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 간다 나는 간다, 여천비옥같이 살던 벗님 다 버리고 북망산천 나는 가네. 황토를 밥을 삼고 언덕을 비갤 삼아 북망산 띠집 짓고 영결종천 나는 간다. 여러 친지 벗님들요, 이내 나는 떠나가도 웃음을 꽃을 삼고 말을 벗을 삼고 연연히 잘 살아주소. 우리 자녀 아들딸들아, 간데 쪽쪽 말하거든 말속에 담겨 있고 앵도같은 그 입술이 웃음 웃건 꽃을 피우고 말없이 잘 살어다고. 잘 있거라, 잘 살아라, 부디부디 잘살아라, 처자식 일가친척 원근벗님 다 버리고 북망산천 갈려하니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너 꽃진다 서러마라 명년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이내 나는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리.」(2001년 울진문화원 발행 ‘울진민요와 규방가사’에서)
이 가락은 초상이 났을 때 죽은 자인 망자가 황천으로 떠나는 것을 달래기 위해 꽃상여를 메고 가면서 울진군 기성면 지역의 상여꾼들을 인솔하는 선소리꾼이 장단을 맞춰 부르던 소리다.
그런데 한마을 전체 주민들이 구성진 상여 소리 한가락에 함께 눈물을 쏟아내던 시절도 이제는 아득하게 먼 얘기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집안에 초상이 나면 인근에 위치한 장례식장을 이용하거나 장의사를 불러 편리하고 간소화된 형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그만큼 시골인 울진 지역에서도 더 이상 구슬픈 상여소리와 선소리꾼의 애간장 태우는 목소리, 요령소리도 사라졌고, 그에 따라 선소리를 전수받으려는 사람조차 없어져버린 실정이다.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해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해가는 만큼, 우리 선조들이 이웃의 슬픔과 아픔을 달래가며 상부상조하여 서로 돕던 아름다운 장례습속도 시대를 쫒아 많이 변해 버린 것이다.
이런 변모된 풍습은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농촌 지역에서 더 이상 상여를 맬 젊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과 함께, 상포계 등 상호부조의 명맥이 약해진 것에 기인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집안에 초상 등의 큰일이 생겼을 때 소요되는 비용과 인력을 서로 나누어 돕기 위한 상포계, 유친계, 초상계, 상여계 등 시골 마을의 자생적인 상호부조 조직도 사실상 거의 명맥이 끊어진 이 시대에, 지금으로부터 377년 전인 조선 인조 8년에 근남면 지역에서 결성된 상포계(喪布契) 문서인 수친계(壽親契) 원문이 공개되어 화제다.
근남면 행곡리에 거주하는 남호열(南鎬烈. 77세)씨가 소장하고 있는 ‘수친계첩(壽親契帖)’이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활동하던 만휴당(萬休堂) 임유후(任有後) 선생이 1628년 동생 지후(之後)가 저질렀던 역모사건으로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울진 행곡리로 낙향하여 20년 동안 은거할 무렵에 조직된 상포계 문서로써, 계(契)의 구성 과정을 알 수 있는 서문과 계약(契約) 전문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수친계’의 서문을 쓴 임유후선생은 “지역 사람들이 모두 효제(孝悌)하는 사람들이지만, 선생장자(先生長者)들이 계(契)를 만든 규약이 없어서 상(喪)을 당하면 천박한 풍속에 옮아가고 부모상을 당한 슬픔이 마음은 있지만 인순(因循)하고 구차하여 예(禮)에 부족 됨이 오래라는 주군(朱君) 형(炯)의 말에 따라 수친계(壽親契)를 만들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어버이를 위해 관목(棺木)을 구하는 사람이라서, 마침 나무 좋은 이곳에 왔으니 너무 사치하다는 말을 들을 각오를 하고 장차 상포계를 주선하여 자식(子息)의 직분을 다하는 규약으로 만들려 한다”고 말하고 있다.
수친계(壽親契) 원문에 따르면 서문(序文)은 숭정삼년경오(崇禎三年庚午, 인조 팔년-서기 1630년) 구월이십삼일에 쓰였고, ‘계약(契約)’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무자삼월십육일(戊子三月十六日, 인조26년-서기 1648년)에 쓰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수친계(壽親契) 번역문
[이 글은 1995년 1월 ‘풍천임씨목사공파종중(?川任氏牧使公派宗中)’에서 발행한「만휴당집(萬休堂集)」의 편집인으로 참여했던 전 울진문화원장 남종순(南宗淳)씨의 번역문이다] - 편집자 주
효자가 그 어버이에게 산이나 천지같이 만수무강하기를 끝없이 기원하지만 또한 반드시 일조(一朝)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니, 그 송종의 예(送終의 禮-마지막 보내는 예)에 마땅히 미리 익혀 그 효도를 극진히 할 것이다.
