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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아 가겠습니다"

  • 김석칠기자 기자
  • 입력 2007.07.2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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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기사 장명훈(32세, 울진읍)씨

 

다양한 기계와 장비들이 생활 속에서 사람의 손을 많이 덜어 준다. 이번호의 주인공인 크레인을 조작하는 장명훈(32세, 울진읍)씨가 하는 일 역시 그렇다. 단순히 물건을 들고 나르고 하는 것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크레인은 작업현장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으며, 어떤 일에서도 그 쓰임이 많다고 명훈씨는 말문을 열었다.

 

놀지 말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야 된다고 마음먹어
울진중학교와 울진종고를 졸업(95년)했습니다. 졸업하고 친구들과 대구 공장으로 일하러 갔었는데 1년도 채 못 채우고 다시 울진으로 내려왔습니다. 생각과는 달리 돈이 안 되더군요. 고향에 내려와서는 바로 막노동을 했습니다. 그때쯤에 현대아파트가 7,8층까지는 완성돼 있었었는데, 무작정 어떤 일이든 시키는 대로 다하겠다고 작업반장인 목수한테 부탁을 드렸죠. 친구 한 명하고 둘이서 그 목수를 따라 1년간 서울 등지로 따라 다니며 일을 했습니다. 일당이 3만5천에서 4만원을 받았는데 노임을 미루지 않고 제때 꼬박꼬박 주었죠. 그게 아마 그 사람을 따라서 안심하고 여기저기로 따라다니며 요령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돈도 제법 많이 벌었고 재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벌면서 쓰고 하다 보니 뒤돌아서니까 없어지데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별로 철이 없었죠.  놀지 말고 무슨 일이든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제가 살아가는 근간이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96년에 입대를 했습니다. 3사단으로 배치 받아 훈련을 받았는데 그 해에 비가 엄청 많이 내려 옆 사단의 훈련병들이 익사 사고까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훈련병 신분이었는데 몇 명이 차출돼 철책으로 떠내려 온 북한군 병사의 사체를 수습하기도 했고요. 
  
‘남 지갑 열기가 쉽지 않다’는 어른들 말씀이 백번 지당
26개월을 복무하고 98년도에 제대했지만 ‘어떤 식으로 앞날을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고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아내도 있고 애기도 한 명 있다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만, 놀지 말고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면서 살자고 마음먹었죠. 
 

제대 후부터 지금까지 울진에서 쭉 생활해 오고 있습니다만 울진을 떠나 대도시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지금도 서울이든 대구든 일이 있어 나가면 답답합니다. 막히는 도로, 텁텁한 공기, 울진에서 운전을 하다가 짐을 싣고 가면 갑갑하죠. 제대하고도 따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조금씩 철이 든 것 같아요. 몸으로만 데우는 막노동을 하기 싫어서 간판 만드는 일을 배웠습니다. 2년 가까이 배웠는데 몸담았던 업체가 업종을 변경해 그만뒀죠. 지금 생각해도 아마 그때 일 배우던 곳이 업종을 변경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간판을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간판 배우는 일을 그만두고 카고(화물) 트럭을 배웠습니다. 대형면허를 군 제대하고 취득했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우리 군에 카고 트럭이 몇 대 없었습니다. 배우면서 욕도 많이 먹었죠. 그러다가 일을 가르쳐주던 사람이 그만두고 안양으로 가버렸습니다. 한창 배울 시기였고 북면 쪽의 4차선 공사현장에 있었는데, 기술이 부족하다보니 현장에서 돈 벌기가 어렵더라고요. 일을 잘해야 업자들로부터 장비대를 받을 텐데 그들이 보기에는 돈 주기가 아까웠나(?) 봅니다. 그만 둘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중앙크레인에서 기사생활을 3년간 하고, 독립해서 지역의 화물크레인 차주들끼리 모여서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립하면서 지금 끌고 다니는 차를 구입했는데, 어떤 차를 살까하고 고민을 많이 했죠. 비싼 차를 살 수 있지만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걱정이 됐고요. 할부로 구매할까라고 이래저래 고민도 많이 했어요. 4천만원에 차를 구입했었는데, 빚을 지기가 싫어서 기사생활하면서 모은 돈과 아내(최금순)가 번 돈 모두를 긁어모아서 샀죠. 차를 사고 나니 수중에 전 재산이 20만원인가 밖에 없더라고요. 대출을 할까도 고민했지만 이자와 이래저래 비교하니 현금으로 사는 게 속이 편하겠더라고요. 구입해서 첫 일을 하고 장비료로 20만원을 받았는데 지금도 그대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독립해서는 삼진크레인 사장님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도움을 받고 있고요.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남 지갑 열기가 쉽지 않다’는 어른들 말씀이 백번 지당 하더군요. 현장에서 일하다보면 성질도 많이 나죠. 그래도 어떻게 하겠습니까? 싸우고 싶어도 자제하고 조심하고, 열심히 일해야지요. 저를 많이 도와 준 사람들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작업할 때는 조심 또 조심, 항상 안전에 만전을 기해
일거리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와 장부를 비교해보니까 월 6~70만원 정도가 차이가 납니다. 기름 값은 오르고 장비 임대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고요. 일거리가 줄어 강원도 수해복구지역으로 갈려고도 했습니다만 여기서 조금 덜 벌고 아껴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주로 하는 일이 물건을 들고 운반하는 일이다 보니 작업현장에서는 상당히 주의를 요합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사고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사고에 대해서는 각별히 신경을 더 써야하고 항상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합니다. 생각하기도 싫습니다만 한 번이라도 사고가 나는 날에는 이 일을 그만두어야 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할거고요. 작업현장에 갈 때면 항상 기도하는 심정입니다.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게 해 달라고요.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이렇다보니 보험료도 상당히 비싼 편입니다. 또 크레인을 작동하기 위해서는 항상 차의 시동을 걸어 놓아야 하기 때문에 기름 값도 한 달 평균 1백2~30만원 들고요. 그리고 신규 번호가 제한에 묶여 차량번호를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차는 제 차이지만 번호를 소유한 회사에 지입료를 주면 그쪽에서 차량에 대한 관리를 해주지만, 운임료의 일정부분을 떼어 줘야 하기 때문에 때론 1~2만원 때문에 옥신각신 하기도 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장비대가 비싸니까 돈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질적으로 따져보면 크게 돈이 안 됩니다.  

