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 뒤에 붙는 ‘~쟁이’라는 접미사는 얼마간 부정적인 속성을 내포하는 경우에 자주 사용되고는 한다.
안타깝게도 한때 보험 산업에 종사하는 보험설계사들이‘보험쟁이’라고 불리던 그런 때가 있었다.
보험설계사가 보험쟁이라고 불렸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보험 판매원들의 보험 상품에 대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보험 상품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못했다는 점을 우선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보험 상품은 일반적인 예금 상품과 달라서 중간에 해약하면 원금보다 손해를 보게 된다는 통상적인 고정관념과, 일부의 보험 판매원들이 보험 가입을 권유할 때는 친절하다가 보험을 들고 난 다음에 사고가 나거나 보험료를 지속적으로 납부할 형편이 되지 못해서 중간에 해약을 할 때면 갑자기 불친절해진다는 다수의 지적도 보험설계사들이 ‘보험쟁이’로 불리게 된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사정이 그렇다 보니 당연히 보험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고, 결국 보험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까지 ‘보험쟁이’로 폄하하여 불렀던 것이다.
이런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지적에 따라 보험업계는 다양한 노력을 통해 이미지 개선 작업을 서둘러왔다.
그 결과 이제는 보험설계사로 불리게 된 보험 판매원들은 상품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와 자기 계발을 통해 자신을 정예화하며 이 시대의 또 다른 전문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소비자들에게 보험 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지속적인 계약 관리에 대한 관계 설정을 통해 만기시까지 유지되는 보험 상품 판매를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발로 뛰고 있다.
이전의 밀어내기식 판매 성향이 아닌 필요에 따르는 자발적인 구매 성향으로 날로 변화하고 있는 초대형 메머드급 보험시장의 성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미 거대 공룡급으로 몸집이 불어난 국내의 금융시장은 조만간 은행, 증권, 보험 등이 각자의 안일한 영역 속에 머무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동안 국가로부터 보호받으면서 안주해온 국경마저 무너지게 된 형편에 다다랐다.
예전의 ‘보험쟁이’로 불리던 보험설계사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금융인으로 다시 도약하며 국제 금융서비스 경쟁에 뛰어들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죽변에서 태어나… 죽변초, 울진중, 울진농업고등학교 졸업
남편을 잃은 다음해에 대한생명에 보험설계사(FP)로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21년째 회사 한번 옮기지 않고 변함없이 대한생명 보험설계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춘자(71세)씨의 고향은 죽변이다.
1955년 3월, 이춘자씨가 울진중학교를 4회로 졸업할 당시의 기념 사진
그녀는 울진은 물론이고 아마 전국을 뒤져 보더라도 보험설계사로서는 꽤 고령의 나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씨는 이동선씨와 최부기씨의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떤 이들은 제가 고향이 죽변이 아닌 것으로 가끔 오해하기도 하는데, 태어난 곳이 죽변입니다. 지금의 동아연금매장 옆쪽의 아씨화장품 가게 있잖아요? 그곳이 제가 태어난 우리 집이었어요. 아버님은 ‘동’자에 ‘선’자를 쓰셨고, 어머님은 ‘최’씨 성에 ‘부’자 ‘기’자를 썼어요. 부모님은 딸만 셋을 두었는데 제가 막내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큰 언니는 부산에서 살다가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고, 둘째 언니는 지금 동해시에 살고 있는데, 한달에 한번 꼴로 동해 언니에게 자주 올라갑니다. 언니지만 저에게는 친구 같아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상의하면서 힘이 되어주고, 행복한 일이 있으면 서로 나누면서 축하해주고요.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그런 애틋한 정이 더욱 그립고 잔잔해지는 법이지요.”