이러므로 사장이례(死葬以禮-사망과 장사에 예로써 함)는 공자의 보(?)훈이요, 상고자진(喪固自盡-상사에 스스로 극진히 함)은 맹자의 지론이니 자식의 직분이 이에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울진에 와서 종유(從遊)하는 자가 오륙 인인데 같이 언론(言論)하고 같이 시를 읊어 막역한 사이니 참으로 딴 곳에서 얻기 어려운 새로운 벗들이다.
어느 날 주군(朱君) 형(炯)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사람됨이 단아하고 순수하여 내 가상히 여겨 묻기를, 자네 고을 사람들을 살펴보니 황벽(荒僻-먼 두메)한 곳에 살면서 예의를 준수하여 봉영지제(逢迎之際-만나고 맞는 때)에 예도(禮度)가 있고 진퇴지문(進退之問-나아가고 물러나는 사이)에 몸가짐이 한아(閒雅-한가롭고 아담함)하니 내가 보기에는 다 제집에서 효제(孝悌)하는 사람들이라, 마땅히 사친(事親)의 도에 또한 마음을 다함을 짐작하겠다.
대개 군자의 예가 넷이 있으나 그 중에 상례(喪禮)가 더욱 중대한 일이니 진실로 숙강(熟講-많이 익힘)하여 대비하지 않으면 황미곡벽(荒迷哭?-상고를 당하여 슬퍼서 경황이 없는 상태)한 중에 예도를 잃지 않기가 쉽지 않으니, 비록 큰 도시나 넓은 고을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자네의 고을 같은 데야 더 말할 것 있겠는가?
나는 이 고을 사람들이 주자의 예를 따라서 각기 제 스스로 마련하여 처리하는지, 아니면 여러 사람이 계를 만들어 서로 갑자기 닥친 일을 도와주는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주군(朱君)이 축연(불안한 모양)히 대답하기를 우리 고을의 박실하고 촌스러움은 당신도 목도한 바라 고루하고 빈천하여 자신은 넉넉하지 못해도 아침저녁 부모를 봉양하는 데는 약간의 구구지락(??之樂-말이 공손함)이 있고, 풍수종신지통(風樹終身之慟-부모상을 당한 슬픔)에 슬픈 마음은 펴지만 인순(因循)하고 구차하여 예(禮)에 부족 됨이 오래이니 슬프다.
사람이 누구나 그 어버이를 위하여 인색하겠는 가만은 도성(都城)이 멀리 떨어져서 집에서 스스로 예에 어긋나지 않게 하기는 어렵고 궁향벽지(窮鄕僻地)라, 또한 선생장자(先生長者)들이 계(契)를 만든 규약도 없어서 상을 당하면 천박한 풍속에 옮아가고 망극지통(罔極之痛-부모상을 당한 끝없는 슬픔)에 한(恨)만을 품는지라, 원양(原壤-부모상에 장단 치며 노래하던 무례한 공자 때의 사람)에 비하면 거리가 멀지만 예문에 기준하면 부끄러워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지경이니 어찌 마음에 흡족하도록 어버이를 섬겼다고 하겠는가?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효성스럽다 자네의 말이여, 주문공(朱文公)의 예제(禮制)를 닦아서 자네의 고을 풍속을 변화시킬 사람은 반드시 자네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나도 또한 어버이를 위해 관목(棺木)을 구하는 사람이라, 그런데 태백산(太白山) 나무가 가장 좋고 마침 내가 나무 좋은 이곳에 왔으니 너무 사치하다는 협의(자기 분수에 지나치게 사치하다는 혐오감)를 입을 각오를 하고 장차 주선하려 하지만 이러한 큰일 하기에는 내 힘이 너무 미약하니 자네가 앞으로 나를 위하여 힘써 주겠는가? 나도 또한 자식(子息)의 직분을 다하는 규약으로서 지휘할 것이다 하니, 주군(朱君)이 그 방법을 묻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계(契)를 만들어서 신실(信實)하고 자금(資金)을 모아 늘리면 그 일이 가능할 것이다.
자산(資産)을 늘리고 이를 추구함은 현사(賢士)들이 수치스럽게 여기는 바이나 자신의 창자를 채우고 처자를 양육하는데도 오히려 힘을 기울여 서두는데 하물며 어버이를 위한 대접 에랴!
