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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가볍지 않은

  • 페인트 최 기자
  • 입력 2007.12.18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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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하늘밑에선 호우주의보라던데, 그날 여기는 깨어질 것 같이 맑고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마치 그림 같았습니다.
그 그림 같은 길을 따라 나는 엄마하고 양덕원 장에 갔습니다.
아버지 기일이 내일이라....
흘러버린 세월이 요상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 아버지 돌아가신지 벌써 이십 수년.

 

 

아들도 없는 집안의 큰딸이면서도 첫 기일 참석 후에 그동안 두 서너번의 참석 기억밖에 없으니,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그저 죄송한 마음만이 절로 들었습니다.

 

요즘 엄마와 가까운 거리에 살게 되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식구들과 같이 하게 되어 그나마 참 다행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겨울 같지 않게 폭신한 날, 그리하여 나는 우리 아버지 기일 상 차릴 준비를 하러 버스를 타고 장에 간 것입니다. 

 

세상에, 요렇게나 앙증맞은 장이라니.
과일전 하나, 생선전 하나, 젓갈 두부 묵전 하나, 신발전 하나 ,의류 잡화 야채 오뎅 호떡집... 하나... 그렇게 하나씩 알맞게 자리 잡아 작았지만 필요한 건 다 샀습니다.
우리에겐 늘 그게 중요한 것이죠.
늘어놓은 건 많은데 허벌나게 돌아 댕겨도 내가 필요한 게 없는 것 보다는.  

 

잡곡을 보석처럼 채워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 댓분이 골목 한 쪽에 줄지어 앉아계신 모습마저 한없이 작았지만 컸습니다. 

누가 함부로 그들 현실의 무게를 못났니 하면서 가벼이 보려 할 수가 있는지.
그들의 무게는 평생을 퍼주고도 남는 사랑을 가득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버스정류장에 이제 막 들어오는 버스를 타러 바삐 오니 표를 끊어야 탈 수 있다고 합니다.
모르면 배우고 표가 없으면 끊어야지, 길 건너 매표소에서 버스표를 끊어오니 이미 버스는 떠나버리고 우리는 정류소 의자에 앉아 다음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는 버스마다 나는 어디 가는데 이거 거기 가는 버스 맞소?
지팡이에 의지한 조금 굽은 허리로 앉았다, 일어났다 하시며 행선지를 확인하십니다.
족히 시간 반은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는 다른 노선의 버스 기사분 말에 “알았어 기다려야지”하며 의자에 앉으십니다. 

 

장을 보고 오시는지 옆에 앉게 된 할머니와 주거니 받거니 이바구하시는데, 주워들어보니 할아버지 연세는 아흔아홉.
아들 딸 분가해 나가 살고 할머니는 15년 전에 앞세우시고 혼자살고 계시다는데, 그 표정과 말 힘이 어찌나 건강하신지...
거기다가 아들딸 며느리 손자에게 용돈까지 주신답니다. 며느리 삼백,  딸 이백, 손자 백만원. 이런 식으로...
며느리도 반찬해서 자주 들르고, 그 손자들 자주 들려 할부지 용돈 자주 주고, 그러면 내가 쓸데가 어디 있어? 모아서 우리 손자며느리 용돈 묶어주고... 허허허.

 

이야기를 훔쳐 듣다보니 미소가 자꾸만 번집니다.   
할부지 연세가 백수가 다 되도록 눈, 귀, 저 웃음, 다 맑은 비결은 저렇게 욕심이 없는 마음이구나 생각할 즈음, 길 건너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느린 걸음으로 그 할부지께 오셔서는 형님 표 있어요? 합니다. 

 

있어. 어디요? 여기. 함 봐요. 여기 있어 하시며 지팡이를 꼭 잡았던 손을 펴 납작하게 접혀진 표를 보여줍니다.
아 끊으셨네, 나는 안 끊은 줄 알고... 그러면 돈으로 바꿔와야지. 

 

불편해서 속도감이 하나도 없는 발걸음으로 다시 길을 건너가십니다.
아름다워, 아름다워, 아름다워.
나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참말로 눈시울이 소주를 한잔 부어놓은 것처럼 불콰해집니다. 

 

공터 한 쪽에선 기호 몇 번을 기억하라는 음악과 율동이 귀 찢어지게 요란스러운 오후가  마음 없이 지나가고 있고,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가 저어기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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