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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 남세영 공의‘임천서재(臨川書齋)’기문 발견

  • 이명동기자 기자
  • 입력 2007.06.0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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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예학(禮學)의 발흥기에 활동한 학자 가운데 한명인 임천 남세영(臨川 南世瑛)의‘임천서재기(臨川書齋記)’와‘임천서당 중건 상량문(臨川書堂 重建 上樑文)’이 발견되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임천 서당은「울진군지」에‘임천공(臨川公)이 아버지의 상(喪)을 당하여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키며 예(禮)를 다 하였고 그 후에 정사(精舍)를 짓고 후진양성에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동안 정사(서재)의 위치를 짐작할 길이 없었다.

 

이번에 발견된‘임천서재기’에는“현(縣)에서 남쪽으로 10리쯤 되는 곳에 우뚝 솟은 산이 있으니 성류산(聖留山)이요, 이 산에서 내려와 또 1백보(步)쯤 되는 곳에 물굽이가 있으니 좌천(左川)이며, 산기슭과 물가에 한 정사(精舍)가 있으니 임천서재(臨川書齋)이다”라고 그 위치를 추정할 수 있게끔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임천서재기’에는“아름답구나. 이 서재여. 대저 산과 물은 겸하여 차지할 수 없으나 이 서재는 위에는 산이 있고 아래로는 물이 있으며, 소나무와 대나무는 참으로 아울러 소유하기 어려우나 이 서재는 앞에는 솔숲이 있고 뒤에는 대밭이 있으니 아름답구나. 이 서재여. 이것이 어찌 하늘과 땅이 만들어 이룬 것이 아니며 이것이 어찌 별천지로 저절로 이루어진 명승지가 아니겠는가. 이 서재의 훌륭한 경치와 미묘한 풍치는 참으로 졸렬한 문장력과 서툰 글씨로 기록해 낼 수 없다”라고 기록돼 있어, 남세영 선생의 임천서재가 산과 물, 솔숲과 대나무 밭으로 둘러 쌓여 지극히 수려하고 뛰어난 풍광 속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옛 문서 가운데서 ‘임천서재기’와‘임천서당 중건 상량문’을 찾아낸 근남면 행곡리 남호열(南鎬烈. 77세)씨는“임천공은 격암 남사고선생의 삼종질로써 성류산 인근에 임천서당이 있었다는 얘기만 전해져 내려왔는데, 이번에 임천서재기가 발견됨으로써 그 위치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임천 서재기’에 따르면‘임천서당’은 애초 근남면 노음2리‘오른갈(오로동)’인근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노음2리‘오른갈’에는 현재 임천공의 15대 종손인 남순욱(66세)씨가 살고 있고, 남씨는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의 넓은 공터를 안내하면서,“지금은 공터로 남아 있지만 1959년에 발생했던 사라호 태풍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열칸이 넘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기와집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집에서 태어나서 30년까지 살았었다는 남씨는“400여 평의 넓은 대지에는 일대에서 가장 큰 기와집이 자리했고 주변은 온통 대나무밭으로 숲을 이루었었다”며,“400여 년 전에 윗대 조상들이 오른갈에 입향한 점등으로 미뤄볼 때 집 가까운 곳에 임천공의 서재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또 그는“사라호 태풍 전까지만 하더라도 성류굴 진입도로 너머 하천 주변까지 소나무 숲이 울창했었다”고 전해,‘임천서재기’에 나타나 있는“소나무와 대나무는 참으로 아울러 소유하기 어려우나 이 서재는 앞에는 솔숲이 있고 뒤에는 대밭이 있으니 아름답구나”라는 기록을 뒷받침해준다.

 


이번에 발견된‘임천서재기’는 을해년(乙亥年) 중추(仲秋)에 임천공의 증손서(曾孫壻-손자사위)로 판교(判校:승문원·교서관의 정3품)를 지낸 강파(江坡) 권상임(權尙任)이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임천서당 중건 상량문’은 1806년(순조 6년)에 쓰인 것으로써“산릉(山陵) 뒤덮는 온갖 변란 겪으매, 마침내 매몰되어 세 번 옮김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사건을 겪거나 또는 자연적으로 허물어지거나 파손되어 세 차례나 옮겨진 후 폐허가 된 것을 장소를 옮겨 다시 복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또한 장소는 알 길이 없다.

 

울진군지는“17세기 전기의 유학자인 남세영(南世英)은 영양(英陽)인으로 호는 임천(臨川)이며 한성참군((漢城參軍) 거(秬)의 손이다.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뒤에 산속에 숨어 지내며 더욱 효도를 다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어머니를 업고 피난 가다가 왜적을 만났으나 후한 말로 죽음을 면하였으며, 특히 효자로 이름이 났고 아버지 병간호에 똥 맛을 보고 병세를 판단하였다. 상(喪)을 당하여는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키며 예(禮)를 다 하였고 그 후에 정사(精舍)를 짓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오래 살면서 통정(通政)에 오르고 독세사(篤世祠)에 배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임천공의 둘째 며느리인 현풍(玄風) 곽씨(郭氏)는「울진군지」에“시아버지 임천공이 나이가 들어 이가 빠져서 음식을 먹지 못하자 매일 아침 계단 아래에서 절을 하고 마루에 가까이 다가가서 시아버지에게 젖을 대접하여 수명을 연장케 하니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행을 칭찬하였다”고 기록이 남아 있는 효부이다.  
  본지‘월간울진’은 지난 3월호(제11호)에서 현풍 곽씨 묘소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출토된‘명정(銘旌)’,‘현훈(玄纁)’,‘근봉(謹封)’을 소개한 바 있다.

/ 이명동기자(uljin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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