그러나 이러한 일은 나와 자네 둘만이 할 일이 아니라 이 소문을 듣고 호응할 분들이 반드시 많을 것이다 하였더니, 조금 지나자 남윤[南?, 자 명숙(字 明叔)], 전유추[田有秋, 성보(成甫)], 장민력[張旻?, 휘집(輝集)], 전선[田銑, 사윤(士潤)], 윤시형[尹時衡, 평중(平仲)]이 다함께 모여서 술자리를 베풀고 계(契)를 의논해서 제도를 정하고 약속을 닦은 뒤에 책 오른쪽에 차례로 성명(姓名)을 기록하고 약속이 끝남에 다 나에게 서문(序文)을 위촉하다.
숭정삼년경오(崇禎三年庚午) 인조 팔년(서기 1630년), 구월이십삼일 임유후 저(任有後 著).
▷▷ 계약(契約) ◁◁
1.초상집에 복건(幅巾), 대대(大帶), 명모(暝帽), 악수(握手), 명정(銘旌), 사리(絲履), 구의(柩衣), 금욕(錦褥)을 함께 갖추어 주되 선명(鮮明)하고 고운 것을 힘쓸 것.
1.관재(棺材)는 유사(有司)가 친히 가서 살펴보고 품질 좋은 것을 산 후에 각기 인마(人馬)를 내어 단양읍내(丹陽邑內)에 운송(運送)할 것.
1.해마다 유사(有司) 이인(二人)을 두어 베와 곡물(穀物)을 윤번제(輪番制)로 분장(分掌)할 것.
1.각기 목이필(木二疋)과 조이석(租二石)을 내어 유사(有司)집에 보내면 유사가 받아서 명년동말(明年冬末)에 목(木)은 그 본수(本數)를 세고 곡물(穀物)은 변리(邊利)해서 후임(後任) 유사(有司)에게 인계할 것.
1.유사(有司)가 태만하여 그 수량(數量)을 축(縮)이 나게 했으면 신유사(新有司)가 각위(各位)에게 통문(通文)하여 한곳에 다 모여 그 종에게 태(苔-매)를 삼십대 때려서 빨리 포흠(逋欠-아직 낼 것을 내지 않은 것)을 징수하도록 벌(罰)해 보일 것.
1.아직은 단상(單喪)만 주고 포(布)와 곡(穀)이 몇 해간 붙은 뒤에는 혹이상(或二喪) 삼상(三喪)은 다시 의논할 것.
1.명년(明年)부터 변리하여 재물을 거두어들인 후에 관재(棺材) 및 초상일구(初喪一具)는 먼저 조치해 갖출 것. 조비(措備-갖추어 놓다).
1.매년 수식후(收殖後) 초상(初喪)에 일구식(一具式) 조비(措備)했으면 포곡(布穀)은 사채례(私債例)에 의하고 수식사십오년(收殖四十五年) 후에는 초상(初喪)에 이구식(二具式) 또 조비(措備)할 것.
1.상가(喪家)에서 스스로 초상(初喪)의 모든 것을 갖추고 포곡(布穀) 받기를 원하는 자에겐 그 할당량을 헤아려서 곧바로 지급할 것.
1.이미 출물후(出物後)에 혹시 자퇴(自退)하고자 하거나 혹 맡은 바를 태만히 하여 계약(契約)을 준수(遵守)치 않는 자는 제적(除籍)하고 자기포곡(自己布穀)도 내주지 말 것.
1.동약지인(同約之人)이 혹 그 어버이나 자신의 병(病)이 났으면 자주 문병하고, 모든 급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서로 구제할 것.
1.계중(契中)에 상이 났으면 유사(有司)가 즉시 각위(各位)에 부고(訃告)를 정하고 각위가 함께 모여 호상(護喪)하여 각(各) 목일필(木一疋)을 내어 부조(賻助)하고 발인(發引)과 영장시(永葬時)에도 또한 힘을 다해 서로 돌아볼 것.
1.동계지인(同契之人)이 매년 생일(生日)에는 각위(各位)를 본가(本家)에 초청하여 형제의 의(義)를 펴고 주과(酒果)는 검소하게 하여서 본을 보이고 폐단을 끼치지 않게 할 것이고, 계원(契員)이 만약 공공연히 아는 부득이한 사고가 아닌데 혹 출타(出他)하거나 혹 병(病)을 칭탁(稱托)하여 불참(不參)한 자는 한번 연(宴) 베풀기를 벌(罰)로 정할 것.
무자삼월십육일(戊子三月十六日, 인조26년-서기 1648년) 입약(立約).
초상시(初喪時) 부조(賻助)는 목십필(木十疋), 포오필[布五疋, 사십척짜리(四十尺)], 청주일두(淸酒一斗) 비급사(備給事-넉넉하게 갖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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