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이 울진 지역을 점령했던 당시에 부역을 했다는 혐의로 적법한 절차 없이 울진경찰서, 특무대(CIC), 국군 3사단 소속 헌병대와 보충대 군인에 의해 울진읍 신림 올시골, 죽변면 후정리 부둘골 등에서 총살 및 생매장의 방법으로 민간인들이 집단 살해당했던 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한 사례의 중간보고서가 [월간울진] 9월호를 통해 기사로 보도된 후 독자들의 숱한 문의가 이어졌다. 때맞춰 울진 지역의 부역 혐의 희생 사건의 최종보고서가 발간되었기에 보고서를 정리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기사화한다. 다만 억울하게 총살된 부역 혐의자의 유가족들이 그동안 빨갱이 집안이라는 사회적 냉대와 박탈감속에서 살아온 점 등을 감안해 신청인, 참고인, 부역 혐의 희생자들의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편집자 주>
「경찰10년사 편찬에 관한 건『경찰서 연혁』에 ‘사찰주관 보고’항목에 기재되어 있는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 검거 상황’
진실화해위원회는 ‘울진 부역혐의 희생 사건’의 조사 결과, 1950년 9월 26일부터 12월 말까지 부역 혐의로 희생된 민간인의 수는 수복작전 초기에 국군에 의한 희생자 9명, 죽변면 후정리 부둘골 약 40명, 신림 올시골 250여명, 후퇴기에 지서 경찰에 의한 희생자 20여명을 포함해 총 320여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진실화해위원회는 울진경찰서에서 입수한 ‘부역자 명부’ 등의 자료에서 거론된 4천569명의 명단을 기초로 울진 지역 8개 읍·면 133개 마을의 현지조사를 실시했고, 이 중 희생자 205명과 희생 추정자 51명의 신원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 행위자는 울진경찰서와 특무대, 국군 제3사단 소속의 헌병대와 보충대 군인이었으며, 대한청년단과 마을 이장 등이 보조 역할을 담당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특무대와 헌병대는 경찰이 검거해서 연행한 부역 혐의자들을 즉결 처형의 형식으로 살해할 것을 지시한 주체로 보이지만, 이들이 상부로부터 어떤 명령이나 지시를 받았는지, 또 서로 간에 어떤 협력 관계 속에서 주민들을 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인민군이 곧바로 점령한 울진 지역은 피난을 가지 못한 우익인사들까지도 부역을 하지 않을 수 없던 상황이었는데, 수복 직후부터 무장한 군경이 비무장·비교전 상태의 민간인을 적법한 절차도 없이 살해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며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생명권과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부역자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경이 임의 분류에 따라 민간인을 살해한 행위는 전시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고, 당시의 실정법과 절차법을 위반한 것으로 반인륜적 야만행위였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는 부역 혐의로 살해당한 유족들이 가족 구성원의 상실과 가족 해체, 연좌제 등에 의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으며, 지역민들 또한 씨족 또는 마을 주민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지역공동체가 무너지는 아픔을 안고 살아왔다며, ‘국가의 공식 사과', ‘위령사업의 지원', ‘제적부·가족관계등록부 등 공식 문서 기록의 정정', ‘공식 역사기록에 진실 규명된 내용의 등재', ‘군인과 경찰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김00 외 6명(중복신청 1명)이 2005년 12월 5일부터 2006년 11월 30일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한국 전쟁 시기에 울진군 일대에서 민간인들이 군경에 의해 집단으로 희생된 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을 요구해옴에 따라, 조사 개시 결정 후에 사건의 전개과정, 가해 주체 및 가해 명령 계통, 희생 규모와 희생자의 신원을 규명했다.
이를 위해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4월 5일부터 2008년 3월 27일까지 14명의 신청인으로부터 진술조서를 작성했고, 2007년 11월 13일부터 2008년 1월 12일까지 현지에서 피해자측 참고인 88명을 대상으로 진술 조서를 작성했다.
또한 울진경찰서에서 입수한 자료와 참전경찰전우회에서 입수한 회원 명단에 기재된 당시 울진경찰서 소속 경찰과 의용경찰 14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2007년 9월부터 2008년 5월까지 3차에 걸쳐 조사했다. 울진 부역혐의에 대한 조사는 각종 자료에 대한 조사도 병행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울진경찰서에 소장하고 있는 자료로써 울진 부역혐의 민간인 희생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자료인 ‘경찰서 연혁'을 비롯해 정보계와 보안과의 부역자 명부, 신원기록편람 등 사건 기록 자료 일체를 입수해 조사에 사용하는 한편, 울진군지, 각 대학의 울진 관련 논문들, 국방부 관련 자료들을 입수해 이번 조사에 사용했다.
