온 식구가 함께했다.
또 하반기에 한 차례 더 행사를 해 이익금이 아닌 매출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계획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봉사를 몸에 익힐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도 스스로 보람된 일을 찾아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가족들이 봉사하는 날을 지정해 매년 오늘처럼 매출 전액을 기부한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기쁨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미씨와 현택씨는 오늘도 네 명의 자녀와 사간을 함께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봉사하는 삶을 살자고 했던 마음의 약속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쇠퇴해 갔다. 언제 내가 그런 약속을 했냐며 아마도 잊고 살았다. 다른 가정보다 힘들게 얻은 아이들임에도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 소식을 뉴스로 통해 접하고 나서 하루종일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수학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나간 아이들이 꼭 내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그날 아무런 일들을 할 수 없었다. 같은 부모 마음으로 그들과 아픔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러웠으며 본인 스스로에게 다짐했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날 이후 정미씨는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꼭 봉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었다.
늦었지만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장남 채빈이는 커피 향을 좋아하면서 바리스타의 꿈을 키워나가길 원했다. 가끔 어른들에게 커피 봉사를 하면서 아이는 너무 즐거워했다.
부부는 아이들이 원하는 꿈을 키워주기 위해 커피숍 오픈을 실행에 옮겼다. 부족한 것은 정미씨와 형택씨가 도움을 주면서 가족 모두가 파트를 나누어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의 또래 친구들 중 원하는 이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직업체험을 시켜주고 있다. 어린나이에 손님을 대하는 방법과 서비스방법을 교육시키며 하루를 몸소 체험하도록 한다.
울진처럼 작은 동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우리나라를 멋지게 짊어지고 나갈 주인공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신이 잘하는 분야가 분명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고 그쪽으로 가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지난 5월 27일에는 ‘사랑과 나눔’이란 행사와 ‘사랑의 열매’ 행사를 주관해 북면지역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당일 매출 1백3십여 만원의 매출 전액과 당일 모금함을 통해 모은 5십여 만원의 기금까지 울진자활후견인센터에 기부하는 행사를 했다. 정미씨네 아이들도 동참해 온 식구가 함께했다.
또 하반기에 한 차례 더 행사를 해 이익금이 아닌 매출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계획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봉사를 몸에 익힐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도 스스로 보람된 일을 찾아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가족들이 봉사하는 날을 지정해 매년 오늘처럼 매출 전액을 기부한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기쁨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미씨와 현택씨는 오늘도 네 명의 자녀와 사간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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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이 지난 9월 13일 울진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개최한 ‘2026 울진금강송배 전국 마라톤대회’가 전국 마라톤 동호인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울진군체육회와 울진군육상경기연맹이 주최·주관한 이번 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4... -
울진초병설유치원, 울진향교와 함께 배우는 전통예절
울진초등학교병설유치원(원장 박찬억)은 9월 16일(수), 23일(수) 2주에 걸쳐 유치원 유아 60명을 대상으로 울진향교와 함께하는 인성예절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번 교육은 유아들이 우리 고유의 전통예절을 직접 체험하며 바른 인사 습관과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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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기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성황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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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중학교, 두들아트로 자기이해와 관계의 힘을 키우는 사회정서프로그램 운영
온정중학교(교장 이지현)는 2026년 10월 2일(금), 전교생을 대상으로 2026학년도 희망사다리교실 사... -
울진교육지원청, 2026년 하반기 지역교권보호위원회 정기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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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본부, 시장엔 활력을 이웃엔 온기를! 추석맞이 전통시장 장보기로 사랑나눔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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