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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방문 판매원 '임순옥씨가 살아온 이야기

  • 이명동기자 기자
  • 입력 2007.07.25 15:02
  • 글자크기설정

 화장품 방문 판매원 임순옥씨

 

화장품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길다. 
화장품과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고대 이집트의 유물을 통해 화장품이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보편화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당시에는 공작석(孔雀石) 가루로 눈가에 테를 그려서 눈 화장을 했고, 눈썹을 그리는 먹과 입술과 볼에 바르는 연지가 사용됐고, 천연 식물성 염색제인 ‘헤나(Henna)’를 사용하여 오렌지색으로 손톱에 매니큐어까지 했음을 발견된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화장품과 화장법은 지중해 연안 국가인 그리스 등으로 전해졌는데, BC 5세기의 ‘아리스토파네스’와 ‘크세노폰’ 등은 여성들의 화장품과 화장법을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겨두기까지 했다.
 

중세와 근세를 거치면서 조금씩 발전하던 화장품 산업은 1890년 튜브 개발과, 모발에 웨이브를 만들어주는 화학약품의 발견, 1930년에 발명된 샴푸 및 곱슬머리로 만들어주는 콜드파마 등의 발전에 힘입으면서 급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의 화장품의 역사 또한 아주 길다. 관련 전문가들은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쑥과 마늘을 미백제로 파악하고 있고, 한반도에 거주하던 말갈인들이 하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오줌으로 세수를 했던 점과 돼지기름을 피부에 발라 추위와 동상을 예방했던 풍습 등을 화장의 역사로 간주하고 있다.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에는 현대의 향수 역할을 했던 향의 사용과 목욕이 대중화되었고, 평안남도 용강군의 쌍용총 벽화에 그려져 있는 귀족부인과 시녀들의 뺨에는 볼연지가 나타난다.
 

이런 자료를 근거로 학계의 전문가들은 이미 당시부터 동백이나 아주까리기름으로 머리를 손질하거나 팥, 녹두 등의 곡식가루를 빻아 비누처럼 사용했고, 분꽃씨 가루나 조개껍질을 태워서 빻은 가루를 분으로 사용했으며, 잇꽃의 즙으로 만든 연지를 볼과 입술에 발랐다고 말한다.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화장품과 화장기술은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고, 조선 선조 때는 화장수인 ‘조의로’가 만들어지고,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겨울에 얼굴이 갈라지고 입술이 터지는데 계란 세 개를 술에 담가 봉하여 한달간 두었다가 얼굴에 바르면 트지 않고 옥같이 된다”는 등의 미용법이 실려 있다. 

‘규합총서’에는 이밖에도 갖가지 모양의 두발 형태와 입술연지 그리는 방법, 눈썹 그리는 방법 등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국가에서는 향을 제조하는 ‘향장’과 분을 제조하는 ‘분장’이라는 기구를 두고 전문적으로 화장품을 만들기까지 했다.
개화기에 들어서며 각종 문호가 개방되었고, 화장품 또한 일본과 유럽등지에서 수입되어 들어온 크림, 백분, 비누, 향수 등이 큰 인기를 끌었고, 1916년 박승식이라는 사람이 ‘박가분’을 만들어내게 된다.
 

1922년 제조허가를 받아 우리나라에서 관허 1호 화장품이 된 ‘박가분’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납 성분에 따른 화장독과 같은 부작용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키며 1937년 자진폐업하게 된다.
 

어쨌든 당시에는 ‘박가분’을 시작으로 ‘서가분’, ‘정가분’, ‘서울분’, ‘설화분’ 등 각종 분 종류와 유액, 머릿기름, 크림 등의 화장품이 신식기술로 제조되어 일반인들에게 시판되었고, 때를 같이하여 머리 또한 파마를 선호하게 됐으며, 뾰족구두에 양산을 받쳐 든 신여성 차림이 등장하게 된다.
 

남성들 또한 점점 외모와 화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상투가 사라지고 모발을 정돈하는 포마드가 사용되었다.
광복과 6.25를 거치면서부터는 정식 수입되거나 밀수된 화장품이 넘쳐나게 되고, 1960년대 들어서서 국내에서도 화장품이 본격적으로 생산된다.
 

