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쟁기와 써레와 달구지를 끌던 소, 두터운 혀로 억새고 퍼런 억새풀을 감아 뜯던 소, 송아지를 낳아 대학 공부를 시켜주던 소, 추운 날 아버지가 덕석을 입혀주던 소, 등을 긁어주면 한없이 유순해지던 소, 코뚜레를 꿸 때 안쓰럽던 소, 입을 벌리고 됫병에 담긴 막걸리를 목 깊이 넣어 꿀꺽꿀꺽 소리나게 먹이던 소, 우시장에 팔려 가는 아침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던 소, 발정이 나 야밤에 황소있는 동네까지 몇 십리를 부랴부랴 몰고 가던 소, 밭가는 더운 날 그물마스크 사이로 침을 질질 흘리고 허연 콧김을 뿜으며 한 발 두 발 힘겹게 걷던 소, 소먹이러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홀로 남아 소리소리 지르며 울던 소, 서 있거나 배 깔고 앉아서도 끊임없이 뭔가를 씹고 있던 소, 가마솥을 열자 김이 부엌과 소마구를 가득 채우는데 한 바가지 여물통에 담아주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여물을 급히 먹던 소, 깊은 산길 혼자 걸어도 소와 함께라면 무섭지 않았던, 잃은 소를 이산 저산 횃불을 밝히며 찾다가 어느 무덤가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반가웠던 소』
어린 시절 농촌에 살았다면 이런 기억들 한 두 장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런 소가 어느 때 부턴가 우리와 멀어졌다. 소하면 그저 일등급 소고기니, 수입 소니, 진짜 한우니 하는 말만 무성하여 소가 현대에 처한 이미지를 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지난 한 해는 국가적 이슈로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광우병 파동에 휩싸이는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제자리서 운동도 없이 살만 찌우는 소, 풀밖에 먹을 줄 몰랐는데 이제는 고기도 먹을 줄 아는 소, 그저 맛있는 고깃덩어리로 변하기만 혈안이 되어 죽을 날만 기다린다. 집안에서 한 식구처럼 대해주던 소는 이제 영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올해는 소의 해다. 갑자명으로는 기축년(己丑年)이다.
십이지의 소(丑)는 방향으로는 동북, 시간적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여기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두 개로 갈라져서 음(陰)을 상징한다는 것과 그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아서, 씨앗이 땅 속에서 싹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속학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소를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육하기 시작했다. 김해의 조개무지 유물이나 삼국사기 지증왕 3년(502)에 처음 우경의 기록과,《삼국지》위지동이전 부여조나 삼국유사 설화에서 보더라도 옛날부터 우리는 소와 함께 해왔다.
한양명 교수는《소의 민속과 상징》에서『민담에서는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거쳐야 할 시공간적 전이의 통로, 즉 재생과 충족의 의미로 상징화되어 있다. 예컨대 ‘소가 된 게으름뱅이’, ‘송아지로 다시 태어난 아이’, ‘소 되어 속죄하기’, ‘소와 짝짓기’, ‘소 되었다 원수 갚기’ 등이 담고 있는 의미가 그러한 것들이며, 또 소는 ‘소타령’, ‘소모는 소리’와 같이 민요에서도 나타나기도 하는데 ‘~~하게’하는 어투를 가고 있어 일방적 지시가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까지 전제하고 있다.』고 했다. 민속놀이로 ‘소싸움’, ‘소먹이놀음’과 ‘소놀이굿’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민속 문학에 형상화된 소의 성격은 어리석음, 충직함, 의로움, 성실함, 용맹함 등으로 나타나며 가족경제에서는 최고의 재산적 가치를 지닌 존재, 식생활에서는 최상의 음식재료로 나타난다. 우리들처럼 소를 알뜰히 먹는 민족도 있을까? 소꼬리, 우족, 소머리, 껍데기, 천엽, 내장 등에 하물며 뼈는 사골 국으로 여러 번을 다려 먹는다.
속담에서 살펴보면 십이지의 다른 동물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동시에 가지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소하고 남자는 집어줘야 먹는다, 소 같고 곰 같다, 소귀에 경 읽기,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다, 쇠고집이다, 쇠새끼 죽은 넋이다, 쇠 힘줄 같다, 개는 안주인을 따르고 소는 바깥주인을 따른다, 소가 여우보다 낫다, 소같이 일하고 쥐 같이 먹으랬다, 소는 믿고 살아도 종은 믿고 못산다, 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아내에게 한 말은 난다, 남의 집 금송아지가 내 집 송아지만 못하다, 소는 농가의 조상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개잡아 먹은 흔적은 있어도 소 잡아먹은 흔적은 없다, 소 잡아먹고 동네 인심 잃는다, 소 새끼 난 뒤에 여자가 들어오면 재수가 없다, 송아지 낳을 때 곡식을 내가지 않는다, 점박이 소를 기르면 그 집안에 재수가 없다, 소 팔러 가는 집에 여자가 들어오면 재수가 없다.』
소에 대해 이렇고 저렇고 말들이 많지만 유명한 화가의 그림에서, 시인의 아름다운 시에서 그러하듯 소는 우직하고 믿음이 가는 신실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우리가 소에 대해 느끼는 마음과 같다.
김기택의 시(詩) ‘소’에서『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서 /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라고 읊고,
김종삼 시인은 ‘묵화(墨畵)’에서『물 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 이 하루도 / 함께 지났다고, /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 서로 적막하다고,』라고 읊었다.
소!
오랜 세월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왔었다. 이제는 그의 진면목을 보는 것도 아주 드물게 되었다. 하지만 소가 주는 진실한 의미를 새기고 그의 장점을 닮아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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