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장고)계의 노름마치 장덕화! 그를 만나는 길은 설레었다.
평소 국악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지역 출신의 대가를 만난다는 마음에 더욱 그러했다.
전통예술 연출가인 진옥섭은 설명한다.「‘노름마치’란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명인을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다. 곧 그가 나와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맺어야 했다. 이렇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노름마치라 한다.」
그렇다면 장덕화, 그를 일러 장구계의 노름마치라 부른들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국악계에서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사람들과 오랜 시간 최고의 무대에서 장구반주를 했던 장덕화.
공연 특성상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는 탓에 지역에서도 그 명성을 아는 사람만 알지, 많은 이들은 그에 대해서 잘 모른다.
지난 5월 27일, 장덕화씨를 서울의 인사동 낙원상가 부근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얼핏 보기에도 몸이 불편해 보였다. 걸음을 겨우 옮기는 그는, 안타깝게도 한쪽 눈까지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화려한 연주활동을 한 그였지만 그런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 드렸더니, 고향 울진사람이 왔다고 너무나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리고 우리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대견스러워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울진 어디에서 사셨는지
“42년 말띠 생으로, 지금 68살인데 울진의 월변동 170번지가 내가 자랐던 곳이다. 그곳에서 울진농고 9회로 61년도에 졸업했다.”고 했다.
국악의 길은 어떻게 들게 되었는?
“끼가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소풍갈 때도 장끼자랑 같은 것을 하면 모두가 유행가를 부르는데 나는 민요를 불렀다. 대대로 내림받은 무속집안도 아니고 기껏해야 풍물정도를 볼 수 있었다. 어릴 때 배울 선생이나 보고 듣고 할 만한 국악이라곤 없고, 단지 명절날 굿이나 풍물을 구경했을 뿐이다. 가야금이란 악기를 서울 와서 처음 보았을 정도니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그런 것들이 너무 맘에 와 닿았다. 사물을 치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울컥하는 기분이 생겼다.”
어떻게 장구를 하게 되었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악을 배우고 싶던 차에 서울에 있는 국악예술학교를 들어갔다. 그곳에서 기악, 민요, 판소리 등 국악의 종합적인 것을 배웠다. 장구를 하게 된 동기는 어릴 때 다른 것을 만져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구 뿐 아니라 국악의 다른 분야도 좋아한다. 박귀희, 김소희, 박초월, 한영숙 같은 이들은 이름만 들어도 우리나라 국악계의 거목들이다. 이들이 뜻을 모아 50년대 말에 관훈동에다 만든 것이 국악예술학교다. 학교 다닐 때는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답십리 부근에서 자취를 하였는데, 걸어서 학교까지 간적도 많았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 군 신체검사에서 체력이 약해 군 면제를 받았다. 나는 군대 안 갔다 오면 인간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해군에 지원하고 청룡부대 일진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청룡부대는 해병대였지만 해군인 나는 위생병으로 파월하였다. 13개월간 참전하고 귀국 후 제대하였다. 한 달 가량 집에 있었는데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서울 시립 관현악단을 창단하는데 내가 필요하다고 지영희 선생이 불렀다. 지영희(池瑛熙, 1909~1979)선생은 해금산조와 시나위의 명인으로 악기, 소리, 춤 등에 두루 능했으며, 지영희고전음악연구소를 창설하여 후학 양성에도 힘써 국악계의 큰 스승으로 불린 사람이다. 당시 서울시립관현악단의 초봉이 4천원이었는데, 7년간 근무를 했다. 그 때 리틀엔젤레스의 국악반장을 맡아 해외연주도 여러 차례 하게 되는데, 72년도에는 유엔본부에서 각국대표들이 보는 앞에서 연주하는 영광도 가졌다. 서울시립을 그만두고 KBS 민속합주단을 맡아 TBC, MBC의 국악프로 반주를 거의 다 하였다. 전국노래자랑이 생기고 국악반주의 단장으로 13년간 전국을 누볐다. 또 현재 35회 째를 맞이하는 전주 대사습놀이를 1회 때부터 반주자로 참여했다. 이어 국립국악원에 들어가 2002년까지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하였다."
그리고 또 말을 이었다. “돌아보면 국악인의 길로 들어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순탄하게 온 편이다. 결혼은 70년도에 부산 시립관현악단서 활동하고 있던 피아노 전공한 여인과 했다. 슬하에 아들과 딸이 있는데, 모두 잘되어 아버지로서는 큰 보람이다. 아들은 포천중문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군의관으로 근무중이다. 딸은 해금을 전공하고 강의와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내 여동생 남편이 중앙대학교 총장으로 있는 박범훈이다. 피리의 명인이며, 지휘활동도 하는 국악계의 거목이다.”
많은 연주활동을 하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연주가 있는지
“유엔공연,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전야제와 폐막식 공연, 조선일보 국악 대공연 등이다.”
다음으로 장구에 대해서 물었다.
