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란 남의 눈에 잘 보이지 않을지라도 오래 간직 하고 싶은 보물. 옆에 있을 때나 멀리 있을 때나 더 없이 그립고 더 없이 즐거워지고, 서로에게 더 큰 행복을 주고 싶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10년, 20년, 30년...
흘러간 세월이 마치 곰삭은 젓갈같이 맛있어지는 우정은 그래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내 십대의 친구 현주는 이십 몇년 전에 미국으로 시집갔다.
두어번 고국을 방문했을 때 잠깐씩 얼굴을 마주했지만, 그리워하며 지낸 세월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헤어지곤 했다.
간단하게 안부만 묻고 서로의 근황을 바람결에 전하듯 그렇게 세월을 이어갔는데...
작년에 한국에 있던 큰 오빠의 갑작스러운 운명으로 큰일을 치루고 비행기 타기 하루 전에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양수리에 있는 나를 찾아 왔었다.
앞치마를 질끈 매고 일을 하고 있건 말건 정말 힘 있게 나를 안아 주었다.
매일 만나서 밤하늘 별 만큼 이야기를 해도 끝이 없었고, 헤어지기 싫어서 팔짱을 끼고 서로의 집 대문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삼십 몇년 전에 우리는 그런 친구였다.
“잘 났네, 못 났네. 잘 사네, 못 사네. 잘 배웠네, 못 배웠네 해도, 인간들... 다 도토리 키 재기야”
그런 말을 하는 현주와 마주앉아 그렇게 이야기 할 때만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현주의 명쾌한 말솜씨에 긍정을 아끼지 않으려 했다.
듣다 보니 이것저것 해 보다가 선택한 마지막 사업에서의 연봉이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억대를 주무르는 오너가 되어 있었고.
부수적으로 최고급 차에 명품 가방... 허드슨 강을 건너 뉴욕 시내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까지도, 사실 친구의 능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이역만리 먼 곳 타국의 친구 집이 아파트먼트인지 단독주택인지, 단순히 정말 그 공간의 스타일을 그리면서 궁금해지는 것을 물었다.
무엇이 더 있을 필요가 나는 전혀 없었는데.
내 단순함에 비해 현주는 너무 많은 상상력을 동원했는지, “얘, 나 미국 산다고 아이들 보내지 마. 유학 보내네, 부탁 하네, 어쩌니 하면서 아이들 보낼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마. 나 정말 그런 거 싫어”하는 거다.
나야말로 그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으므로 뜬금없이 왜 이런 소리를 하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름날의 후텁지근함이 불쾌지수를 높이 듯, 내 기억에서 그 말들을 깨끗이 씻어내 줄 소나기는 좀처럼 와주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거든... 현주야.
우리는, 내가 설사 그런 부탁을 한다고 쳐도 부탁을 들은 다음에나 해도 늦지 않은 말이었고.
그러기 전에 나는 그렇게 아이들 유학을 자기 집으로 보내라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고 해도 절대로 보낼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잠시 잊은 모양이 아니라면, 사는 모양만큼 번지르르한 그녀의 말들이 겉돌기 시작했다.
우리만의 특별했던 유대는 감추어도 빛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내놓고 흔들어도 그저 누구나 아는 상식처럼 시큰둥해 졌다는 것이고 참으로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세월의 길이가 사랑이나 우정 같은 무언가를 빛나게 해줄 거라는 환상을 버렸다.
얼마나 길게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의 문제일 수도 있는 감정에 대해서 알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잘나가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 깊숙이 자리한 개인의 의식.
의식의 발로 문제가 도토리 키 재기가 안 되는 것, 그것이 문제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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