화장품의 생산 활동에 따라 1964년 태평양 아모레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된 방문 판매 활동 또한 1980년대 중반 종합 화장품 코너가 전국적인 양상으로 급작스럽게 증설되기 이전까지 국내 화장품 유통의 주요 경로로 자리 잡게 된다.
 

화장품의 방문 판매원의 역사는 조선시대 숙종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숙종 때 이미 화장품 방문 판매원인 ‘매분구(賣粉嫗)’가 생겨났고, ‘매분구’들은 그 당시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의 여성들이 손쉽게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70년대 아모레 방문 판매 사원 연수 여행 중 기념촬영

 

원남 초산에서 태어나…미용사에서 화장품 방판사원으로

죽변면에서 40년 가까이 화장품 방문 판매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순옥(70세)씨는 원남면 오산리 ‘초산’에서 임성한씨의 3남3녀 가운데 셋째 딸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 한명과 언니 두명이 있고, 아래로 남동생 두명이 있다.
 

임씨는 덕신초등학교를 거쳐 매화중학교 4회로 졸업했다. 매화중학교를 졸업한 임씨는 미용학원을 다니면서 미용기술을 익혔다.
“어릴 때 몸이 하도 약해서 아버지께서 국민학교에 늦게 입학시켰어요. 출생신고도 늦게 되어 있고, 스무살이 되어서야 매화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에는 젊은 아가씨들에게 미용기술이 인기를 끌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춘천미용학원에서 미용기술을 익혔어요. 미용을 배우고 난 다음 직접 미용실을 차려서 장사는 하지 않고 ‘야매’로 한 사오년 정도 미용 일을 했지요.”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안면을 통해 미용 일을 하던 임씨는 사오년 만에 미용 일을 그만두게 된다. 임순옥씨는 당시에 미용 일을 하면서 맡을 수밖에 없는 약품 냄새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스물여섯살에 장정만씨를 만나 결혼
미용 일을 그만둔 임씨는 스물여섯살에 같은 마을에 살던 장정만(72세)씨를 만나 결혼한다.
“친구가 남편을 소개해 줘서 사귀다가 결혼했는데 중매 반, 연애 반이었던 셈이지요. 시아버님이 당시 어업조합(현 수협)의 이사로 근무했고, 남편도 수협에 근무했어요. 결혼 후에 오산에서 몇 개월 동안 신혼살림을 하다가 죽변으로 들어왔습니다. 남편이 수협에 근무하다 보니까 이리저리 근무처를 따라 자주 옮겨 다녔지요. 주로 죽변과 오산을 번갈아 옮겨 다녔어요.”
 

결혼하여 남편 직장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임씨는 오산에서 알고 지내던 화장품 방문 판매원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화장품 방문 판매원으로 첫발을 디딘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났을 때 오산리와 초산 등 원남면과 근남면의 일부 해안마을을 담당하고 있던 아는 아주머니가 오산, 초산 쪽을 담당할 아모레 화장품 판매원으로 나를 소개해 주었어요. 그때가 30대 초반이었지요. 그때부터 70이 된 지금까지 아모레 화장품만 판매해 왔습니다. 벌써 40년이 다 되었네요.”
 
크림 1통 350원, 쌀 1되 100원…화장품 값은 곡식으로

아모레 화장품 방문 판매원으로 입사한 임순옥씨는 오산리 일원의 망양, 덕신, 초산, 무릉, 진복등지를 담당구역으로 배정받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서 화장품을 판매했다.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다 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 다녔어요. 처음에는 주로 친정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팔았지요. 아는 사람들에게 한 개 두 개 화장품을 파는 걸로 처음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점점 아는 집도 찾아가고 모르는 집도 찾아가고 그렇게 하나둘 자리를 잡아 갔지요. 참 열심히 다녔습니다. 진복이나 동정 쪽으로 판매를 나갈 때면 대부분 돌 틈으로 나있는 좁을 길을 따라 커다란 화장품 가방을 머리에 이고 힘들게 다녔어요. 때로 어떤 집을 방문했다가 주인이 없으면 일터에서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기다리기도 하고, 제품을 팔 때까지 같은 집을 대여섯 번씩 방문하기도 하면서요.”
 