“장구는 그 음악의 성질을 완전히 알아야 제대로 반주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장구는 지휘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각 악기의 연주를 넘겨줄 줄도 알아야 하고 민속음악, 정악, 남도민요, 무속음악 등 종류에 따라 완벽하게 그 음악의 특징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장단 몇 개야 누구나 금방 배울 수 있지만, 각 음악을 모두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장구가 어려운 것이다. 흔히 악반주에는 장고, 피리2, 대금1, 해금1, 북1 이것을 3현 6각이라고 한다. 음악의 편성을 말하는 것이다. 3현은 없어지고 피리2, 대금1, 해금1, 장고1, 북1 이 기본이지만, 형편에 따라 편성이 달라질 수 있다. 가야금이나 아쟁이 추가 될 수도 있다.
가곡이나 가사 또는 시조를 피리나 대금, 거문고 따위로 반주하는 수성(隨聲)가락 같은 경우도 그를 잘 맞추어 주어야 한다. 특히 약속이나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이 하는 ‘시나위’ 같은 즉흥 연주에서 그 진가를 더 발휘한다. 시나위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동해별신굿으로 명성을 날리던 지금은 작고한 호적의 제 일인자 김석출씨와 사위 제갈태호(기성 사동사람)와 3형제다. 모두 무속집안으로 속초부터 강릉 부산까지 이름을 날렸는데 김석출씨는 바닷가 울진 태생인 내가 고향동네 가까운 사람이라고 예뻐했다. 시나위의 진수인 그 사람들의 굿을 많이 봤다. 나는 무용 반주를 많이 했는데, 아마 한국무용가의 90%는 내 반주로 춤을 췄을 것이다.
장구 반주에 얽힌 에피소드 한 가지가 있는데, 만약 스튜디오 같은 데서 춤 반주를 할 때 ‘선생님 지난번에 했던 그 반주로 해주세요’ 하면 참 난감하다.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장구다. 그래서 매력이 있는 악기다. 한번 연주한 것과 똑 같은 것은 절대 나올 수 없다. 분위기와 서로의 연주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연주자들 끼리 100% 만족하면 그때 ‘엥겼다’ 한다고 했다.”
엥겼다! 그 의미를 이해할 듯하다.
엥겼다의 의미가 잘 표현된 글이 있어 몇 편 소개한다. 먼저 정민 선생이 지은 <미쳐야 미친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 1731-1783)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 의산문답(醫山問答)을 지어 지구의 자전설을 주장하였으며 음악에 탁월한 조예와 재능을 지녔던 인물이다. 그는 중국 사신 길에 북경 성당에서 처음 파이프 오르간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한 곡을 연주해낼 만큼 음악에 천부적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양금(洋琴)즉 철현금(鐵絃琴)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연주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그의 주변에는 늘 음악이 있었다. 그는 북경에서 우연히 만난 엄성이란 중국인과 단 몇 차례의 만남 이후, 평생을 서로 그리워하며 한 번 보내면 답장을 받는데 1년이 넘게 걸리는 편지를 죽을 때까지 주고받았다.
엄성은 뒤에 홍대용이 준 먹을 가슴에 안고 그의 향기를 그리워하며 세상을 떴다. 연암 박지원은 중국 선비들이 이토록 사모했던 그를 정작 조선에서는 알아주지 않는 것을 두고두고 가슴 아파했다.
성대중(成大中 : 1732-1809)의 기유춘오락회(記留春塢樂會-봄이 머무는 언덕에서의 음악회를 적다)에서, 홍대용은 가야금을 앞에 놓고, 홍경성(洪景性)은 거문고를 잡았다.
이한진(李漢鎭)은 퉁소를 소매에서 꺼내고, 김억(金檍)은 서양금을 당긴다.
장악원의 악공인 보안(普安) 또한 국수(國手)로 생황을 연주하는데, 홍대용의 유춘오(留春塢-봄이 머무는 언덕)에 모였다.
유학중(兪學中)은 노래를 불렀다. 교교재 김용겸(嘐嘐齋 金用謙) 공은 연장자로 윗자리에 앉았다.
좋은 술이 조금 얼큰해지자 여러 악기가 한데 어우러진다.
뜨락은 깊고 대낮은 고요한데, 지는 꽃잎은 섬돌에 가득하다.
궁성(宮聲)과 우성(羽聲)이 번갈아 드니 곡조는 그윽하고 절묘한 경지로 접어든다.
김공이 갑자기 자리에서 내려와 큰절을 했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일어나며 피하였다.
공(교교재 김용겸)이 말했다. “자네들 괴이하게 여기지 말게. 우(禹-중국의 고대 국가 하나라의 시조)임금은 선한 말을 들으면 절을 했다네. 이것은 하늘나라의 음악이니 늙은이가 어찌 한번 큰절하는 것을 아끼겠는가?”
홍원섭(洪元燮) 또한 그 모임에 참여했었는데, 날 위해 이처럼 이야기해주었다.
홍대용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에 적는다.