  
언제든 출동(?) 준비해야 하는 ‘5분 대기조’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일을 나가다보니 ‘5분 대기조’죠. 건설회사의 건축자재 운반이 제일 많지만, 콘테이너, 간판, 선팅 등 거의 모든 일에 이용됩니다. 드라마 촬영장에서도 일을 해봤는데 몇 시간 기다리다가 잠깐 찍고 또 기다리고 하여간 별일을 다해봤습니다. 
 

장비대를 떼인 경우도 제법 됩니다. ‘내일 줄테니 기다려라. 또 기다려라’는 얘기만 되풀이 되다보면 몇 달이 지나가기도 하고요. 아예 전화번호도 바꾸는 사람도 있고요. 이래저래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기분이 영 그렇죠. 못주겠다고 하면 포기하겠는데, 새벽밥 먹고 일해 주는데 임금을 못 받으면 허탈하죠.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질질 끌죠. 이제는 못 받으면 봉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울진에도 크레인 차량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일을 했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작업현장에 가면 그냥 열심히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입소문으로 소개받아서 연락 오는 경우도 제법 되고요.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일을 요청한 사람들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이 일을 통해 한 가정을 꾸려 나가야 되니까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즐겁게 생각합니다. 주위에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남의 등 안치고 주어진 대로 만족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한편으론 지금 하는 이 일을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할 것입니다.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무엇을 해야 되겠다고 구체적으로 정해 놓지는 않았지만 농사를 짓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소도 키우면서요. 지금 끌고 다니는 차도 기사 생활하면서 번 돈으로 소를 사고 키워서 그 소를 팔아서 구입했거든요. 움직일 수 있는 이상 놀면 안 되잖아요. 나태해지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되지요. 
 

몇 년 전에 시쳇말로 아껴서 살아보자고 마음먹고 그랬던 적이 있는데, 젊은 놈이 너무 그런다고 손가락질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일한 만큼 벌고 적절한 선에서 맞춥니다. 탐이 난다고 해서 가지지 않고요. 울진에서 생활하면서 음으로 양으로 남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런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그렇게 풍족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수년째 계속해서 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그런 마음과 성의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봤으면 하고 마음먹지만 실천이 좀처럼 되지 않더군요. 울진 구석구석을 거의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만 정말로 어렵고 딱하게 사시는 노인분들이 계시더군요. 자식들한테 버림받아 홀로 지내시고요. 손길이 필요한 분들이죠.
  
황금돼지해다. 붉은 돼지해다.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요란을 떨었던 정해년도 절반이 남고 절반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형이 돼버렸다. 지리한 장마의 한가운데서도 어떤 이는 짜증을 어떤 이는 낭만(?)을 가지며 지낸다. 자성(自省)하며 다시 신발 끈을 동여 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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