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희망을 일구는 젊은이들 '황종선'

  • 김석칠기자 기자
  • 입력 2007.04.04 12:55
  • 글자크기설정

  •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땀 한 방울을 더하겠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대지를 흠뻑 적셨다. 긴 잠에서 깨어나 앙상했던 가지에 옹기종기 피었던 매화꽃잎들도 비바람에 흩날리고 씻기어 서서히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한편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 새눈을 틔우기 위해 나무들은 땅속뿌리로부터 봄기운을 힘껏 빨아 들인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시간이 왔음을 알려준다.
 

이번호의 주인공은 기성면 다천1리에서 농사에 갓 입문한 황종선(31세)씨다. 지난 겨울의 가뭄을 해갈하듯 제법 많은 봄비가 내린 3월 24일 우사(牛舍)에서 송아지와 씨름(?)하고 있는 종선씨를 만났다. 송아지 5마리가 설사를 해 약을 먹이고 주사까지 직접 놓고 있는 종선씨의 손길이 서툴러 보이지만, 손길 하나하나에 진지함과 애정이 묻어났다. 1시간여 동안의 씨름 끝에 마무리를 짓고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종선씨는 아직‘농사가 뭐가 뭔지’에 대해 모른다며 걸음마도 배우지 못한 아기와 자신이 비슷한 처지지만, 그냥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히 살면서 농사를 몸으로 익혀가겠다고 말했다. 종선씨의 어머니(안순옥, 61세)는“(종선이가)처음 내려온다고 했을 때는 반대도 많이 했지요, 그래도 우이니껴 내려온다는데. 지내다 보니까 덜 외롭고 좋니더”라고 울진 특유의 사투리로 힘줘 말했다. 덤으로 종선씨의 가족과 푸짐하고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는 점심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지치고 버거웠던 객지 생활을 접고...
 

기성중학교를 졸업(93년 졸업)하고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고3때 부산에서 취직해 2년 정도 생활하다가 군에 입대했죠. 남들보다 조금 늦은 24살에 현역복무를 마쳤습니다. 제대하고 집에서 소를 키우면서 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엄하셔서 내려올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작은 형이 천안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직장생활을 했어요. 공장생활이 주야 2교대에 일요일에도 철야 근무를 했습니다. 돈은 얼마 벌지 못하면서 몸은 몸대로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그때 몸무게가 57kg정도 나갔었는데, 지금은 80kg 내외이니 당시 맨몸으로 버티어 생활한다는 것이 제게는 버거웠습니다. 아버지가 2003년 말경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홀로 지내야 했기에 곁에서 같이 지내고 싶었습니다. 고향에 내려와서 뭘 해야 되겠다고 구체적으로 마음을 먹은 것은 없었지만 군 복무를 마치면서 생각했던 소를 키우고 싶었어요. 그때 소 값이 엄청 좋았었는데 열심히 하면, 해도 제대로 못 보는 공장생활에 비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장날이면 학생들과 어른들의 짐으로 버스가 북새통이었고 동네도 활기가 넘쳤는데, 그렇지 못한 지금의 고향 현실을 볼 때면 괜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기도 하고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처음 시작해 송아지 2마리를 잃고...
 

2005년에 축산과 관련해 영농후계자가 됐습니다. 소를 키운 지는 3년이 되어갑니다만 처음 시작할 때는 송아지를 병으로 2마리 잃었었는데,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미안하기도 해서 많이 무거웠습니다. 어떻게 그런 감정들을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송아지는 태어나서 한 달이 중요합니다. 다시는 지난날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되잖아요. 서툰 솜씨지만 제 가족을 돌보듯 돌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인터넷을 통해 소 키우는 방법을 배우고 책도 구입해서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요. 여기저기서 많이 배우고 주워듣고 있습니다. 마을 어른들도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주고 관심을 가져 줍니다. 
 

