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시와 기문, 편액(扁額) 게첩

  • 이명동기자 기자
  • 입력 2007.11.26 11:59
  • 글자크기설정

  • 망양정-망양정 시(望洋亭 詩), 월송정-월송정기(越松亭記) 각각 부착해

망양정 시('아계유고' 목판본)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선조 25년 임진란이 발발했을 당시 서수론(西狩論)을 주장한 일로 탄핵을 받아서 울진 평해에 부처(付處)되어 3년간 유배생활을 한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망양정(望洋亭) 시(詩)’와 ‘월송정기(越松亭記)’ 현판이 제작되어 망양정과 월송정에 각각 게첩 됐다.
 

이번 현판 게첩은 한산이씨(韓山李氏) 아계공파(鵝溪公派) 종회(宗會)에서 자신들의 선조인 아계 이산해가 지은 ‘망양정 시’와 ‘월송정기’를 현판으로 제작해서 각각의 정자에 게첩하고 싶다고 요청한데 따른 것으로써, 울진군은 울진문화원과의 수차례의 협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게첩을 승인했다.
 

울진군과 울진문화원 관계자는 망양정과 월송정은 내·외지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명소인 만큼 게첩될 현판과 관련하여 ‘글자체는 한문으로 할 것’, ‘글씨는 전문 서예가의 글씨로 할 것’, ‘현재 부착되어 있는 현판들과 어울리게 동일한 구조로 제작할 것’, ‘운각 등을 부착하지 않고 망양정 시는 가로 75×세로 55cm로 하고, 월송정기는 가로 170×세로 46cm 이내에 두께는 5cm로 할 것’, ‘색상은 검정 바탕에 흰색글씨로 할 것’, ‘게첩 위치는 망양정 시는 망양정 남쪽 중앙에 하고, 월송정기는 월송정 서쪽 우측에 할 것’ 등의 세세한 부가 조건을 한산이씨 아계공파 종회에 전달했고, 그 종중에서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는 현판을 제작해 와서 게첩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번에 게첩된 ‘망양정 시’는 이산해의 친필 글씨를 서각한 것으로써, 아계유고(鵝溪遺稿) 제1권 기성록(箕城錄) 시(詩)편에 실려 있고, ‘월송정기’는 아계유고 제3권 기성록 잡저(雜著)편에 실린 것이다.

월송정기('아계유고' 목판본)

 

아계 이산해는 임진란이 일어났을 당시 유성룡(柳成龍)과 함께 서수론(西狩論)을 주장하여 어가가 의주(義州)로 몽진(蒙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 일로 인해 개성(開城)에서 탄핵을 받아 파직됐고, 평양에 가서는 다시 탄핵을 받아 평해(平海)에 부처되었다.
 

당시 이산해의 나이는 54세였고, 평해에서의 유배생활 3년 동안 그는 아계유고에 실린 시 840수의 절반이 넘는 483수를 지었다.
 

이 기간 동안 쓰인 그의 작품은 문학적으로도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데, 허균(許筠)은 그의 작품을 두고 “초년에 당시(唐詩)를 배웠고, 만년에 평해로 귀양 가 있으면서 조예가 극도로 깊어졌다”고 평가했다.
 

아계 이산해는 3년이 지난 57세에 사면되어 정1품 관직인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로서, 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을 겸임하고 61세에 영의정에까지 올랐으나, 다시 탄핵을 받아 공직을 사퇴하고 이듬해에 충남 신창(新昌) 시전촌(枾田村)으로 내려가서 시문을 쓰는 것으로 소일하다가 71세로 일생을 마쳤다.

 

망양정(望洋亭) 시(詩) 해석 전문   

망양정에 게첩된 이산해의 망양정 시(望洋亭 詩)

바다를 낀 높은 정자 전망이 탁 트여 / 올라가 보면 가슴 속이 후련히 씻기지 / 긴 바람이 황혼의 달을 불어 올리면 / 황금 궁궐이 옥거울 속에 영롱하다네

 

월송정기(越松亭記) 해석 전문

 

월송정에 게첩된 이산해의 월송정기

월송정은 군청 소재지의 동쪽 6,7리 거리에 있다. 
그 이름은, 어떤 이는 “신선이 솔숲을 날아서 넘는다(飛仙越松)는 뜻을 취한 것이다”하고, 어떤 이는 “월(月)자를 월(越)자로 쓴 것으로 성음(聲音)이 같은 데서 생긴 착오이다”하니, 두 설(說)은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월(月)자를 버리고 월(越)자를 취한 것은 이 정자의 편액을 따른 것이다.
 

푸른 덮개 흰 비늘의 솔이 우뚝우뚝 높이 치솟아 해안을 둘렀고, 있는 것은 몇 만 그루나 되는지 모르는데, 그 빽빽함이 참빗과 같고 그 곧기가 먹줄과 같아, 고개를 젖히면 하늘에 해가 보이지 않고, 다만 보이느니 나무 아래 곱게 깔려있는 은부스러기 옥가루와 같은 모래뿐이다. 그리하여 까마귀나 솔개가 깃들지 못하고 개미나 땅강아지가 다니지 못하며, 온갖 풀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왕왕 진달래와 철쭉이 백사장 곁에 떨기를 이루고 자라지만 가지와 잎이 짧고 성글며 땅위로 나왔다 하면 이내 시들해지고 만다. 
 

그런데 때로 혹 밤이 깊고 인적이 끊기어 만뢰(萬?)가 모두 잠들 때면 신선이 학을 타고 생황을 부는 듯한 소리가 은은히 공중으로부터 내려오곤 하니, 이는 필시 몰래 이곳을 지키러 오는 귀신이나 이물(異物)이 있는 것일 터이다.
 

