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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음식 지킴이 이정희 회장

  • 입력 2016.11.0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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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특성에 맞는 음식 재현 힘써


울진군음식연구회 이정희(63) 회장은 농업기술센터에서 주최하는 매실 가공 수업에 참석하느라 수다를 떨며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여유를 잊은지 오래다. 식재료마다 가지고 있는 본래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 공부에 몰두한다. 어떤 재료는 손으로 찢어야 하지만 어떤 재료는 썰어야 하고, 어떤 재료는 볶는지 혹은 데쳐야 하는지 미리 숙지를 하고 교육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왼쪽 첫번째 이정희 회장

꿈 많은 소녀

40년 전 울진으로 시집온 이정희 회장은 2남 4녀 중 셋째 딸로 경주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했지만, 농산물검사소 소장으로 공직에 계셨던 부친을 따라 영덕을 거쳐 안강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부터는 언니들과 경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친정집은 형편이 넉넉한 편이라 당시엔 보기도 힘들었던 피아노까지 집에 있었다. 아버님은 다정하지만 고지식하고 엄격한 편이라 집안에 제사가 있는 날이면 건천에 있던 큰집으로 딸들까지 데리고 참석했다. 어머님은 제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 싸가지고 온 음식 중 편떡을 간장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주변 이웃들과 나누어 먹기도 했다.

“당시엔 떡볶이라는 음식이 없었는데 어머니가 떡에 간장을 넣어 약간의 국물을 만들고 지금의 떡볶이처럼 고추장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비슷하게 만들었다.”며,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음식 솜씨가 좋은 엄마를 부러워했지요.”

어머니는 음식 솜씨뿐 아니라 바느질도 잘해 자녀들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혔다. 특히 주변에서 잔치가 있는 집은 모친을 서로 모셔가려고 했다. 어머니의 다양한 끼를 딸들이 이어받았는지 예술적 재능들이 다들 있었다. 큰 언니는 서울에서 미대 공예과를 졸업했고 이 회장은 중학교 때부터 한국무용을 시작했으며, 막내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경주여고로 진학한 이 회장은 본격적으로 무용에 매진했다. 신라문화제 등 도내 각종 대회에 출전하면서 두각을 나타내며 전국 무대까지 진출했다. 71년도에는 ‘아시아무용경연대회’ 한국대표 선발전에서 금상을 차지했으며, 72년도 ‘아시아무용경연대회’ 본선에서는 동상을 차지하며 촉망받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이 회장의 대학 진학을 앞두고 가족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계속해서 무용을 시키고 싶어도 언니와 밑으로 동생들이 줄줄이 대학을 다녀야 했다. 특히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던 여동생은 각종 콩쿠르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고 싶어 해 부유한 가정형편이라도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무용도 대회 출전을 위해서라면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출전 작품비 10만원 정도는 별도로 챙겨주는 것이 관행이어서 당시 웬만한 봉급쟁이 급여보다 많은 돈이 딸들 레슨비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대학에 다니고 있던 언니들과 대학 진학을 해야 하는 동생들에게 부담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누구보다 피아노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하는 바로 밑 동생에게 꿈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회장은 차선책으로 공부하면서 레슨도 받을 수 있는 대구 영진전문대(구. 영남전문대) 무용과에 입학을 했다. 영문을 모르는 지인들과 친구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기량을 익힐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의 진로 선택에 놀라워했다.

고등학교 시절 대회 출전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연습하고 노력했던 것들은 추억으로 남게 되고 막상 대학 진학 후에는 별다른 대회 출전 없이 학교생활에만 충실했다. “무용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무용계를 떠날 준비도 병행했지요.”
평생을 함께할 인연을 만나다

이 회장은 특별한 추억을 남기지 못한 대학 시절이지만 운이 좋게도 도교육청에서 운영한 6개월 코스의 교직 연수를 통해 청송 부남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녀가 마지막 기수였으며, 이후 이 제도가 없어져 버렸다. 때마침 아버지도 청송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부녀가 같은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편하게 살았을 정도로 힘든 일을 해보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아마 아버님이 청송에 같이 근무하지 않았다면 생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청송은 오지에다 퇴근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신학기를 잘 보내며 어느 정도 학교 분위기에 익숙해졌을 무렵 인근 청송고등학교에서 군민체육대회 준비를 하면서 무용 지도를 부탁한다는 협조 요청이 들어왔다. 퇴근 후 별다른 일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무용을 다시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내심 반가웠다고 한다.