죽변에서 태어난 이춘자씨는 죽변국민학교와 울진중학교를 거쳐 울진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게 벌써 50여 년 전이니까, 당시만 하더라도 여자가 고등학교까지 졸업한다는 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어요. 죽변국민학교를 5회로 졸업하고, 울진중학교 4회를 거친 다음에 울진농업고등학교는 7회로 졸업했습니다. 동창이요...? 글쎄요. 전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던 최순열씨가 울진농업고등학교 동창생인건 기억하는데, 하도 오래전의 일이어서 다른 동창생들에 대해서 뚜렷한 기억은 없어요. 그때 여자동창생들이 10명 남짓했는데 다들 객지로 시집가면서 연락이 끊어졌지요. 그때도 울진중학교와 울진농업고등학교는 지금과 똑같이 남녀공학이었습니다.”
고교 졸업… 2년 후에 육군 공병부대 소위와 결혼
울진농업고등학교를 7회로 졸업한 이씨는, 고교 졸업 후에 2년여 동안 죽변 집에서 가사를 도우면서 지내다가 육군 공병부대에 근무하던 군인과 결혼하게 된다.
1960년, 이춘자씨는 울진농고를 졸업한 2년뒤 이북 황해도 출신의 육군 장교인 임연택씨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그때 남편은 육군 소위 계급장을 달고 죽변중학교를 짓는 공사장에 공병장교로 파견을 나와 있었어요. 죽변중학교는 공병부대에 소속된 군인들이 작전 개념으로 투입되어서 지었습니다. 그 당시에 외삼촌이 사친 회장이었는데, 학부모의 대표격인 사친회장은 나름대로 학교를 건립하는데 힘을 쓸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학교를 건립하는 공병 군인들을 인솔하고 온 남편되는 사람하고도 친분이 돈독했지요. 사친 회장이던 외삼촌이 친정어머니께 육군 소위인 남편이 성실하고 사람도 참 좋다고 귀띔을 먼저 했어요. 그 육군 소위가 애들 아빠가 되는 임연택이라는 사람입니다.
사실 남편과 저는 울진농업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안면이 있었습니다. 그때 죽변에서 울진농업고등학교를 다니려면 교통편이 불편하고 마땅하지 않았는데, 죽변중학교를 짓는 과정에서 자재 공급을 위해 울진을 오가던 남편 차를 자주 얻어 타고는 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안면이 트여 있을 수밖에요. 안면이 있는 상태에서 사친 회장이던 외삼촌도 친정어머니께 괜찮은 사람이라고 귀띔해 났겠다, 어머니의 반허락 하에 연애기간을 거쳐서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거지요.”
이씨가 울진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할 즈음에 이씨의 부모님은 현재 이씨가 살고 있는 죽변1리 죽변농협 뒤쪽 ‘거랑골’로 이사를 한다.
“결혼할 때쯤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거랑골로 불리던 이 동네가 예전에는 집도 몇 채 안됐고, 주변에는 논밖에 없어서 여름이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지천으로 들리고는 해서 밤잠을 설치던 한적했던 곳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동네를 거랑골이라고도 했고 장미골이라고도 불렀어요. 지금이야 보기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이 동네에는 몇 채 안 되는 집들마다 화단 가득히 장미가 참 많았습니다. 지금 이 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구식결혼과 신식결혼을 반반씩 섞어서 식을 올렸다고 해야 옳겠네요. 전통 결혼식 차림을 했으면서도 기념사진도 찍고 화환도 받고 그랬으니까요. 친정어머니와 아버지도 기꺼이 축하해 주었고, 가까운 지인들도 다 함께 마음으로 축하해주었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마냥 행복했던 때였지요.”
이북 황해도 출신의 남편… 육군 중위로 부산서 전역
이춘자씨의 남편 임연택씨는 이북의 황해도 출신이다.
“남편은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때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학도호국단으로 전쟁터에 참전하여 남한으로 내려온 거지요.
부모님은 물론 형제자매나 친척과 함께 내려온 것이 아니라 혼자 내려왔어요. 혈혈단신으로 남으로 내려온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홀몸으로 내려와서 6.25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54년 10월 16일에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했어요. 남편은 아들 귀한 집의 2대 독자였지요. 저 또한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이 3대 독자가 되는 셈이네요.”
이씨는 남편 임연택씨를 만나 결혼하고 난 다음에 죽변을 떠나 강원도 원주를 거쳐 다시 춘천으로 옮겨간다.