그 당시 대부분의 장사가 그랬듯이 제품을 팔고 나면 현찰보다는 주로 쌀, 보리 등 곡식류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화장품을 팔게 되면 돈보다는 주로 곡식을 받았어요. 대형 화장품 가방을 손에 들고 머리에 이고를 번갈아하면서 십리 이십리 떨어진 곳을 찾아다녀 제품 몇 가지를 팔고 나면, 하나 가득 곡식자루를 힘들게 이고 집에 돌아오기가 다반사였지요.”
 

임씨는 당시에 아모레에서 출시되던 화장품 종류는 ‘타미나’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화장품 회사도 별로 없었고, 또 종류도 많지 않을 때였는데 아모레 타미나의 인기가 대단했어요. 타미나 화장품은 ‘당신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타미나 화장품’이라는 광고 문구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지요.”
 

임순옥씨는 그 당시 타미나 크림 1통 가격이 35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쌀 한되 가격이 100원이고, 좁쌀 한되 가격이 6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350원이라는 화장품 가격은 당시로서도 상당히 고가였던 셈이다. 

“그때 판매되던 타미나라는 상표를 달고 아모레에서는 로션, 스킨, 화운데이션, 영양크림 등이 시판되었는데 크림 한통 값이 350원 했어요. 고객들에게 크림 한통만 팔더라도 현찰 대신 쌀로 받으면 3되가 넘는 양인데, 화장품이 많이 팔리는 날이면 쌀이며 보리쌀, 좁쌀을 보따리 가득 싸서 머리에 이고 하루 종일 걸어 다녀야 했으니 그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집이 대부분인 가정에서는 화장품 고객이 주로 새댁들이었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은 화장이 어색하기도 하고 값도 비싸다고 생각하니까 고객은 주로 새댁으로 불리는 며느리들이었어요. 땡볕아래서 농사일을 하다 보니까 얼굴이 그을리고 피부도 까칠해진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들의 눈치를 봐가며 화장품을 사고 쌀을 퍼주고는 했지요. 남들보다 별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들은 시어머니 몰래 인근의 아는 집에 화장품을 맡겨 두라고도 부탁하고...... 지금이야 도리어 젊은 애가 가꾸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며 직접 화장품을 구입하여 며느리에게 건네주는 시어머니들도 계시지만 그때는 대부분 그저 무섭기만 했던 시어머니들이었지요.”  
 
죽변면으로 이사…단골고객만 400여명 확보

 
30여년 임씨는 자전거를 이용하여 방판 활동을 해 왔다
원남면 해안 인근 마을을 담당하면서 아모레 방문 판매원으로 일하던 임씨는 3~4년이 지난 다음 남편의 직장을 따라 죽변면으로 자리를 옮긴다.
“오산에서 죽변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도 맡은 구역이 오산쪽이다보니 몇 개월 동안은 버스를 타고 오산 쪽으로 다니며 화장품을 계속 팔았어요. 지금이야 화장품 케이스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유리용기였으니 얼마나 무거워요? 또 가방을 이고 들고 다니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쉽게 깨어지고...... 버스를 타고 오산방면으로 가서 유리병에 담긴 화장품을 가방 가득 짊어지고 이 동네 저 동네로 열심히 쫓아 다녔어요.”
 

몇 달간 죽변면에서 원남면 오산 방면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며 화장품을 판매하던 임씨는 죽변면의 1리, 3리, 5리를 담당구역으로 배정받으면서 새로운 단골 고객을 확보해 나가기 시작한다.
“죽변에 들어왔는데 막상 아는 사람들이 있어야지요. 정작 내가 사는 죽변 4리는 이미 다른 동료 판매 사원의 구역이 되어 있었고...... 단골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아는 집이든 모르는 집이든 무작정 방문할 수밖에 없었지요. 80년대 초반에 울진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될 당시 죽변 5리에 소재해있던 동아사택 주부들을 대상으로 화장품을 판매해서 꽤 많은 이윤을 낼 수 있었어요. 몇 년 동안 알차게 재미를 봤지요. 남편의 직장을 따라 도시에서 울진으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시골 여성들과는 달리 경제적 여유도 있고, 멋도 알고,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에도 훨씬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아모레 화장품 방문 판매 사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때가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생각됩니다. 단골들의 고객카드만 400여명 됐으니까요. 죽변은 원남 해안 마을하고는 또 달라서 죽변면으로 들어와서는 물건 값으로 곡식이 아니라 대부분 현금을 받았어요.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달리 그나마 많이 편해진 거지요.”
 