신청인과 참고인들의 진술 조사 작성에 이어 각종 자료 조사를 끝낸 진실화해위원회는 울진 지역의 사건 발생 현장인 근남면 노음리 매림동, 울진읍 신림 올시골, 죽변면 후정리 부둘골, 죽변면 후릿개, 기성면 황보리 문둥이골, 북면 사계리 나그네골 등의 현장을 조사했다.
한편 ‘울진 부역혐의 희생 사건'과 관련하여 울진군 관계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권고한 위령 사업 지원의 경우, 먼저 유족회가 결성되어야만 위령탑 건립, 위령제, 사건 현장 안내판 설치 작업 등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현재 일부 유족들이 유족회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역혐의 희생 사건 발생 지도
□수복작전 초기 근남면, 기성면 희생 사건 (1950년 9월 26일~9월 28일까지)
1950년 9월 26일부터 9월 28일까지 근남면 노음3리 주민들과 기성면 사동리 주민들이 국군 제3사단 22연대 소속 군인과 헌병대, 23연대 소속 군인, CIC 등에 의해 살해되었다.
▲근남면 노음3리
국군이 울진 지역 수복작전을 개시하던 첫날인 1950년 9월 26일, 제3사단 소속 22연대 제1대대와 제2대대는 노음3리 주민으로 인민군 점령시기 마을주민들의 권유로 3일간 리 인민위원장을 맡았던 윤00씨를 비롯하여 옹기 제조인으로 산에서 우연히 습득한 인민군 장교 군화를 신고 있던 성명 미상의 남성 등을 포함해 총 5명을 매림동에서 사살했다.
▲근남면 노음1리
1950년 9월 26일 정오경, 제3사단 22연대 소속 헌병대는 인민군 점령시기에 부역행위는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운영하던 포목점이 여맹위원회 사무실로 사용된 적이 있었고, 국군의 수복 후에도 계속 인민군 깃발이 걸려 있었다는 이유로 최00씨를 우물가로 끌고 가서 사살했다.
▲근남면 수산리, 산포리
1950년 9월 26일, 국군과 인민군의 교전 지역이던 왕피천 인근 마을인 수산리와 산포리에 국군 제3사단 22연대 소속 군인과 CIC 대원들이 마을로 들어와서 수산리 김00씨와 산포리 박00씨가 방공호나 가옥에 피신하지 않고 있다가 자신들의 눈에 띄자 사살했다.
▲기성면 사동리
1950년 9월 27~8일경, 평해로 상륙해 수복작전을 하던 국군 제3사단 23연대 소속 군인이 기성면 사동3리에 들어와서 마을 주민들을 마을 앞 백사장에 소집한 뒤 손을 들고 무릎을 꿇게 했다. 이때 집 앞 방공호에 있다가 늦게 나온 15살 김00 소년을 소집에 늦었다는 이유로 사살했다.
□죽변면 후정리 부둘골 사건 (1950년 10월 20일)
1950년 10월 20일, 죽변면 후정1리 부둘골에서 헌병대, CIC, 경찰에 의해 부역 혐의자 약 40명이 총살되거나 생매장되었음을 관련 유족들의 진술, 현장 목격자의 증언, 죽변지서 경찰관의 증언, 울진 경찰서 생산 자료, 제적부 및 호적의 사망 기록 등에 의거해 확인했다.
1950년 10월 8일부터 10월 19일까지 헌병대와 CIC 군인들은 우익단체와 이장들이 제공한 명단을 근거로 부역 혐의자들을 직접 연행하여 검거했다.
이들은 근남면 행곡리 행곡리 남00씨를 포함한 5명, 울진읍 호월2리 장00씨를 포함한 2명, 죽변면 후정1리 남00씨, 후정2리 전00씨, 호월 1리 장00씨를 포함한 2명, 북면 하당리 박00씨 등을 죽변지서, 죽변국민학교, 후정1리 민가로 연행했다.
CIC는 연행 도중에 부역 혐의자들을 사살하기도 했는데, 북면 신화리 전00씨 형제는 후정리 백사장으로 끌려가서 총살되었다.
당시 죽변지서에 근무했던 참고인 임모씨의 진술에 의하면, 죽변면에 주둔한 군인들에 의해 연행된 100여명의 부역 혐의자들은 죽변지서 사찰계 형사인 홍모씨와 육군 중위 계급의 군인에 의해 조사, 분류된 뒤 일부는 석방되었고, 일부는 처형자 명단에 올라가서 군인들에게 인계되었다.
또 당시 울진경찰서에서 유치장 경비를 보았던 전모씨와 임모씨의 진술에 의하면, 헌병대와 CIC는 울진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있던 부역 혐의자들을 경찰로부터 인계받아서 연행했다고 한다.
