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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의병장「김언륜(金彦倫)장군 추모식」거행

  • 이명동기자 기자
  • 입력 2008.11.2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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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7일, 주민 100여명 참석해 김언륜장군 묘소에서 열려

       
일명 쇠도리깨장군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김언륜(金彦倫)장군을 기리는 추모식이 11월 7일 울진원자력발전소 후문 인근의 김언륜장군 묘소에서 열렸다. 

 

지역 원로들을 포함해 북면 주민들과 울진원전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추모식은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진설한 가운데 초헌관에 북면 엄경섭면장, 아헌관에 북면노인회 장형구회장, 종헌관으로 북면청년회 장현웅회장이 각각 헌작(獻爵)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추모식 후에 북면새마을부녀회에서 준비한 점심식사를 하면서 김언륜장군이 품었던 항일의 정신을 되새겼다. 

 

북면 고목리 가치산(迦治山) 바로 아래 동네인 가리(迦里-지장골)에서 1565년(명종 20년)에 태어난 김언륜장군은 27세 되던 해(1592년,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지역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을 크게 무찌른 장수이다. 

 

한편 김언륜장군의 묘소는 애초 북면 덕천리 마을의 분투골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현 울진원전 후문으로 연결되던 옛 7번국도 신작로가 뚫리면서 바로 위쪽 언덕으로 옮겨졌다. 

 

장군의 묘소를 처음으로 이장할 당시에 장군이 사용하던 투구와 장군의 고리뼈가 나왔다고 알려지는데, 투구는 일본인들이 가져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장군의 묘소를 이장하고 난 후부터 마을 사람들이 몸이 아프고 또 꿈에도 장군이 자주 나타나고 하면서 김장군의 묘소는 다시 신작로 옆의 아래쪽으로 위치가 옮겨진다. 

 

그러던 중 신작로의 확장공사를 실시하면서 또 다시 현재의 위치인 울진원자력발전소 후문 인근 언덕으로 이장된다. 

 

이렇게 여러번 묘소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김장군의 유골은 외부의 햇볕과 바람에 노출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져, 현재의 묘소는 김장군의 유골 없이 바로 이전의 묘소에서 흙만 따로 파 모아 옮겨서 조성된 것이다. 

 

이렇게 장소를 여러번 바꿔온 김언륜장군의 묘소는 신울진원자력발전소 부지 안에 포함되면서 1,2호기 건설 공사가 시작되는 2009년 8월을 전후하여 또 다시 다른 장소를 물색하여 이장될 운명에 처해 있다. 

 

김언륜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벌벌 떨게 하면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임란 후에 억울한 죽음을 맞았고, 거기에 더해 묘소가 5번이나 이장되는 비운의 장군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특히 김언륜장군의 죽음과 관련하여『울진군지』에서는“북면 분투곡 전투에서 적과 싸우던 중 왜병의 조총과 아군의 병기부족으로 28세의 아까운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조선 중기 아계 이산해의 시문집인『아계유고(鵝溪遺稿)』「기성록(箕城錄)」의 ‘장사(壯士)의 원통함’이라는 글에서는 김언륜장군의 죽음과 관련해, “영남에 기이한 장사가 있었으니(嶺表有奇士)/용맹이 모든 사내들 중 출중하였네(壯勇百夫特)/어느 날 왜적이 침공해 왔는데도(一朝海寇來)/편안하고 한가하게 태연자약하여(安閑猶自若)/아내는 베틀을 내려오지 않고(荊釵不下機)/노모는 침석에 그대로 있었네(老母在床席)/문을 나서서 손에 침을 뱉더니(出門但 手)/몸을 빼어 마음껏 적을 무찔렀지(挺身恣馳突)/화살 한 대로 우두머리를 죽이자(一箭射巨酋)/부하 놈들은 저절로 도망쳐 버렸지(群醜自奔逐)/빼앗은 적의 재물은 관가로 보내고(公輸奪賊貨)/벤 적의 수급은 소매에 넣어 두었네(袖有斬賊 )/고을 원이 본래 탐욕이 너무 많아(官長本無厭)/재물로는 그의 욕심 채울 수 없었네(所欲非貨足)/이에 뜻하지 않게 노여움을 샀나니(居然逢彼怒)/잡아오라는 명령이 어찌나 급하던지(縛虎何太急)/조정은 원래 장수를 중히 여기는 법(朝家重瓜牙)/어찌하여 가벼이 살육을 자행하는가(胡爲輕殺戮)/예로부터 이런 일 비일비재 많았으니(古來固如此)/원통하게 죽은 이가 그대뿐 아니라네(含寃非爾獨)”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은 선조 39년(1606년)에 사헌부에서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을 통해, “고성 현령 이언선은 임진왜란 초기에 울진현령이었습니다. 그 고을에 한 장사 김언륜이 있어 용맹이 뛰어나고 의기가 남달라 앞장서서 의병을 일으켜 죽기를 맹세하고 적을 토벌하여 적의 수급을 많이 참획했을 뿐만 아니라, 노획한 왜군의 재물도 많았습니다. 언선이 갑자기 욕심을 내 수급과 재물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욕구에 차지 않자, 도리어 죄를 만들어 온갖 방법으로 모함하여 마침내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일도(一道)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분개하며, 글을 지어 제사지내거나 노래를 지어 애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머리가 붙어 있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그런데 의관의 대열에 끼어 편안히 한 고을의 녹봉을 누리고 있으므로 이 말을 들은 사람이면 울분해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사판에서 삭제하라 명하소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김언륜장군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까지도 실제로 살아 있었지만, 탐욕이 많은 울진현령 이언선의 모함을 받아 분통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분은 향후『울진군지』등 지역의 역사와 관련한 기록물을 제작할 때,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부분으로 누차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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