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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어느 생각의 한 쪽을 잡아낼 수 있다면’

  • 입력 2016.10.3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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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 울진문화원 사무국장
②새의 기억.
Y형이 바소구리에 소 꼴을 가득 채우던 문득골의 5월. 파릇한 마늘 순 같은 것이 먹고 싶던 그 무렵. 
  
습기 있는 곳에는 무성한 푸름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도마뱀과 개구리가 뛰거나 뱀이 스멀스멀 지나갔다. 
  
벌레나 마른 풀잎 같은 것을 물고 있는 새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좌우를 빠르게 살피며 눈에서 사라졌다. 새가 앉았던 나뭇잎과 가느다란 가지는 고기가 물린 초릿대 끝처럼 흔들거렸다. 
  
멀리서 올해 처음 듣는 그 새소리가 넘어왔고, 나는 마늘 순 같은 것이 자꾸 먹고 싶어졌다. 
  
꼴을 다 벤 Y형은 봉초를 신문지로 말아 물고 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둥글게 구름방울을 올리며 자랑하거나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수음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Y형은 새집을 잘 맞추었다. 새집을 찾아내는 것을 우리는 ‘새집 맞추었다’고 했다. 
  
새집을 맞춘 친구는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새집 있는 곳은 절대 비밀이었다. 그것은 친구들과 거래되기도 했던 은밀한 보물이었다. 
  
비비새는 건빵 50개, 딱새는 70개, 무당새는 70개. 물새는 100개, 무닭은 200개, 비둘기는 건빵 200개. 또 무슨 새는 몇 개. 이런 식으로 새집을 건빵과 바꾸었다.
  
아, 그 건빵! 최고의 맛난 음식이 아니었던가.
70년대 벽지 초등학교에는 가끔 건빵이나 빵이 배급되었다. 학교 급사 누나가 빵이 든 박스를 들고 복도에 나타나면 시선은 일제히 칠판에서 벗어나고 후각은 사냥개보다 예민해졌다. 
  
이생에서 이보다 미리 행복했던 날이 있었을까 싶다. 더구나 건빵은 깨물지 않고 빨아서 먹을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하리. 
  
그 귀한 것을 새집과 바꾸었다.
직접 새집을 맞추고 싶었지만 쉽지 않아 나도 Y형에게 건빵을 주고 새집과 바꿀까도 생각했다. 
  
Y형한테 새집 맞추는 법을 물었다. ‘새가 무엇을 물고 있거나, 갑자기 놀라듯 날아가면, 주변에 집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은 맞는 것 같았지만 쉽게 새집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 먹이는데 따라갔다가 나도 우연히 비둘기 집을 맞춘 적이 있었다. 소나무 숲을 걷는데 갑자기 새가 푸드덕 날았다. Y형이 말한 그대로였다. 위를 쳐다보니 비둘기 집이 보였다. 탄성을 질렀다. 적당한 높이의 굵지 않은 소나무에 있었다. 이런 곳은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좋은 새집이다. 
  
굵고 높은 나무 위의 새집을 찾았다 해도 올라갈 수 없으니 그림의 떡이었다. 낮은 언덕 바위 속이나 구릉 끝, 작은 상수리나무, 참꽃이나 개꽃에 지은 새집의 발견은 큰 기쁨이었다. 
  
이런 곳에 집을 맞추면 수시로 드나들며 새끼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새집을 맞출 때는 새가 집을 짓고 있거나, 알이 있거나 또는 새끼가 있는 경우 중의 하나였다.
  
비둘기는 알이 있을 때 맞추었다. 하루에 한 번씩 흐뭇하게 보고 갔다. 
  
두 개의 알이 부화했다. 눈도 안 뜬 비둘기 새끼는 노오란 입속을 벌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새끼가 사라졌다. 어미가 물고 다른 곳으로 간 듯했다. 안타깝지만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새집을 관리하는 것은 타임이 중요했다. 어미가 둥지에서 새끼를 데리고 날아가기 직전에 새를 데려와야 다리에 실을 묶어서 놀 수 있었다. 
  
너무 일찍 데려오면 날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더 크길 기다리다 보면 이미 새는 둥지를 떠나버린 뒤가 될 수도 있었다. 
  
시기를 잘 맞추어 데려온 새에게 먹이를 주면 받아먹는 녀석도 있었다. 새끼 개구리를 잡아 주든가 파리를 잡아서 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잘 먹지 않았다. 그러다 날아가 버리거나 죽거나 했다. 
  
새의 입장에서 보면 못할 짓거리였다. 그러나 그 짜릿한 매력에 새 쫓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새집은 쉽게 맞추어지지 않았다. 
  
돌아보니 새를 쫓던 시간은 순간보다 짧았고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다. 새끼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자라서 둥지를 떠나버렸다.
 
선현과 대가들의 글에서는 하나같이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어렵다. 그들이 아무리 말한들 우리는 금세 잊어버리거나 희석되어 버린 꿈속을 배회하다 만다.
  
가끔 꿈을 불러 회한의 넋두리 비슷한 것을 늘어놓고 위안을 찾는 정도다. 그래서 꿈은 지금도 번지수를 찾지 못하고 우리 주변에서 날아다닌다. 
  
선현과 대가들이 또다시 뒷사람에게 호소하고 있다. 꿈을 가지라고. 우리 삶의 요체는 꿈이라고.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것뿐이라고. 한 세상 살다가 가는 것이 다 그 안에 있다고. 그렇게 외치고 있다. 
  
귀가 있다면 들릴 것이요 눈이 있다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듣고 보는 귀와 눈은 둔하게 닫혀있다.
복도에 나타난 빵 냄새에 환호하던 예민한 감성은 어디에 있는가.
허공을 향해 쏘았던 화살이나 허공에 불렀던 노래처럼, 어린 시절의 꿈은 너무 빨리 사라졌지만, 그 어딘가에는 아련히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이 시처럼.
「나는 허공을 향하여 화살을 하나 날렸네.
   그 화살은 어느 곳엔가 떨어졌지만, 나는 어디인지 몰랐네.
   너무나 빨리 나는 그 화살이었기에,
   아무도 그것을 따를 수 없었기에
   나는 허공을 향하여 노래를 하나 불렀네.
   그 노래는 어느 곳엔가 내려앉았지만, 나는 어디인지 몰랐네.
   너무도 빨리 나는 그 노래를
   과연 그 누가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그 후 오래 오래된 후에, 나는 어떤 참나무에 박혀 있는 화살을 찾아내었네,
   화살은 부러지지도 않은 채로 박혀 있었네.
   그리고 나는 나의 노래도 찾아냈다네.
   그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사랑하는 친구의 가슴속에 있었다네.」
                       -H.W. 롱펠로우 ‘화살과 노래’ 전문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향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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