1950년 10월 20일 저녁 무렵, 무장한 보충대 군인들에게 인계된 부역 혐의자들은 트럭에 실려 죽변면 후정리 부둘골로 끌려가서 총살되었다.
참고인 김모씨는 당시에 생매장된 부역 혐의자의 집안사람들과 함께 시신 수습을 했는데, 후정리 부둘골 향나무 아래 구덩이에 30여명의 희생자들이 사살당한 채 묻혀 있었는데, 남편 장00씨 등 7명은 작은 구덩이에 상처 없이 생매장 당한 채 묻혀 있었기 때문에 총격으로 사살당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죽변면 후정리 부둘골 희생자들의 시신은 나중에 군인들이 철수한 후에 대부분 수습되었다.
이 사건에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장00, 전00씨 등 17명이다.
부역혐의 희생자 소속단체별 분류
□울진읍 신림 올시골 사건 (1950년 10월말~11월 중순)
1950년 10월 7일부터 울진 관내의 치안활동을 전개했던 울진경찰서는 각 지서별로 우익청년단체(대한청년단)와 마을 이장들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한 주요 검거자 명단에 근거해 부역 혐의자를 체포, 검거했다.
각 지서 경찰들은 마을 주민들을 소집해 놓고 부역혐의자를 지목하여 연행하거나, 아예 마을의 청·장년 남성들을 모두 연행하기도 했다.
지서 경찰은 부역 혐의자를 연행하는 도중에 사살하기도 했는데, 죽변면 후정1리 전00, 북면 나곡리 박00, 근남면 행곡4리 남00 등은 경찰의 검거를 피해 도망가려다가 마을 부근에서 사살되었다.
경찰은 연행된 부역 혐의자들을 지서, 면사무소, 창고, 국민학교 건물 등에 구금했다.
구금된 부역 혐의자들은 지서 사찰계 형사들로부터 인민군 점령시기에 부역 활동에 가담한 여부를 조사받고 A, B, C 등급으로 분류되었다.
그 가운데 A, B 등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울진경찰서로 이송됐는데, 이때 이송된 사람은 기성지서에서 40여명, 근남지서에서 25명, 죽변지서에서 15명 정도 되었다.
나머지 C급 부역 혐의자들은 3~7일간 구금되어 있다가 석방됐지만 구타 등의 가혹한 행위를 당해 귀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고, 경찰의 강압적이고 가혹한 취조 때문에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
면소재지의 각 지서에서 울진경찰서로 이송된 부역 혐의자들은 울진 읍내의 울진국민학교, 남소학교, 울진경찰서 유치장 등에 각각 분리 수감됐다.
울진경찰서 사찰계, CIC, 헌병대 군인들은 수감된 부역 혐의자들을 재조사했는데, 지서에서 이송되어 재조사를 받은 부역 혐의자 중 극히 일부는 석방되었지만 대부분은 울진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었다.
그 당시 울진경찰서에 재직했던 이모씨와 전모씨는 신림 올시골에서의 부역 혐의자 집단 살해는 1950년 10월 말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울진 지역 수복 후에 울진경찰서 유치장 경비를 섰던 남모씨의 진술에 의하면, 울진경찰서로 이송되어 재조사를 받고 유치장에 구금된 부역 혐의자들은 2~3일간 구금이 된 후 어디론가 끌려갔고, 처음에는 인원이 많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수가 감소했는데 모두 신림 올시골로 끌려가서 집단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울진경찰서에 근무했던 경찰측 참고인 14명 가운데 12명이 울진경찰서 경찰들이 신림 올시골에서 부역 혐의자들을 집단 살해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신림 올시골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살해된 장소는 여러 곳으로 확인됐는데, 진실화해위원회의 현지 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건 현장은 게골(기골, 귀골) 3곳, 신림 작은 판데기, 신림 큰 판데기 등 모두 5곳이다.
신림 올시골에서 살해된 주민들의 수를 정확하게 산정하기는 어려운데, 진실화해위원회는 ‘울진경찰서 연혁(1956년)'에 “수복 후 시국을 불인식한 자 259명을 송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점과, 그 당시 유족들이 시신 수습 현장에 대해 진술한 내용 등을 종합할 때 250여명 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시신이 수습된 희생자는 24명 뿐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시신은 경찰이 신림 올시골을 지키고 있어서 수습되지 못하다가 다음해 봄이 되어서야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갈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시신들이 부패되어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고 옷이나 치아, 벨트 등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일부 유족들만 시신을 수습했다.
부역혐의 희생자의 거주지별 분포
□기성면 황보리, 북면 사계리, 후포면 바닷가 희생 사건(1950년 11월 말~12월 초)
▲기성면 황보리 문둥이골 사건-1950년 10월 중순부터 온정지서 경찰은 30~40명의 부역 혐의자들을 연행하여 온정면사무소에 구금했다.