“결혼하기 전부터 죽변중학교를 건립하는 공병부대 장교로 죽변면에 와서 생활하던 남편은 그동안 저와 결혼을 했고, 죽변중학교 공사를 마무리하고는 강원도 원주로 부대를 따라 올라갔어요. 그때 남편이 근무했던 부대가 1802부대였습니다. 결혼하고 난 후 남편을 따라 처음 따라갔던 군부대여서 아직까지도 그 부대 이름이 잊혀지질 않네요. 원주에서 한동안 생활하다가 남편이 다시 춘천으로 부대를 옮겨 갔는데, 그곳에서 맏딸 부선이를 낳았습니다.”
부대를 따라 이리저리 지역을 옮겨가면서 생활하던 이씨의 남편 임연택씨는 부산에서의 군 생활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전역한다.
“남편은 부산에서 군 생활을 하다가 1962년 9월 8일에 육군 중위로 제대했어요. 전역하고 나서는 처갓집이 있는 죽변으로 올라왔지요. 우리 친정집이 원래 딸만 셋인 집안이다 보니까 남편이 처갓집으로 데릴사위삼아 들어와서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른 다음에 남편 손으로 장인, 장모님을 모두 다 좋은 곳으로 보내드렸고요.”
이씨는 남편 임연택씨와의 사이에 2녀 1남을 두었다.
“첫째 딸 부선이를 남편이 춘천에서 군 생활을 하던 당시에 낳았고, 둘째 딸 귀남이와 외아들 창영이는 남편이 군을 전역한 후에 죽변으로 올라와서 낳았습니다. 남편은 군을 제대하고 죽변으로 올라온 다음에 처갓집에서 생활하면서 죽변 예비군 소대를 만드는 일에 매달렸어요.”
향토예비군 죽변면 소대 창설… 그리고 급작스런 남편의 죽음
이춘자씨의 남편 임연택씨는 향토예비군 울진군 죽변 소대를 창설한 후에 15년여 예비군 소대장 및 중대장으로 근무했다.
이춘자씨의 남편 임연택시는 향토예비군 육성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육군 중위로 전역한 남편은 이리저리 분주하게 쫓아다니면서 향토예비군 울진군 죽변 소대를 만들었습니다. 1968년 국가적으로 향토예비군 소대와 중대를 각 읍·면 단위로 창설하게 되었고, 죽변면 또한 처음에는 소대 규모로 작게 출발했는데 뒤에 향토예비군으로 편성되는 인원도 늘어나고 하면서 중대 단위로 규모가 커졌어요. 남편은 15년 동안 죽변예비군 중대의 중대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예비군 중대장으로 근무하면서 국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았고 1971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 죽변예비군 소대를 창설하는데 앞장섰던 이씨의 남편 임연택씨는 80년대 중반에 15년 동안의 예비군 중대장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예비군 중대장 생활을 접고 잠시 두어 가지 직업을 가지며 생활하던 임연택씨는 1986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6.25전쟁 때 학도호국단으로 전쟁에 참가한 후에 군 생활을 하면서 육군 중위로 전역하고 죽변예비군 중대를 창설해서 15년 동안 예비군 중대장을 역임했던 남편은, 중대장까지 전역한 이후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두어 가지 직업을 더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1986년 10월 6일 돌연 세상을 떠났어요.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 하나만은 자신 있어 보이던 듬직한 남편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거지요. 그래도 큰딸 결혼은 시켜놓고 난 다음이었어요. 큰딸 부선이가 결혼하고 9개월 후에 남편이 돌아가셨으니까요.”