유춘오(留春塢) 음악회에 참석했던 홍원섭은 그날의 광경을 잊지 않으려고, 화가 김홍도(1745-1805)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그 뒤에, <김생의 그림 뒤에 쓰다(題金生畵後)>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옆의 한 폭 그림에서 상을 펴놓고 瑟(슬)을 타는 사람은 홍대용이고, 슬과 마주보며 琴(금)을 타는 자는 김억이다. 슬과 나란히 걸터앉아 술병 곁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나 홍원섭이다. 슬의 소리는 맑고, 금의 소리는 그윽하다. 따로 들으면 맑은 것은 맑고, 그윽한 것은 그윽할 뿐이다. 하지만 합주를 하면 맑은 것은 깊어지고, 그윽한 것은 시원스럽게 된다. 깊으면 아득하고, 시원스러우면 화합한다.
대저 뜻이 너무 맑으면 절도가 있고, 소리가 너무 맑으면 처량하다. 절도가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고, 처량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뜻이 너무 깊으면 생각에 잠기게 되고, 소리가 너무 그윽하면 희미해진다. 생각에 잠기면 근심스럽고, 희미하면 잦아든다. 맑은 것에 맑은 것을 보태면 소리가 격해지고, 그윽한 것에 그윽한 것을 합하면 소리가 펴지지 않는다.
둘 다 잘못이다. 절도 있는 것이 깊어야, 짧던 것이 멀어진다. 생각에 잠긴 것이 시원스러워질 때 급촉한 것이 화합하게 된다. 듣는 사람만이 능히 이를 구별할 수 있다
슬을 타는 사람은 슬에만 뜻을 모으되 금과 더불어 어우러짐을 즐거워하고, 금을 타는 자는 금에만 뜻을 두면서 슬과 합주를 이룸을 기뻐한다. 한 가지에만 마음을 쏟으면 얽매이게 되어 즐거움 또한 크지가 않다. 뜻에 얽매임이 없으면 즐거움은 한없이 커진다. 들을 줄 아는 자가 아니고서는 누가 능히 알겠는가?
홍대용은 슬을 타고, 김억은 금을 탄다. 홍원섭은 앉아서 이를 듣는다. 홍원섭은 한가하다. 그가 한가해야만 슬과 금이 어우러져 즐거움을 이룸이 커지게 된다. 여기에 뜻을 둔 사람은 진실로 스스로 얽매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악기를 잡고서 솜씨를 다툰다고 하는 자들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그는 한가하므로 슬과 함께하며 금을 취한다.”」
그리고 진옥섭이 지은『노름 마치』란 책에 ‘드림 시나위’란 용어를 쓰는데, 말하자면 야구 드림팀과 같은 그런 의미로 “아쟁과 꽹과리 박종선, 장구 김청만, 피리 한세현, 대금 원장현, 해금 김성아, 거문고 이세환, 짱짱하게 잘 짜인 시나위 드림팀, “티끝 하나 안 들어간다.” 하고, 또「2002년 9월, 여든일곱의 마지막 동래한량 ‘문장원’이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나왔다. 필요 없는 근육마저도 퇴화시킨 빈 몸은 공기에도 들릴 것같이 가벼웠다. 춤을 좀체 꺼내지 않았고 꺼낸 춤을 좀체 바꾸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것인데, 걷노라면 자연스레 밟히는 엇박은 관객의 허리를 곧추세우고 남은 폐활량을 한데 모아, 얼씨구! 추임세를 내지르게 했다. 2004년 2월, 군산의 예기 ‘장금도’가 춤추었다. 인력거 두 대를 보내야 춤추러 나오던 명성도 잊었고, 춤추던 기억마저 가물거리는 듯했다. 침묵한 세월 속에 풍화가 가속되어, 동작마저 흩어지고 단 한줌 남았다. 그 분말이 박수의 진동으로 공기의 결속에 스미고 있었다. 축축한 시나위가락이 다가오자 결로(結露)되어 손끝으로 춤이 뚝뚝 떨어졌다.」
정민이 해석한 옛사람의 글이나 진옥섭의 글은 연주에 관한 기막힌 표현들이다.
합주나 춤사위를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그저 아득할 뿐이다.
춤도 반주가 있어야 되니, 읊고 있는 글만 보아도 절로 ‘엥겼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 아련하고 꿈결 같은 모습들에 눈물이 난다.
장덕화, 그는 여기에 거론 되고 있는 문장원과는 여러 번 함께 공연을 했으며 이매방, 한영숙, 강선영 등 당대의 최고 춤꾼의 반주를 맡기도 했다.
목포의 유명한 한국무용가 이매방에게 “내 춤의 반주에는 니(장덕화) 밖에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니 그 경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필자는 장덕화선생께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나는 현재 판소리 고법의 김득수 계열로 92년도에 무형문화재 전수조교를 받았다. 중앙대학교, 추계예술대학, 한국 종합예술학교 출강하였으나 지금은 하지 않고 연구실로 찾아오는 전공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후진양성을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라는 물음에는, “나는 다시 태어나도 국악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필자는 몸이 불편한 장덕화 선생과 인사를 나누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닫힌 문을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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