부역 혐의자들은 이후 한달간 온정면사무소 창고에 구금되어 있었는데, 이 가운데 황00 등 12명은 1950년 11월 26일 온정지서 경찰에 의해 밧줄에 묶여 기성면 황보리 문둥이골로 끌려가서 살해되었다.
황보리 문둥이골에서 살해된 12명의 시신은 대부분 수습되었고,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황00씨 등 8명이다.
▲북면 사계리 나그네골 사건 - 1950년 11월말경 하당지서 경찰은 부역 혐의자를 재검거, 구금했다.
1950년 11월말 경부터 12월 초에 북면 하당리, 소곡리, 사계리 등 하당지서 관할 지역 주민 7~8명이 사계리 나그네골에서 하당지서 경찰에 의해 총살되었고, 당시 희생된 사람 가운데 소곡리 남00 등 4명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후포면 바닷가 수장 사건 - 기성면 척산1리 안00 형제는 인민군 점령시기에 부역 활동으로 수복 후 인근 산으로 도피해 있던 중 자수를 하면 선처할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자수하러 가던 중 경찰에 검거되어 기성지서에 구금됐다.
수복 후에 기성지서 유치장에 부역 혐의로 구금된 주민들 중 일부는 울진경찰서로 이송되었지만, 안00씨 형제는 1950년 11월말경 어느 날 트럭에 실려 후포항으로 옮겨졌고 배에 실려 가서 수장되었다.
참고인 이모씨는 후포 바닷가에서 수장된 주민들이 기성면 사람들뿐만이 아니고 후포, 평해의 사람들도 당시에 함께 수장되었다고 진술했다.
□기타 희생 사건
1950년 10월경, 죽변면에 주둔했던 국군 제3사단 소속 보충대 군인이 인민군 패잔병과 삼척 부근에서 연행한 부역 혐의자 40~50여명을 죽변지서 맞은편 의용소방대 창고에 구금한 다음, 3~4차례에 걸쳐 약 15명씩 죽변4리 바닷가 부근인 후릿개로 끌고 가서 구덩이를 파고 집단 총살했다.
이밖에도 현재 북면 덕천리 울진원자력발전소 아래 백사장, 서면 하원리 백골, 울진읍 연지리 현내항 입구 골짜기, 서면 쌍전리 계곡 등에서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NEWS TOP 3
추천뉴스
정치/행정/의회
more +-
제293회 울진군의회(임시회) 의사일정안
-
울진군, 지방도917호선∙군도20호선 4차로 확장 추진
울진군(군수 황이주)은 울진읍 시가지의 교통혼잡을 완화하고 원활한 교통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방... -
왕피천공원서 펼쳐지는 '2026 야(夜) 울진' 호러 퍼레이드
울진군(군수 황이주)은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오는 8월 1일 왕피천공원 물결광장에서 '202... -
울진군 지역자원 창업의 기회로! ‘2026 울진군 창업아카데미’ 첫 문 열어
울진군(군수 황이주)은 지난 30일 환동해산업연구원에서 지역 예비‧초기창업자를 대상으로 ‘2026...
사회/경제/교육
more +-
울진국유림관리소, 지자체와 더불어 하천·계곡 불법행위 합동 점검 실시
울진국유림관리소(소장 김기한)에서는 울진군청 산림과와 함께 최근 여름철 관광객 방문이 급증하는 ... -
국립울진해양과학관, ‘제1회 KOSM 국민안전점검단 모집’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립울진해양과학관(관장 김외철, 이하 해양과학관)은 오는 8월 3일부터 21... -
후포초, ‘한수원 2026년 울진군 초등학생 방학 중 점심도시락 바우처 지원 사업’으로 시원한 방학 선물
후포초등학교(교장 김은희)는 이번 방학 동안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 본부의 지원으로 추진... -
울진산림항공관리소, 산림·소방 산불대응 협력 강화 위한 소통 간담회 개최
산림청 울진산림항공관리소(소장 안성철)는 7월 28일 관리소에서 산림·소방 유관기관 간 산불 ...
원자력소식
more +-
한울본부, 2027년도 한수원지원사업 공모 시행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본부장 이용희, 이하 한울본부)는 오는 7월 31일(금)부터 8월 31... -
한울본부, 울진 소상공인 최대 5천만 원 금융지원
한울원자력본부가 경기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울진지역 소상공인의 경영 안정을 ... -
한울본부, 신한울3·4호기 건설현장 용접사 양성 하반기 교육생 모집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본부장 이용희, 이하 한울본부)는 한수원, 울진군, 현대 컨소시엄이... -
고준위 방폐장 공모만 해도 ‘30억원’…정부, 파격 지원 검토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부지 공모에 참여하는 지방자치단체에 30억원 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