죽변면으로 들어와서 화장품을 방문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임순옥씨는 자전거 타는 방법을 익혔다.
“무거운 화장품 가방을 들고 걸어 다니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서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웠습니다. 고객들의 가정을 방문할 때 훨씬 수월해졌어요. 언젠가 주위에서 자전거보다 기동력이 뛰어난 오토바이를 배워보라고 권해서 오토바이를 배우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 배우던 날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미처 브레이크를 못 잡고 휙하고 돌면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난 다음에는 너무 겁이 나서 두 번 다시 오토바이를 배워보려는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자전거를 이용하여 죽변 시내를 돌면서 단골 고객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화장품을 판매하면서부터 앞쪽에 짐을 싣는 바구니가 달린 여성용 자전거는 임씨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했다.
 
전업과 겸업 유혹에도 오로지 화장품 방판 한가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화장품 방문 판매 사원들은 특약점이나 대리점에서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와서 고객들에게 판매한 후 월말을 기해 한꺼번에 특약점에 결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모레 화장품 특약점은 울진읍내 1군데밖에 없어요. 고객이 원하는 물건이나 신제품을 우선 외상으로 들고 오는데 팔고 나서 월말이 되면 결제합니다. 40년 가까이 아모레 방문판매 사원으로 지내는 동안 울진군의 아모레 특약점 사장도 세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아모레 방문 판매 사원으로 처음 입사할 당시에는 울진 특약점에 10여명이 근무했었는데 참 오랫동안 한우물만 판 것 같네요.”
 

요즘 화장품 메이커 방문 판매사원들은 대부분 별도의 미용사원(피부관리사)을 대동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기본적인 마사지 기술을 익히거나 하지만, 4~5년 전만 하더라도 방문 판매사원들은 고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얼굴을 간단하게 마사지해주는 미용사원들과 함께 다녔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여사원을 별도로 채용하여 본사 차원에서 간단한 미용관리 교육을 시킨 다음에 판매사원들과 함께 다니게 했지요. 아모레 울진 특약점에는 서너명 정도의 미용사원이 있었는데, 방문 판매원 수가 훨씬 많다 보니까 자기 순서를 기다려서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미용사원들과 함께 단골 고객을 방문하여 얼굴을 마사지해주고는 했어요. 물론 그런 서비스가 화장품을 판매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지요. 얼굴 마사지만 받고 화장품을 사지 않으면 미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니까 간단한 종류의 립스틱 한 개라도 구입해 주고는 했어요.”
 

죽변면으로 들어와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단골 고객도 많이 확보하고 명실 공히 화장품 판매사원으로 부동의 위치를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임씨 또한 여느 사람들과 같이 업종전환에 대한 유혹을 한동안 받았었다고 전해준다.
“화장품 판매사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주위의 친분 있는 분들이 안면이 넓으니까 보험설계사를 겸해서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또 한때는 메이커 이부자리 가게를 겸해보라는 얘기도 듣고, 하여튼 이런 저런 직업과 겸해 보던지 아니면 아예 업종을 전환해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가끔은 기회일수도 있겠다 싶은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저는 그냥 미련 없이 아모레 화장품 방문 판매사원으로 남았습니다. 오로지 한가지 일에만 매달려 온 거지요. 주위의 다른 분들은 이 직업 저 직업 여러 차례 바꾸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저는 타고난 성격이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고 싶은 뭐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2년전 방문 판매 사원 그만 두고 소수의 단골고객만 상대

거의 평생이다시피 화장품 방문 판매사원이라는 한가지 직업에만 충실해온 임순옥씨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후회요...? 그런 거 없습니다. 수협에 근무하던 남편 월급으로 네명의 자식들을 외지에 보내 대학공부까지 시키기에는 항상 빠듯하기만 했으니까요. 그나마 저라도 화장품 판매사원으로 활동하면서 버는 돈을 가정생활에 보탰으니까 자식들 모두 대학공부까지 마치게 한 거 아니겠어요? 언젠가 아이들이 말했어요. 그래도 엄마가 맞벌이를 했으니까 우리들 4남매 모두 다 대학까지 나와서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일부분 힘들고 고단한 점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후회는 없습니다.”