솔숲 동쪽에는 모래가 쌓여 이루어진 산이 둘 있는데, 위의 것을 상수정(上水亭)이라 하고 아래 것을 하수정(下水亭)이라 하니, 지그시 물을 누르는 형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자 아래에는 한줄기 물이 가로 흘러 바다 어귀와 통하며, 물을 사이로 동쪽에는 모래언덕이 휘감아 돌아 마치 멧부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언덕에는 모두 해당화와 동청초(冬靑草-겨우살이)뿐이며, 그 밖은 바다이다. 
 

솔숲 서쪽은 화오촌(花塢村)으로 민가가 근 수십 호이며, 솔숲 남쪽은 곧 만호포(萬戶浦)의 성루(城樓)로 누각이 분곡(粉鵠)과 마주하여 있다. 솔숲 북쪽에는 바위가 불쑥 솟아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 그 이름은 굴산(堀山)이다. 
 

이 고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신령하다고 믿어 무릇 구원을 바랄일이 있으면 반드시 여기에 빌곤 한다. 이 정자에, 매양 해풍이 불어오면 송뢰(松?)가 파도소리와 뒤섞여 마치 균천광악(勻天廣樂-천상의 음악)을 반공에서 번갈아 연주하는 듯,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털이 쭈뼛하고 정신이 상쾌하게 한다.
 

내가 일찍이 화오촌에 우거(寓居)하면서 기이한 경관을 실컷 차지하였다. 따스한 봄날 새들이 다투어 지저귈 때면 두건을 젖혀 쓴 채 지팡이를 끌면서 붉은 꽃 푸른 솔 사이를 배회하였고, 태양이 불덩이 같은 여름날 땀이 비 오듯 흐를 때면 솔에 기대어 한가로이 졸면서 울릉도 저편으로 정신이 노닐곤 하였다.   
 

그리고 서리가 차갑게 내려 솔방울이 어지러이 떨어지면 성긴 솔가지 그림자가 땅에 비치고 희미한 솔바람의 운율을 들을 수 있었으며, 대지가 온통 눈으로 덮이어 솔숲이 만 마리 흰빛 용으로 변하면 구불텅 얽힌 줄기 사이로 구슬 가지 옥잎이 은은히 어리었다. 
 

게다가 솔 비늘이 아침 비에 함초롬히 젖고 안개와 이내가 달밤에 가로 둘러 있는 경치로 말하자면, 비록 용면거사(龍眠居士)를 시켜 그리게 하더라도 어찌 만분의 일이나 방불할 수 있으리오.
 

아아, 이 정자가 세워진 이래로 이곳을 왕래한 길손이 그 얼마이며 이곳을 유람한 문사(文士)가 그 얼마였으랴, 그 중에는 기생을 끼고 가무를 즐기면서 술에 취했던 이들도 있고, 붓을 잡고 먹을 놀려 경물(景物)을 대하고 비장하게 시를 읊조리며 떠날 줄을 몰랐던 이들도 있을 것이며, 호산(湖山)의 즐거움에 자적했던 이들도 있고, 강호(江湖)의 근심에 애태웠던 이들도 있을 것이니, 즐거워한 이도 한둘이 아니요, 근심한 이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나 같은 자는 이들 중 어디에 속하는가. 왕래하고 유람하는 길손도 문사도 아니며, 바로 한 정자의 운연(雲烟)과 풍월(風月)을 독차지하여 주인이 된 자이다. 나를 주인으로 임명해 준 이는 누구인가. 하늘이며 조물주이다.   
 

천지간에 만물은 크든 작든 저마다 분수(分數)가 있어 생겼다 사라지고 찼다가 기우니, 이는 일월과 귀신도 면할 수가 없는 법인데, 하물며 산천이며, 하물며 식물이며, 하물며 사람일까 보냐. 이 정자가 서 있는 곳이 당초에는 못이었는지 골짜기였는지 바다였는지 물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거니와 종내에는 또 어떠한 곳이 될까. 
 

또한 솔을 심은 이는 누구며 솔을 기른 이는 누구며, 그리고 훗날 솔에 도끼를 댈 이는 누구일까. 아니면 솔이 도끼를 맞기 전에 이 일대의 모래언덕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인가. 내 작디작은 일신(一身)은 흡사 천지 사이의 하루살이요 창해에 떠 있는 좁쌀 한 톨 격이니, 이 정자를 좋아하고 아끼어 손이 되고 주인이 되는 날이 그 얼마일는지 알 수 없거니와, 정자의 시종과 성쇠는 마땅히 조물주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출처:1997년 민족문화추진회 발간, 「국역 아계유고」]

ⓒ 울진뉴스 & 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문의 054-781-6776)

추천뉴스

  • 금강송배 전국 유소년클럽 축구대회, 울진서 열전 돌입
  • 울진국유림관리소, 지자체와 더불어 하천·계곡 불법행위 합동 점검 실시
  • 제293회 울진군의회(임시회) 의사일정안
  • 울진군, 지방도917호선∙군도20호선 4차로 확장 추진
  • 왕피천공원서 펼쳐지는 '2026 야(夜) 울진' 호러 퍼레이드
  • 울진군 지역자원 창업의 기회로! ‘2026 울진군 창업아카데미’ 첫 문 열어
  • 2026년 찾아가는 어린이 구강보건교실 운영 !
  • 울진군, 울진군청년연합회와 소통 “순수한 열정으로 지역 활력 이끌어 달라”
  • 울진군 드림스타트, 여름방학 맞아 ‘가족 나들이’행사 실시
  • 울진군청소년수련관·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 함께 ON 문화여행’ 운영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시와 기문, 편액(扁額) 게첩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