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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충의(忠義) ‘장대룡장군’ 스토리텔링으로 환생

  • 이명동기자
  • 입력 2009.12.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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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최초의 스토리텔링 사업으로 진행된 장대룡장군의 사적비 고유제와 조형물 제막식이 11월 12일 장군의 출생지인 울진읍 호월리 무월마을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사적비 제막식은 비바람이 심한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울진장씨 대종회, 울진군, 울진문화원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파도풍물단의 지신밟기를 시작으로, 사적비 건립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 제막식, 전인식 문화원장에 대한 울진장씨 대종회의 감사패 전달, 장덕중 군의회의장과 민경건 울진교육장의 축사 순으로 진행됐다.  

 

장대룡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총 4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 마을정자 인근에 건립한 사적비 비문은 전인식 울진문화원 원장이 지었고, 제호는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인 과정 김동진씨가 썼다.  

 

그리고 장대룡장군을 모시고 청나라 수도 심양(瀋陽)까지 따라갔던 불영사 스님 개남(介南)이의 조형물은 안동대학교 조소 전공 조각가 최민기씨가 브론즈로 제작했고, 말 조형물은 화강암으로 제작되어 설치되었다.   

 

이번에 건립된 사적비와 조형물은 특히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스토리텔링(storytelling)화함으로써 박제되어 있던 기록에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얘깃거리가 덧붙여져 일반인들과 학생들에게 설득력 있는 현장 학습 교육 장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은 울진문화원이 주관하고, 울진군 교육청과 울진장씨 대종회가 각각 후원했다.  

 

장대룡장군은 중국정사 조선조 4편에 ‘순치(順治) 2년(1645년, 인조23년) 5월, 임경업의 별장(別將) 장대룡(張大龍)이란 자가 궁중에 잠입하여 폭역(暴逆)을 감행하다 체포되어 육시(戮屍)로 벌하고 조선에 이를 힐책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울진 장씨 시관조(始貫祖) 말익(末翼)의 19세손인 장대룡장군은 울진읍 호월리 출신으로, 종2품의 방어사 벼슬에 올라 경흥 방어사(鏡興 防禦使)와 안주 방어사(安州 防禦使)가 되어 임경업 장군의 별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병자호란(丙子胡亂) 이후 고향으로 내려왔다가 조선 인조 23년인 1645년에 청나라 황제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불영사 스님 개남이를 말잡이로 해서 청나라의 수도 심양까지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궁중 화약고에 불을 지른 후에 체포되어 육시(戮屍)를 당했다.  

 

시신(屍身) 대신 개남이가 가지고 돌아온 의관(衣冠)으로 울진읍 정림리 동쪽 사리곡(獅狸谷)에 부인(夫人) 영양 남씨(英陽南氏)와 합봉(合封)한 그의 묘소 아래에는 개남이와 말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 장대룡장군(張大龍將軍) 사적비(事績碑) 전문  


장군은 蔚珍郡 蔚珍邑 湖月里 舞月洞(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 사람으로 字(자)는 義瑞(의서)이며 蔚珍張氏 始貫祖 末翼(울진장씨 시관조 말익)의 十九世孫(십구세손)이다. 父 諱 鵬程(부 휘 붕정)의 長子(장자)로 出生(출생)하니 氣骨(기골)이 장대하며 성품이 强直(강직)하고 인품이 뛰어나서 傑出(걸출)한 사람이라 한다. 장군이 어렸을 때 어느 날 山城(산성) 아래 龍沼(용소) 주변에서 말이 울부짖으며 돌아다니는 것을 몰고 와 길러서 말 타고 무예를 익혔다고 전하며 후세 사람들이 훈련하던 장소를 馬項(마항) 또는 馬坪(마평)이라 부른다. 1636년(仁祖 14년) 丙子胡亂(병자호란)때 林慶業(임경업) 장군이 義州府尹(의주부윤)으로 淸(청)나라 군사를 國內(국내)에서 막을 때 장군은 林將軍(임장군)의 別將(별장)으로 任(임)할 무렵 南漢山城(남한산성) 밑 三田渡(삼전도)에서 仁祖大王(인조대왕)이 淸太宗(청태종)에게 항복하고 世子(세자)와 三學士(삼학사)가 볼모로 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온 나라와 百姓(백성)들이 원수(怨讐)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음에 끝내 벼슬을 놓고 故鄕(고향)에 돌아와 佛影寺(불영사)의 힘센 스님 介南(개남)을 말잡이로 하여 은밀히 敵國(적국)의 首都(수도) 심양(瀋陽)을 찾아간 장군은 淸皇帝(청황제)를 암살하고자 기회를 엿보다가 “宮中 火藥庫(궁중화약고)에 불을 지르니 폭염으로 淸(청)나라 城中(성중)은 火光(화광)으로 하늘을 찌르고 黃雲(황운) 기둥 줄기가 西(서)쪽에서 東(동)쪽으로 흘렀다 한다”. 이때 체포되어 육시(戮屍)를 당하였다.「中國 正史 朝鮮傳(중국 정사 조선전)」에 의하면 1645년(仁祖 23년) 5월 林慶業(임경업)의 別將(별장) 張大龍(장대룡)이란 자가 궁중에 잠입하여 暴逆(폭역)을 감행하다가 체포되어 육시(戮屍)로 伐(벌)하고 조선에 이를 힐책 하다라고 記錄(기록)되어 있다. 公(공)은 謀議事前(모의사전)에 속옷을 벗어 介南(개남)스님에게 주면서 하는 말이 나는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터이니 그대는 城(성)밖에서 보고 있다가 폭염이 空中(공중)에 솟구쳐 오르는 것이 확인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 이 옷을 전하여 알리라 하였다. 介南(개남)스님은 장군이 遺言(유언)한 바에 따라 증거가 될 장군의 衣服(의복)을 갖고 故鄕(고향)에 돌아와서 屍身(시신)대신 衣冠葬(의관장)으로 郡西(군서)쪽 10里(10리)에 蔚珍邑 井林里(울진읍 정림리) 동쪽 獅狸谷(사리곡)에 장사하였으며, 후에 配淑夫人 英陽南氏(배숙부인 영양남씨)를 合葬(합장)하였다. 葬禮時(장례시)에는 인근 고을 守令(수령)들이 모두 葬禮(장례)하였는데 治喪(치상)이 끝나자 말이 슬피 울기를 그치지 않다가 그만 죽으니 장군의 묘 옆에 묻었고 介南(개남)스님이 나중에 또한 죽음에 장군의 墓(묘)아래 葬事(장사)하니 소위 介南塚(개남총)이라 부른다. 아! 公(공)이 지킨 것은 오로지 忠(충)과 義(의)일뿐이다. 지금 송정(松亭) 옛터에 사적비를 세우니 公(공)의 義烈心(의열심)은 古今(고금)을 通(통)하여 國家的(국가적)으로 龜鑑(귀감)이 되리다.
「銘曰(명왈)」萬里(만리)길 行(행)한 忠誠(충성) 太陽(태양)처럼 빛나오니, 겨레여 이 뜻 길러 나라위해 忠誠(충성)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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