한편으론 농사를 짓다 보니까 트랙터의 필요성이 절실하더군요. 그래서 큰 소 한 마리를 팔아서 지난 3월 21일에 43마력짜리 트랙터 한 대를 큰 맘 먹고 구입했습니다. 아직 운전하고 조작하는 것이 서툴지만 동네 분들이 천천히 하나하나 하다보면 익숙해진다고 격려를 해줍니다. 특히 바로 손위의 동네 형에게서 많이 배웁니다. 제가 고향에서 마음을 굳히고 살 수 있도록 좋은 본보기가 됐습니다. 농대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농사를 짓게 됐다는데 농사와 관련해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궁금하거나 모르는 것이 있어 물으면 자세히 가르쳐 주기도 하고요.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에 자극도 많이 받고요. 고맙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사실 아직 농사가 뭐가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어머니가 실질적으로 농사를 이끌어 가는 형편입니다. 때가 되면 뭘 심어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죠. 고추와 양파도 제법 짓지만 소 사료를 구입하는데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갑니다. 아직 이렇다 할 소득 작목이 없는 것이 우리 군의 실정이잖아요? 
 

벼농사를 지으려면 어느 수준까지의 기계화가 갖춰져야 하고, 밭농사를 하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필요한데 아직 제가 그 정도까지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도 송아지를 번식시킬 때면 뭔가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 제가 좀 게으른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에 아기가 태어났는데 애 얼굴을 볼 때마다 책임감을 많이 느낍니다. 힘도 많이 얻고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꿈과 희망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습니다. 다람쥐 쳇 바퀴를 돌리듯 어제와 오늘이 되풀이 되거든요.   

나름대로 뭔가를 하려고 발버둥(?)도 쳤지만 스스로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내려와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땀 한 방울을 더할 때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땅은 정직하고, 흘린 땀만큼 거둔다’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한 번 더 움직이고 조금 더 부지런하면 그 만큼의 뭔가를 결실 맺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관심과 배려가 있었으면...
 

한편으론 병원문제가 제일 불편합니다. 어디가 아파서 병원으로 가려면 최소한 30분은 가야하니까요. 또 제가 베트남 출신의 아가씨와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사실 국제결혼하는 사람들의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잖습니까? 제가 듣기에도 우리 군에도 국제결혼하는 사례가 제법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쪽과 우리 모두 다 똑같은 사람들 아닙니까? 특히 군에서 말(言)과 문화에 대해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집사람에게 말을 가르쳐 봤는데 너무 어려웠거든요. 막막하기도 했고요.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까지 종선씨의 얼굴에는 사람 좋은 웃음이 내내 걸려 있었다. 송아지가 걱정이 되는지 우사 쪽으로 시선이 향하곤 했다. 우리 군 실정상 젊은이들이 고향에 내려와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시내와 떨어진 곳은 형편이 더욱 어렵다. 병원, 보육, 교육, 취직 등 산적한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 넘어 산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들을 군에 전가시킬 수는 없다. 이웃과 소수자에 대한 작은 배려의 실천은 우리 군민 모두의 몫이다.     

ⓒ 울진뉴스 & 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문의 054-781-6776)

추천뉴스

  • 금강송배 전국 유소년클럽 축구대회, 울진서 열전 돌입
  • 울진국유림관리소, 지자체와 더불어 하천·계곡 불법행위 합동 점검 실시
  • 제293회 울진군의회(임시회) 의사일정안
  • 울진군, 지방도917호선∙군도20호선 4차로 확장 추진
  • 왕피천공원서 펼쳐지는 '2026 야(夜) 울진' 호러 퍼레이드
  • 울진군 지역자원 창업의 기회로! ‘2026 울진군 창업아카데미’ 첫 문 열어
  • 2026년 찾아가는 어린이 구강보건교실 운영 !
  • 울진군, 울진군청년연합회와 소통 “순수한 열정으로 지역 활력 이끌어 달라”
  • 울진군 드림스타트, 여름방학 맞아 ‘가족 나들이’행사 실시
  • 울진군청소년수련관·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 함께 ON 문화여행’ 운영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희망을 일구는 젊은이들 '황종선'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