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동해를 황홀하게 물들이는 붉은대게, 붉은대게 명산지 후포항에서 초겨울 여행 즐기기
황금빛 물결에 오색찬란한 빛이 산천을 물들이며 화려했던 시간도 잠시. 제법 차가워진 바람에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12월이다.
조금은 쓸쓸함이 느껴지는 이맘때, 생기 넘치는 여행이 필요하다면 울진이 제격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울진의 명물, 붉은대게의 계절이 시작됐기 때문인데. 울진 후포항에서 여행을 즐겨 보자.
붉은대게, 푸른 동해를 황홀하게 물들이다
때 이른 추위가 찾아온 어느 아침, 후포항에서 비릿한 바다내음과 함께 큰 배 가득 붉은대게를 싣고 들어오는 어선을 만났다.
흔히 ‘홍게’라 부르는 붉은대게는 말 그대로 몸 전체가 붉은색을 띠며 수심 1,000m~2,500m에 서식하는 어종이다.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잡을 수 있는데 가을빛이 절정에 달한 11월부터가 성어기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겨울철 대게를 일미로 꼽지만, 제철 붉은대게는 대게 못지않게 귀한 별미이다. 또, 대게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가격에 비해 붉은대게를 잡는 일은 여간 수고스러운 게 아니다. 먼바다까지 나가야 하기에 한 번 나서면 길게는 8일까지 머문다는 붉은대게 조업. 요즘 평균 어획량은 2-3천마리 선이다. 예전 한창일 때는 4천 마리 이상도 잡았다며 어민들은 걱정 섞인 목소리를 낸다. 그래도 어민들이 늘 감사한 마음으로 바다가 내어주는 만큼만 거두어 오는 덕에 지금까지 붉은대게의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항구에 도착한 붉은대게는 어선에서 1차로 선별을 거친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노련한 선원들이 빠르게 크기별로, 상태별로 골라 상자에 분류한다. 와르르 쏟아지는 붉은대게의 모습도 그야말로 장관이다. 한 마리 한 마리에 동해의 힘찬 기운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어, 울진이 붉은대게의 명산지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붉은대게 경매도 꼭 한 번쯤은 볼만하다. 요즘 후포항 붉은대게 경매는 평일 기준 하루 약 세 차례 진행되는데, 생생한 현장을 볼 수 있다.
빠르게 옮겨진 붉은대게들은 손이 재바른 아낙들에 의해 경매장 바닥에 펼쳐진다. 크기별로 구분해 세워두는데, 상자에서 꺼내 펼치고 경매 후 다시 상자에 담는 과정이 순식간에 진행되는 탓에, 처음 보는 이들은 그저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다.
중매인들과 경매사의 치열한 눈치 싸움이 한바탕 벌어지고 나면 비로소 경매가 끝이 나는데, 이 모든 것이 신선한 붉은대게를 보다 좋은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과정이다. 입찰이 끝나 수조 차에 실리는 붉은대게를 보면서 어떤 미식가들의 입을 즐겁게 할지 상상해 본다.
붉은 대게의 맛있는 변신
후포항 한쪽에는 어시장 난전이 펼쳐져 있다. 다양한 제철 수산물, 건어물과 함께 붉은대게를 쌓아놓고 파는 상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발품을 팔면 당일 경매에서 제외된 물량과 같이 일부 품목들은 일반 시세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산지에서 바로 맛을 보고 싶다면 뭐니뭐니해도 식당들이 늘어선 후포항 횟집 거리를 추천한다. 어딜 가든 찜부터 볶음밥, 탕, 라면 등 붉은대게를 한 상 가득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특히, 거리를 걷다 보면 붉은대게를 찌는 과정에서 내뿜는 증기가 확 퍼지는데, 그야말로 ‘붉은대게 증기 샤워’를 하고 나면 어느 식당이든 들어서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특유의 진한 향미와 짭쪼름한 맛을 자랑하는 제철 붉은대게는 일품 대게에 뒤지지 않는다는 게 현지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이지만, 세월에 따라 변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주민들의 새로운 시도도 주목할 만하다.
먼저, 후포 토박이라는 한 주인장이 야심차게 내놓은 붉은대게찜이 있다. 최근 유행하는 미국식 봉지해물찜을 연상케 하는 이 메뉴는 붉은대게에 홍합, 새우, 가리비, 소시지 등을 푸짐하게 넣어 양념을 가미한 요리다.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음식으로, 눈으로 한 번, 맛으로 한 번 즐길 수 있다. 누구보다 붉은대게를 사랑한다는 주인장은 붉은대게에 평생을 바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울진 붉은대게의 명성을 잇고자 다양한 가공제품과 음식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옛날 지역 사람들이 많이 먹었던 음식이 재탄생된 경우도 있다. 바로 다릿살을 말린 ‘해각포’다. 조선 중기 허균이 전국 식품과 명산지에 대해 쓴 ‘도문대작’에도 등장할 만큼 역사가 깊은 음식이라 할 수 있는데, 저장성을 높여 오랫동안 먹기 위한 지혜가 발휘된 셈이다.
그러나 손이 많이 가고 가정에서 조금씩 만들어 먹던 음식이었기에 쉽게 맛볼 수 없었던 해각포를 최근 울진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만드는 곳이 생겼다. 향토음식에 지역 사람들의 손맛을 더해 만드는데, 어르신들에겐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젊은이들은 맥주 안주 등 새로운 간식으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특산물이라도 늘 같은 방식이 아닌, 변하는 시대와 소비자에 맞게 연구하고 알리려는 노력이 특산물과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
붉은대게에 진심인 후포 사람들의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져 또 다른 별미가 탄생되길 기대해 본다.
붉은대게 전시관과 울진 남부해변 드라이브
붉은대게를 맛으로 즐겼다면, 울진대게홍보전시관까지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무료 관람의 장점과 더불어 방문 후기는 꾸준히 좋은 편이다. 특히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라면 더욱더 가볼 만한 곳이다.
전시관은 대게와 붉은대게, 너도대게 등 다양한 게 종류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시청각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어, 울진대게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소소한 체험도 즐길 수 있으니 꼭 한 번 들러보자.
또 하나, 후포항 북쪽에서 시작되는 울진 남부 해안도로 코스를 추천한다. 보통 네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찾아가는 여행에 익숙해져 있겠지만, 이번엔 길이 이어진 대로 몸을 맡기고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
후포6리부터 평해읍 거일리, 직산리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한적한 어촌마을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를 즐길 수 있다. 중간중간 해안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데크도 있어 잠시 머물기도 좋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는 평해읍 거일리의 황금대게공원은 더욱 반갑다. 마을의 지형도가 게 알처럼 생겨서 거일리가 되었다는 마을의 역사와 더불어 대대로 대게잡이가 성행했던 ‘대게원조마을’이다. 공원의 조형물을 보며 잠시 그때를 상상해 봐도 좋다.
붉은 단풍이 모두 지고 가을빛이 바래졌다고 슬퍼할 필요 없다. 우리에겐 이렇게 아름다운 울진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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