무용에 대한 꿈은 접었지만, 학창시절 대회 출전을 위해 흘린 땀과 한복을 손질하느라 밤을 새우던 시절이 문득 그립고, 함께 했던 동료들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한다. 체육 행사 준비를 위한 무용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당시 무용을 배우던 학생들은 고등학교 재학생들로 인솔 교사가 꼭 따라 다녔다. 체육 교사라는 그 사람은 무용을 가르치는 내내 이 회장 주변을 서성이며, 마실 물도 챙겨주고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언제든지 말해달라며 관심을 표했다.

한달 가량 매일 붙어서 지내다 보니 서로의 안부도 물어보고 가족사도 물어보고 학생들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체육 교사는 퇴근 후에 집에 있으면 무료할덴데 운동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해왔다.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속마음을 한 번에 보여주고 싶지 않아 운동을 잘 못 한다며 거절을 했다. 그래도 체육 교사는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학교로 찾아왔다. 서로가 밀고 당기며 시작한 운동이 정구였다. 사실 그녀도 무용을 전공할 만큼 운동 등 활동적인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신규 교사인 그녀에게 운동하자고 선뜻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체육 교사의 적극적인 구애로 정구에 입문하게 되었다. 퇴근 후에는 자연스레 데이트를 겸해 운동을 즐기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사이로 발전해 갔다.

교제를 시작한지 얼마 뒤 체육 교사는 울진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아쉬운 작별이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로 이미 굳혀 놓고 있었다. 당시 이 회장의 마음을 훔친 체육 교사는 전동양(70) 前 울진고 교장이며, 근무하던 초등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만물이 소생하는 75년 4월 25일 봄날에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삶과 도전의 땅

4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는 전동양 前 교장은 지금까지 이 회장의 든든한 후원자로, 묵묵히 밀어주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슬하에 지영(39), 지혜(37) 두 딸을 두었다. “큰딸은 교편을 잡고 있고 둘째는 의류 매장을 운영하고 있어 자신의 길을 찾아 잘살고 있지만, 아직 둘 다 시집을 가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며, “자식은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울진으로 시집와서는 고생을 좀 많이 했다. 살아온 가정환경이 다르고 식생활 습관 등이 달라서 힘들었다. 밥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시집을 와서 그런지 시부모님과 시누이, 시동생 등 여섯 식구를 모시고 살려니 애로사항도 많았고, 아이까지 뱃속에 들어서 있어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시댁은 시장에서 미곡 등을 도매로 장사를 하던 집이라 늘 일손이 바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기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도시에서 자란 그녀는 청송에서의 생활 이외에는 시골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 더더욱 애를 먹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살림하는 것도 서툴러서 친정 부모님이 시댁에 양해를 구해 집안일을 도와주라고 사람을 보내주어 조금은 나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댁 분위기에 적응하고 몇 년 뒤 분가를 했다. 두 딸을 키우면서 힘든 신혼의 기억은 어느덧 사라지고 행복하고 즐거운 결혼생활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사회활동 시동을 걸어

두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문화원에서 농악을 지도할 사람을 구한다며 지도를 요청해 왔다. 집안 살림만 하던 부엌댁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사양했지만, 남편 전동양 前 교장의 조언과 주변의 권유로 맡게 되었다.