 
임순옥, 장정만씨 부부와 네 자녀

 

임순옥씨는 남편 장정만씨와의 사이에 위로 딸 셋과 아래로 아들 하나를 두었다.
큰딸 은희(44세)씨는 대구시 롯데백화점에 근무하고 있고, 둘째딸 은주(42세)씨는 대전시에서 전업주부로, 셋째딸 은정(40세)씨는 광주시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아들 현우(37세)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일평생 천직이라 여기며 아모레 화장품 방문 판매사원으로 근무하던 임씨는 2년 전쯤 몸이 좋지 않아서 큰 수술을 한 후부터는 아모레 울진 특약점 판매사원을 그만두고, 그동안 쌓아둔 신뢰를 바탕으로 단골손님들이 주문한 화장품만 특약점과 연결해 주면서 소일하고 있다.
 

“지난 2000년에 대장암 수술을 했어요. 수술 결과가 좋았는데 2005년에 황달이 심하게 와서 한번 더 큰 수술을 했습니다. 그때 수술시간만 13시간이 걸렸는데, 그게 힘에 겨웠던지 후유증이 남았어요. 그래서 아모레 판매사원을 그만 두었어요. 그래도 잊지 않고 화장품을 주문하는 단골 고객들이 있으니, 이제는 한번씩 울진 특약점에 나가서 물건을 받아 전해주기만 합니다. 또 건강하던 남편도 작년 9월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병원신세를 지다가 한 달 전에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안에서 남편이 운동하는 거 조금씩 거들어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지요.”

 

조선 시대 숙종 때의 화장품 판매원이던 ‘매분구(賣粉嫗)’의 존재는 별도로 치더라도 국내에서 화장품 방문 판매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64년 이후부터 화장품 방문 판매원은 6.25 전쟁을 겪은 전후 미망인들과 가정주부들에게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고, 그것은 곧 가정의 소득증대 기여로 연결됐다.
 

애초 미용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화장품 방문 판매사원들은 1990년대 들어서며 화장품 유통시장이 획기적으로 개방되고 각종 화장품 할인판매장이 인기를 끌면서 잠시 위기를 맞이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방문판매만이 가지는 장점으로 인해 그 생명력이 계속 유지되었다.
 

화장품 방문 판매의 장점은 소비자가 직접 시장이나 상가를 찾아가서 화장품을 고르고 구입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한편, 일정기간 본사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판매사원으로부터 다양한 화장품 종류의 기능과 효능 등을 자세하게 안내받을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가지다.
 

예나 지금이나 화장품 판매원은 단순한 장사꾼에 그치지 않고 고객들의 미용에 관한 맞춤식 카운슬러라는 고유의 역할은 물론, 때로는 고객들의 개인적인 건강과 일상사까지도 챙겨주는 다정한 이웃이요, 각각의 동네에서 파생되는 최신뉴스를 전달하는 소식통이기도 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각종 제품과 샘플이 잔뜩 든 초록색 대형 가방을 끌고 다니던 화장품 방문 판매사원들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작은 가방에 기초 샘플 제품과 색조 샘플 몇 가지를 챙겨 넣고, 손에는 개인휴대단말기인 PDA를 하나씩 든 모습으로 변모했다.
단골 고객의 화장품 제품 구매 이력과 제품 결제 여부, 개인적인 피부 타입, 전화번호 등의 개인 신상정보가 가득 담긴 첨단 디지털 기기와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채 새롭게 변신한 화장품 방문판매 아줌마 군단이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양적일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훨씬 풍부해진 인적자원으로 구성된 방판요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하게 늘어나는 가운데, 경제력은 있지만 직장과 집안일 등으로 시간에 쫓겨 미처 쇼핑할 짬을 내지 못하는 직장여성들을 대상으로 화장품 방문판매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따라, 화장품 관련 업계는 새롭게 방문판매 사업 부서를 신설하거나 주력사업으로 선정하여 집중 투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0대 초반 젊은 시절에 아모레 화장품 방문 판매 사원으로 입사하여 40년 가까이 숱한 단골고객을 만들어내며 왕성하게 현장에서 활동했던 임순옥씨의 뒤를 따르는 일명 ‘화장품 아줌마’라는 별칭의 미용 카운슬러 방문판매사원들의 맹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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