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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최초, 효자(孝子)『정려 교지(旌閭 敎旨)』발견

  • 이명동기자 기자
  • 입력 2008.02.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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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자 전택오와 부인 김씨의 정려 교지 2점 발견돼

효자 전택오(田宅五) 효열각(孝烈閣) 안의 비석

효자 전택오(田宅五)의 효열각(孝烈閣)

고종 28년(1891)에 동몽교관(童蒙敎官-조선 시대 어린이를 교육하기 위해 각 군현에 두었던 벼슬)을 증(贈)하고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명한 효자 전택오(田宅五)의 정려 교지(旌閭 敎旨)가 발견되어 관심을 끈다.

 

특히 효열각과 관련해서 지역에 최초로 알려지는 전택오 정려 교지와 함께 발견된 부인 김씨의 정려 교지 등 2점에 대해 울진군이 문화재 지정 신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져 그 결과가 기대된다.

 

「울진군지」는 효자 전택오에 대해“담양인(潭陽人)으로 자는 치극(致極) 호는 신묵재(愼默齋)로 봉예공(奉禮公) 진(晋)의 후손이다. 나이 겨우 7세에 아버지 상(喪)을 당하여 집상하는데 어른과 같이 하고 어머니를 정성으로 섬기었다. 후에 어머니가 병이 나니 처 김씨와 같이 일주일 동안 밤에 북두칠성에게 빌어 효험을 보았으며, 또한 등창에 종기를 앓을 때에 입으로 빨아내어 완치하였다고 한다. 1891년(고종 28년)에 조정에서 동봉교관조봉대부(童蒙敎官朝奉大夫)로 증(贈)하고 명정여(命旌閭)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울진읍 호월리 용제동에 위치한 전택오 효자각은 당초 고종 28년에 사모각형 건물로 건립되었으나 2007년 7월에 철거하고 재건축했다.

 

전택오 효자각과 관련한 현판 3개 가운데 월성(月城) 최익현(崔益鉉)이 쓴 정려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아! 이곳 울진의 서쪽 용호위에 드높이 세워져 있는 것은 효자 전공(田公) 택오(宅五)의 정려(旌閭)이다. 공의 자는 치극(致極)이며,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고려 말에 전씨(田氏) 삼은(三隱)이 있었는데 끝(季)이 경은(畊隱)이시며, 문충공 박상충(朴尙衷)과 포은 정선생(鄭夢周)과 더불어 도의로 임금을 위한 덕망이 높았다. 경은의 손자 누려공(樓廬公)이 역성혁명이 일어날 때(조선 이태조 등극을 말함) 세상에 숨어 조용히 살고자 호(號)를 한 회정공(晦亭公)의 후예로서 공이 태어나기 전의 선조들의 후광(前光)을 입고 순조(仁陵) 병인(丙寅, 1806년)에 출생하여 8세 때에 부친상을 당해 상례 수행을 어른스럽게 하였으며, 형제는 3형제인데 맏형이 먼저 세상을 떠났기에 공이 모친을 봉양하였다. 

 

부인과 애경(愛敬)하여 모친께 저녁문안과 밥반찬이 끊이지 않았다. 신선하지 않나를 항상 살피고 질병이 들었을 때 특수히 부인 김씨(金氏)와 더불어 7일 밤을 북두성에 치성하니 마침내 감응을 얻어 병이 나았으며, 종기 병에 모두 입으로 빨아내어 차도가 있어 마침내 천수(天壽)를 다하게 되었다. 

 

종가집이 궁핍하였으므로 끼니를 마련해주고 대소간(大小間) 모든 일을 몸소 스스로 살펴 조금도 게으름이 없이 그리함이 수십 년이었고, 그 외 제사를 받듦에 살아 있는 듯이 정성을 다하고 스승의 상(喪)에도 심상(心喪)의 복(服)을 입었던 자(者)로 모두가 가히 귀감으로 전할 일이다. 

 

나이 66세, 현 임금(今上) 신미(辛未, 1871년)에 돌아가셨다. 오호라! 효제(孝悌)는 인(仁)의 근본으로 임금을 충성으로 섬김에서부터 천하의 모든 선행(善行)이 모두 이로부터 나온 즉, 기타 대소(大小) 모든 것 효겸(孝謙) 가운데 포함됨이다. 효제에 대한 조정의 표장 은전은 천리(天理)에 응하여 행적을 선양함이다. 

 

이 고을 선비에 상훈을 내려 정려와 아울러 교관(敎官) 증직을 신묘년 봄(辛卯春, 1891년)에 받게 되었다. 그 맏아들 표(杓)가 그 내역을 다듬어 과장됨이 없이 그 일을 기록하여 정려문 위에 달아서 그 뜻을 새롭게 함이요. 다만 확대 미화함이 아니라 하며, 또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기문을 상고하여 그의 효제의 마음이 유연히 구름처럼 뭉게뭉게 일어나게 함이라하니 도도한 서양의 문물을 모방하는 시세에 천민(天民, 도의적 백성)들의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있는 오늘날 어찌 작은 일이라 하겠는가. 

 

감히 병을 빙자하여 사양할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영력(永曆) 5 신묘(辛卯, 1891년) 양복월(陽復月, 11월)일, 월성(月城) 최익현(崔益鉉) 쓰다.”

 

[번역. 울진읍내리 윤대웅]

 

효자 전택오(田宅五)의 부인 김씨(金氏)의 정려 교지(旌閭 敎旨)

 

효자 전택오(田宅五)의 정려 교지(旌閭 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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