“농악팀을 이끌고 대회 출전과 여러 지역을 다니며 공연을 하는 등 나름 많은 활동을 했으며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김중권 의원이 후원을 많이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무엇보다 울진에서 사회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후 초등학교 어머니회장, 주부교실, 적십자회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지역 사회 구성원으로 이름을 각인시키며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에 뛰어들었다. 특히 울진적십자 회장으로 봉사할 때 1,000시간 봉사상을 수상하는 등 오랜 시간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살아온 날을 계산해 보면 고향 경주보다 울진에서 생활한 세월이 더 많지요.” “그중 유일하게 1년을 울릉도에서 보낸 거 빼면 시집와서 줄 곳 울진에서 보냈지요.” 전동양 前 교장이 울릉도로 전근되어 근무하던 3년 중에 한해는 부부가 같이 생활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2년은 같이 생활하지 못했지만, 부부가 함께 지내며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지역 특성상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텔레비전 시청이 어려웠다. 신문도 제날짜에 배송되는 것이 불가능해 늘 구문으로만 세상 소식을 한 박자 늦게 접했지만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섬 주민들과 허물없이 지내며, 동료 교직원들과 가족적인 분위기로 서로를 챙겨주어 불편함은 없었다. 혼자 생활하면 외로움에 힘이 들겠지만 가족이 함께해 좋았다는 이들 부부는 퇴근 후에는 테니스를 즐겼으며, 주말에는 나리분지를 자주 찾아 고사리, 명이나물 등을 채취하면서 외로운 섬마을의 향수를 잊고 살았다.





자신의 가치...스스로 일으켜

울진으로 돌아온 이 회장은 울진군농업기술센터 혹은 군에서 주관하는 규방, 다도, 음식연구회 등 교양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히면서 그녀의 활동 범위도 그만큼 커졌다. 또 시부모님 식사를 도우며 불영사를 자주 왕래하면서 경전반 총무를 맡게 되었다.

2009년도 울진농업세계엑스포 기간 중에 ‘선목회자스님 108 산사순례단’ 회원 4천800명이 불영사를 방문했을 때 자원봉사 등을 하면서 불영사의 크고 작은 행사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3일 동안 천여명씩 방문한 순례단들에게 기와 불사 봉사, 울진 홍보와 지역 농산물 판매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2012년 음식연구회 회장과 불영사 로컬푸드 회장을 맡으면서 사찰 음식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다음 해 서울 봉은사에서 주최한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 경연대회’에서 ‘무밥상’이라는 주제로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듬해 14년도에 ‘봄 한상차림’이란 주제로 또다시 대상을 수상해 그녀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두 번의 대상 수상으로 불교음식 특화 사찰로 지정받은 전국 7개 사찰 중 하나인 불영사는 자존심을 지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사찰음식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녀 또한 재가자들 중에서 사찰음식 전문가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작년 11월 25일부터 6개월 과정의 사찰음식 전문가 교육을 얼마 전까지 이수하느라 매주 수요일마다 한 번도 빠짐 없이 서울을 줄곧 다녔다. 정문스님, 선재스님, 대안스님, 정광스님, 우관스님 등 우리나라 사찰음식 대가로 꼽히는 스님들이 강사로 참석해 교육을 주관했다고 한다.

또한 울진군음식연구회 회장 직분을 몇 년째 역임하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영양, 포항 등지에서 음식과 관련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자주 들어오고 있다. 특히 영양군음식연구회에서는 5회에 걸쳐 김치 수업을 맡아서 진행했었다.

“거리엔 색색의 음식점 간판들이 즐비하고, 집 안에서도 전화 한 통이면 각 나라의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정작 전통이 깃든 우리네 손맛이 남아있는 곳은 찾기 어렵다”며, “울진도 지역미와 향토색을 뽐내는 음식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 음식연구회에서는 여름축제 기간 중에 지역의 특성에 맡는 음식을 내놓았다. 광어 미역국, 섭국, 홍합, 성게 미역국, 고등어 느름, 어죽, 콩국수 등 예전에 지역 어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중심으로 행사장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녀만의 규칙을 정하고 있다. 음식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것이니 무엇보다 몸에 이로운 음식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참되고 성실한 마음, 바로 정성이 들어가야 훌륭한 음식이 된다며 회원들에게 강조한다고 했다.

음식에도 계절이 있어 봄이 오면 봄나물, 여름이면 콩과 감자 등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재료마다 갖고 있는 본래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한 상태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도 지역 특성에 맞는 음식 개발에 밤을 잊고 고민에 빠지는 이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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