이씨는 살아오면서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처럼 힘들고 아파했던 적은 없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남편을 앞서 떠나보내고 난 다음이 살아오면서 제일 아팠어요. 몸도 마음도 가슴도 아프고 쓰라려서 시퍼렇게 멍들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화초에 비유하면 그동안 저는 군인의 아내로서 남편 뒷바라지 하고 자식들 키우면서 그렇게 온실속의 꽃처럼 신랑의 그늘 밑에서만 살아왔던 거지요. 남편의 넓고 큰 그늘 밑에서는 아무런 걱정도 없었고 아픔도 없었어요. 신랑이 세상을 떠나고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고, 축 처진 몸을 추스르는데도 한참이나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무리 고단하고 힘에 겨워도 아빠 없이 엄마를 바라보며 커가는 자식들이 있으니까 먼저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얘기하던 이춘자씨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남편을 잊지 못하고 사랑한다면서도,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럼요, 지금도 변함없이 남편을 사랑하지요. 항상‘당신은 먼 나라로 갔지만 제 마음은 변함이 없어서, 당신을 제 기억 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두고 잊지 않고 산다’는 말을 되뇌고는 합니다. 남편을 떠나보낸 후 억척스럽게 살아오면서 제 손으로 둘째딸과 외아들을 시집, 장가보냈어요. 혹시 엄마 혼자 있는 집이라고 주변에서 손가락질 할까봐서 애들 결혼식도 있는 예법은 다 갖추어서 치렀습니다. 지금이야 내손으로 자식들 결혼식도 다 시켰고, 남의 식구도 우리 가족으로 들어오고, 예쁜 손녀도 무럭무럭 커 가는걸 바라보고 있으면 그래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남편 떠나보내고 6개월 후에 대한생명 보험설계사로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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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선은 먹고 살아야 했지요. 아직 시집가지 않은 작은 딸이 있었고, 학교에 다니는 외아들도 있었고... 사실 대한생명과의 인연은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시작됐어요.
남편이 살아 있을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후배 한명이 보험회사에 입사를 하려는데 시험에 자신이 없으니까, 언니가 대신 시험을 좀 쳐 달라고 부탁을 해온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대신 시험을 쳐주었고 그 후배는 대한생명에 입사를 했습니다. 그때 잠시 동안 대한생명에 저도 다닌 적이 있어요. 친한 후배의 대리시험을 쳐주고 그 인연으로 보험회사에 잠시 다녔던 거지요. 요즘 같으면 대리시험을 쳤다고 큰 문제가 되었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보험회사에 다니려는 사람 대신 다른 사람이 시험을 쳐 주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저 세상으로 떠나고 난 다음 6개월 뒤부터는 정식으로 대한생명에 입사해서 본격적인 보험 외판원 길로 접어든 거지요. 그게 1987년도입니다. 그러니까 대한생명에 입사한지 벌써 21년째에 접어들었네요.”
이춘자씨는 21년 전에 대한생명에 처음 입사할 때를 떠올려준다.
“그때도 대한생명 보험설계사는 30여명 남짓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그때 인원과 비슷하고요. 사실 보험설계사의 정확한 인원은 파악하기가 힘들어요. 항상 인원이 늘었다가 또 줄었다가 하니까요. 처음 대한생명에 입사할 당시에는 사무실이 울진초등학교 앞쪽에 있었습니다. 그 후에 월변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가 다시 옮기고 꽤 여러 차례 사무실을 옮겨 다녔어요. 지금은 울진읍 연호정 인근에 사무실을 얻어 입주했어요. 근무환경이야 지금 입주해 있는 건물이 최고지요. 어떤 분야든지 마찬가지였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근무조건이나 근무환경이 꽤나 열악할 때였으니까요.”
지금은 억대가 넘는 보험 상품이 수두룩하지만 이씨가 처음 대한생명에 입사할 당시만 해도 보험 상품이 그렇게까지 고액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고객이 매월 납부하는 보험료도 썩 많지 않았고, 각종 상해와 재해를 당해서 수령하는 보험금 액수도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그래도 제가 대한생명에 입사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도와주는 고객들께야 항상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크든 작든 보험료로 납부하는 금액이 무슨 상관입니까? 보험계약을 체결해주고 한달에 몇 백원짜리라도 보험료를 납입하는 고객들이 저에게 힘을 주었고, 또 받쳐준 것 때문에 지금까지 그래도 생활하면서 먹고 살아 올수 있었는데요.”
