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암하던 농무의 밤이 지나고 햇살이 창에 어린다.
속살거리는 산새소리라도 달고 온 듯 귓가에서 간지럽다. 햇살이 간지러워 더 누워있지 못하고 일어나 창문을 밀어 연다. 조용하기만 하던 골목길에 오늘은 낯선 소리들이 엉겨있다.
귓가를 간지럽게 한건 벌레처럼 스멀대던 햇살만은 아닌 듯하다.
젊은 여자들의 고성이 넘어온다.
두동이나 건너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바로 밑에서 싸우는 것처럼 그들이 내뱉는 단어들이 귀에 박힌다.
“너 어제 까지만 해도 나한테 헤헤 거렸잖아? 어떻게 뒤통수를 치고 도망을 가?” “시끄러워, 아침부터 남의 동네에 와서 교양머리 없게 시리...”
들리는 소리들에 쓴웃음이 나왔다. 어째 사람 사는 동네마다 뒤통수치는 것들은 꼭 있는 것인지, 그것도 하나같이 앞에서 헤헤 거리다가...
악을 쓰며 분해하는 여자와 같이 교양머리를 무기처럼 내뱉는 여자 또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마음이 없는 듯, 꽈배기처럼 비비꼬인 그들의 조롱과 폭언은 시간이 더할수록 듣는 사람도 부끄럽게 한다.
어쩜 저리 원색적일 수 있단 말이며, 하물며 그래봐야 원점에서 맴돌 뿐이건만, 저렇게 시점과 관점이 달라서는 죽을 때까지 싸우라고 해도 싸울 태세다.
끊임없이 나의 뒤통수가 중요하고, 내 동네에서의 교양이 중요한 그들은 남의 이목이나 상대의 입장을 위해서 먼저 가져야 할 한치의 양보나 타협, 배려라는 개념을 이미 벌써 오래전에 상실한 것 같다.
나도 내 뒤통수를 아프게 하면 열 받고 팔딱 숨넘어가게 뛰고 그래본 적이 있다. 감정을 주체 못해 쫒아가서 제발 똑바로 살라고 들입다 퍼부어주고 온 적도 있다. 앙금이 남아 몇년을 말은커녕 얼굴도 외면하고 산 적이 있다.
한때 혈기가 한참 어리던 몇년 전에 말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다음에 생각해 보니, 시간이야말로 사람은 자기를 자기가 봐야함을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심신을 순화시키는 교육의 종류야 찾아보면 많겠지만, 정신과 양심과 상처들을 정화시키는 약으로는 시간의 흐름만한 명약은 없다는 결론이다.
혹시 뒤통수를 치게 만들어 놓고 아프다고 혼자 난리 부리는 거... 나 아냐?
교양머리 따지면서 교양은 항상 가출한 거... 나 아냐?...하며, 진정한 자기 고백의 소리를 할 수 있는, 싸우고 있는 그들이 지금 있는 대로 핏발 세우며 상대에게 뱉어내는 독설과 모멸감이 정말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언제 쯤 알란가?
소리친 만큼 그만큼 자신이 더 부끄러움을 느끼는 때가 있다는 걸 언제 알란가?
시간이 가르쳐 줄 것이다.
몇년, 아니면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다음에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질없는 것에 목숨이 달린 듯 그 악을 떨어댔구나. 바보같이, 정말 부끄럽다.
양보, 타협, 배려. 지금은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비로소 조금 원수 같이 징그럽던 상대를 바라보게 되는 때가 온다. 내가 가지는 이런 시간을, 그 징한 인간도 가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잠시 어쭙잖은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창문 밖이 조용하다.
그 혈기 왕성한 젊은 여자들의 소리가 잦아든 대신, 우리 동네 폐품 수집 하시는 할머니의 일성이 날아온다.
“어이구 젊은 사람들이, 여기 자기들만 있는 거야? 웃고 살아도 한 평생이 짧은데, 왜 싸우고 그려? 한번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그리고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털어버려, 털어버려. 내 나이만 되어봐. 아마도 오늘 싸운 게 그냥 웃길거야.”
할머니도 시간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계시는 구나.
옳고도 아름답게 찾아온 할머니의 시간을 그들이 지금 알란가?
언제 한바탕 고성이 오고 갔냐는 듯, 조용해진 골목으로 할머니의 수레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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