70이 넘어서까지 보험설계사로 일할 수 있는 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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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있다 보니까 이제는 무엇보다 힘이 달리지요. 보험계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관계에 의해 맺어집니다. 계약 체결보다는 그 다음의 유지가 더욱 힘든 것이 보험입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보험계약이 체결되고 난 다음에 고객이 13회 보험료까지만 납부하면 보험설계사가 손해를 안 봐도 됐는데, 올해부터는 고객이 24회까지 보험료를 납부해야 보험설계사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고객이 보험료를 24회까지 납부하기 전에 변심해서 보험료를 내지 않거나 해약하게 되면 보험설계사가 고스란히 그 손해를 떠안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보험설계사들은 보험계약 체결 후의 유지를 위해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하면서 약을 올리는 고객이 있더라도 그저‘예, 예’하면서 참아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이 해약을 하게 되고, 그 손해는 고스란히 보험설계사가 뒤집어쓰게 되는 거니까요.
예전에 제가 보험계약을 제일 많이 할 때는 한달에 18건까지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물론 단순 충동에 의해 보험 계약을 했던 고객들이 변심해서 갑작스럽게 해약을 하거나 하는 과정에서 물어준 돈도 꽤 되지요. 보험설계사들이야 보험 계약이 성사될 때가 제일 신나요. 요즘은 나이가 있다 보니 예전만큼 왕성하게 움직여 다니지도 못하고 한달에 한두 건 보험계약을 성사시키는 게 보통입니다. 그래도 70이 넘은 이 나이까지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건 너무도 고맙고 행복한 일이지요.”
각종 사회단체 활동… 보험설계사 일을 이어가는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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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자씨는 울진군 새마을부녀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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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각종 봉사활동을 통한 공로와 새마을 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널리 인정받으면서 1992년 내무부장관 표창장, 1991년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 경상북도지부 회장 표창장, 1993년 울진경찰서장 표창장을 수상한데 이어, 1994년에는 울진군 명예환경감시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죽변면 새마을 부녀회장을 10여 년 동안 맡아서 활동했던 것입니다. 울진군 새마을부녀회 부회장도 오랫동안 하면서 각종 행사를 통해 봉사활동을 펼쳤고요. 어떤 성격을 지닌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던지 남을 위해서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도울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지요. 전에 도의회 의원을 지냈던 주기돈씨가 울진군 새마을지회장을 하던 1986년부터 1997년까지 11년 동안 부녀회장을 지냈었는데, 봉사활동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참 열심히 쫓아 다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까지 21년 동안 변함없이 대한생명 한 직장에서만 보험 설계사로 근무하면서 보험 상담을 거쳐 계약을 체결하고, 유지해온 고객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이춘자씨의 보험설계사 일은 수년전부터 이씨의 며느리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
“대한생명의 동료 보험설계사 한 분이 며느리에게 보험설계사 일을 해 볼 것을 권유해서 한동안은 며느리도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활동했습니다. 며느리는 대한생명 보험설계사로 근무하는 틈틈이 공부해서 울진군 최초로 변액 보험 판매 자격증과 펀드 판매 자격증 두 가지를 취득해서 법인 보험 회사 직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어요. ‘엉클조 멤버스’라는 자산관리 회사의 직원으로 울진에서 일하게 되는데, 한 회사의 보험 상품만 한정해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외에서 취급하는 모든 종류의 보험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고 또 능력이 있으니까 하는 건데, 옆에서 힘자라는데 까지는 열심히 도우면서 지켜볼 생각입니다.”
49살에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대한생명에 입사한 이후 한눈팔지 않고 보험설계사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춘자씨.
자식들 우세 안 시키고 떳떳하고 바르게 살겠다는 일념으로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아왔다는 이씨의 말이 결코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이 시대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임을 우리는 안다.
울진 지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통 털어서라도 71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뛰는 보험설계사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신뢰를 파는 직업인 보험설계사, 하고자 하는 마음과 노력이 있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부지런히 보험설계사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런 이씨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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